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송이의 뜻
‘꽃 한송이’는 일본 초암차의 요체이며 심오한 종교적 경지를 지닌 일본 미학의 특징이 응축된 세계입니다.
이 의식의 근원은 신라시대 승려였던 의상(義湘·625~702)의 ‘법성게(法性偈)’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법성게는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지었기
때문에 석가는 가섭에게 진리를 전했다는 ‘염화미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염화미소의 소식을 중생들이 보다 쉽게 알아듣도록 전하고 있는 법성게의 참뜻을 일본 선불교(禪佛敎)에서
배워갔고 이를 다시 초암차가 응용한 것이지요.
법성게의 핵심은 이러합니다.
‘하나에 모두 있고 많은데 하나 있어(一中一切多中一)
하나가 곧 모두이고 모두가 곧 하나이니(一卽一切多卽一)
한 티끌 작은 속에 세계를 머금었고(一微塵中含十方)
낱낱의 티끌마다 세계가 다 들었네(一切塵中亦如是)
한없는 긴 시간이 한 생각 찰나이고(無量遠劫卽一念)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의 긴 겁이러니(一念卽是無量劫)’
차실 안에 꽃병과 꽃을 처음 들인 것은 다케노 쇼오에 의해서였지요.
무라타 슈코의 차법을 계승하여 다시 정리한 다음 생활화한 쇼오의 차법에서 꽃병과 꽃의 등장은 또한번의
변화이자 조선 불교문화를 응용한 초암차의 발전이었습니다.
이렇듯 꽃이 차실을 꾸미게 되면서 초암차 세계는 보다 심오한 미학을 지니면서 일본인의 마음이 머무는
오묘한 세계로 자리잡아 갔지요.
그 세계는 불교나 유학과도 다르고, 다신교적인 신앙과도 다르며, 여러 민속이나 습속과도 다른,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합친 것 보다 더 일본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창조적 모방인 셈이지요. 그 모방의 정점에 ‘꽃 한송이’가 꽂혀 있으며, 그 ‘꽃 한송이’를 창안한
센노 리큐(千利休)는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종교적 깨달음이 담긴 어휘를 헌정했습니다.
차실에 마주 앉은 주인과 손님의 만남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어서, 주인은 손님에 대하여 손님은 주인에 대하여
일생에 한 번 밖에 만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성심껏 서로를 맞으라는 뜻입니다.
차실에서의 만남을 소중히해야 한다는 이 말은 센노 리큐가 늘 사용하던 향로인 ‘고요노(此世)’를 주제로 한
와카(和歌)에서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세상에서의 인연으로, 다시 만납시다”라는 이 노래는 ‘한 번’의 ‘만남’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한 번 만난 사람인데 다음 생애에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는 것은, 그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다 바쳤음을 뜻하지요.
그렇게 되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렇게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차실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그런 마음으로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꽃을 보는 마음도 같아야 하지요. 꽃은 주인의 마음을 뜻합니다. 주인 마음이 꽃 속에
들어가 꽂혀 있습니다.
주인은 꽃 속으로 들어가 꽃이 되었기 때문에 말없이 고요합니다.
손님이 주인을 만나려면 손님도 꽃 속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꽃 속으로 들어가는데 떠들거나, 화려한 치장, 권위며 남녀노소의 차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꽃 한송이로 주인과 손님이 하나가 되는 주객일체는 곧 석가와 가섭의 ‘염화미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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