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 2024 무안군 오승우미술관 기획전시 - "전통, 잇다 가로지르다"
전시기간 : 2024. 2. 24.(토) ~ 2024. 5. 5.(일)
전시장소 : 무안군 오승우미술관(전남 무안군 삼향읍 초의길 7)
무안군오승우미술관은 ‘전통, 잇다 가로지르다’라는 주제로 과거의 기억과 역사를 반영하며
흘러온 전통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동시대에 어떻게 다른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재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기획전으로 갑진년 새해의 문을 열고자 한다.
이 전시는 여느 해처럼 미술관이 지역사회의 예술과 문화적 전통에 대한 아카이브 역할과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마련되었다. 전시는 다음 두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1부: 천년의 감성’에서는 김두석, 김천일, 박정규 등 지역작가를 초대하여 서남해안의 독특한
지형과 문화로부터 태동한 한국화와 도예작품을 들여다본다.
‘2부: 그림이 된 문자 - 문자도’에서는 박수경, 손동현, 이진경, 홍인숙 작가를 초대하여
문자적 요소와 그림적 요소가 어우러져 여러 가지 기호적 의미가 중첩되어 있는 문자도의
형식을 차용하여 다채롭게 전개되고 있는 현대미술을 함께 보여주고자 한다.
- 박건우 (무안군오승우미술관 학예팀)
<1부: 천년의 감성>
박정규는 무유소성 기법을 사용하여 무유 백자 달항아리를 제작한다. 가마 속에서 아주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쳐 소나무 재가 도자기 위에 내려앉아 고온에서 녹으면서 자연적으로
유리질화된다. 이러한 자연유를 입혀 탄생한 도자가 무유 달항아리이다.
그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적인 선을 추구한다. 달의 형태에는 둥근 보름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가 존재하듯 그의 작품에는 자연이 선사하는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운
곡선들이 자리한다.
37년이라는 도예 경력이 고스란히 담긴 도자에는 어떠한 자만심도 사치스러움도 없이 묵묵히
지켜온 지역에 대한 애정,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도예에 대한 애착이 가득하다.
전통을 이어온 명장의 손에서 자연을 닮은 도자가 지금 여기 탄생한다.
김두석의 작업은 도자기라는 형태에 머물지 않는다. 도조, 석조에서 평면으로, 3차원의 도자에서
2차원의 회화로 형태와 기능을 탐험하는 과정들 속에서 도자의 전통과 그가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새로운 조형 언어를 만들어 나간다.
작가는 “바닥 돌에 난 수많은 상처는 고달픈 삶을 살아낸 우리의 흔적으로, 이것을 도자편
하나하나에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우리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듯 그의 손을 거쳐 평면의 회화로 다시 태어난 도자기 조각들은
작가가 보내는 투박한 신호이자 고달픈 삶에 보내는 치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김천일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그쪽의 사람과 자연을 잘 연구하면 그게 바로
본질적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의 화폭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남도의 아름다운 산천 풍경이 담긴다. 작가의 감성적 언어가
생각만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현장을 찾고, 산을 오르며 작품의 대상을 세세히 관찰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마침내 본질에
다가서면 한 폭의 진경산수가 펼쳐진다.
이렇게 탄생한 진경산수에는 궁극적으로 작가 자신이 표현되는데, “전통화법을 배웠어도 항상
현실을 바탕으로 출발해야 하며, 현실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표현하는 세계는 예술세계라는
다른 체계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작가의 철학 아래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 이루어진다.
<2부: 그림이 된 문자-문자도>
박수경은 동양화의 먹과 한지로 남도의 먹거리와 문자를 결합한다.
그녀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당시 연해의 수족을 취급한 어보인 <자산어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재치 있고 친숙한 언어를 사용하여 전라도의 낙지와 생선들로 화면을 구성한다.
‘魚’라는 한문 문자로 구성된 밥상 위에 군침이 도는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이 보이고
이제 막 잡은 듯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이 보인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식(食), 특히나 한국인에게는 안부를 물을 때도 빠질 수 없는
‘식사’라는 소재를 문자와 결합해 섬세한 붓질로 실감 나는 음식들을 표현하며 새로운 형태의
문자도를 탄생시켰다.
목포에서 활동하며 남도의 생태, 문화, 환경 등 지역의 특색을 관찰하여 작품으로 담아온
그녀의 작품에서 남도의 음식과 이 지역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한 문자를 통해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손동현은 전통적인 한국화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하고 탐구한다.
그는 잡지의 전성시대라고도 불리는 90년대를 지나오며 다양한 음악, 영화 잡지를 통해
대중문화에 소재를 두며 작품을 발전시켜 왔다.
과거의 동양화에서 자주 쓰였던 ‘자연’이라는 전통 소재의 틀을 벗어나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
인간이 상상하고 만들어낸 인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가는 문자를 통해 새로운
인물화를 보여준다.
과거부터 문자도의 주제가 그 시대의 관심사와 가치를 반영했듯이 오늘날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 분야 속의 인물들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 그는 또한 상상의
인물을 문자와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문자도를 재창조한다.
그의 작품세계에선 문자는 마치 살아 움직이며 여느 외국 히어로물에 나올법한
인물상들을 보여준다.
그 세계에선 문자와 그림의 구별이 없이 문자가 곧 그림이 된다.
상형문자로 보이는 것들이 갑옷, 얼굴 등 형태를 만들어 내며 신선함을 자아낸다.
그의 작품에서는 서양의 그래피티, 캘리그래피, 카툰 등의 문화를 동양의 전통인 먹과 종이뿐만
아니라 서구의 아크릴 물감을 혼용함으로써 재료에 한계를 두지 않고 문자도라는 전통적인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탄생시킨다.
이진경은 한국적인 것, 친숙한 것, 자연에서 얻는 소소한 삶의 모습들을 소재로 삼아 그림과
손글씨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장이나 거리에서 종이박스에 적힌 글씨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작업에서 멋 부리지 않는,
어쩌면 투박하고 소소한 그녀의 세계가 글씨체에서 드러난다.
서울 토박이지만 청년 시절부터 시골에 거주하며 속세와 동떨어져 살아온 그녀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사라져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자연 속에서 경쾌한
작업을 이어 나간다.
둥그런 그녀의 글씨에서 그녀만의 특유의 밝은 기운과 고유한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며 친숙함
또한 느껴진다.
그녀의 작품에서 말은 곧 삶이고 우리가 그저 스쳐 지나간 것들 혹은 잊혀진 것들은 문자로
다시 한번 기억되며 새로운 의미로 새겨진다.
홍인숙은 일상의 기억들을 기록하고 일기의 형태로 작품을 제작한다.
그날의 기억과 생각이 적힌 비밀 일기처럼 그녀의 작품에서는 한글 단어와 꽃과 기와집,
인물 등이 어우러져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사람이 성장하듯이 한 단어의 의미 또한 나날이 달라지고 그 안의 역사와
기억이 층층이 쌓인다.
그녀가 전달하는 단어의 의미와 보는 이들이 생각하는 단어의 의미가 일치되었을 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익숙한 문자를 다시 보게 된다. 추억의 순정 만화에 나오는 인물의 모습,
어린아이의 글씨체 등에서 보이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그녀의 작품에서 우리는 동심의 추억을
떠올리고 그림으로 그린 문자를 읽기도 하고 가까이서 보기도 하며 글과 이미지가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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