일본도예가

11代 주세쓰 미와 (三輪壽雪 Jusetsu MIWA, 1910-2012)

썬필이 2019. 10. 14. 20:52

11대 주세쓰 미와 (三輪壽雪 (Jusetsu MIWA, 1910-2012)

1910 山口県萩市に生まれる(九代三輪雪堂の三男)
1927 家業に従事し、作陶を始める
1955 三輪休と号。三輪節夫の本名で作品発表を始める
1960 日本工芸会正会員になる
1967 十一代三輪休雪を襲名
1972 山口県指定無形文化財に認定
1976 紫綬褒章を受章
1982 勲四等瑞宝章受章
1983 重要無形文化財保持者(人間国宝)に認定される
1990 勲四等旭日小授章受賞
2003 家督を長男・龍作に譲り、壽雪と号す
2012 逝去(享年102歳)

11代 三輪壽雪

주세쓰 미와는 형 '규와 미와 (10代)' 의 뒤를 이어 하기야끼를 계속 발전시켰다.

특히 태토를 거칠게 만들고 흰색유약으로 만든 새로운 하기야끼는 일본의 다완에 태풍과 같았다.

주세쓰는 1983년 형제로는 처음으로 형제 무형문화재로 선정되었다. 

          이   름              생  년                              직위계승년        

第10代 - 규와    미와  三輪休和 [1895-1981](雪堂の次男、人間国宝  1927年~1967年)

第11代 - 주세쓰 미와  三輪壽雪 [1910-2012](雪堂の三男、人間国宝  1967年~2003年)

第12代 - 류사쿠 미와  三輪休雪 [1940- 현역](龍作、第11代壽雪の長男 2003年~현   역)

주세쓰 미와는 그의 형 규와 미와(규세쓰미와 10代)가 1967년 은퇴하자, 가업을 이었고, 하기야끼를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에 새로운 면을 계속 추가했다.

새로운 기법은, 장석(張石, Feldsfar)을 더해서 완전히 흰색의 ‘타이세이’ 유약을 개발했고, 그것으로 하기야끼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게 되었다.

주세쓰 미와는 '타이세이' 이후에도 새로운 하기야끼에 새로운 모습을 더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무형문화재로 선정되었다.

일본에 뛰어난 도예가들이 많지만 형제가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것은 처음이었다.

또 같은 하기야끼에서 나온 것은 그들이 하기야끼를 부활시키고 또 기술적으로도 새로운 것을 보여준 업적이 뛰어났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룩했어도 형제가 무형문화재가 되는 것은 차완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에서 차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주세쓰 미와는 흰색유약을 개발한 후, 고대에 온니하기 토기를 만들던 방식으로 거친 태토를 섞었다.

그리고 흙을 기계나 지그로 성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손으로 빚는다.

그렇게 만들면 유약이 칠해지지 않은 차완의 바닥 부분은 거친 것이 더욱 거칠게 보이고,  흰색유약이 두껍게 칠해진 곳과 대조를 이루게 된다.

주세쓰 미와는 2003년 자신의 나이 93세에 은퇴를 하고 장남에게 13代를 물려주고, 102세까지 장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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