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예가

무초無草 최차란 崔且蘭 - 사등이요

썬필이 2019. 9. 25. 11:37

무초 최차란 崔且蘭

1926년 경상북도 영일군 기게면 미너리에서 동학 교조 최제우의 후손으로, 3대째 옹기장이 집안에서 태어났다

1971년 우연히 일본 도쿄 박물관에서 일본의 국보가 된 조선 초기 막사발을 만나고 난 뒤,

그 사발의 내력을 찾아 다닌 결과 그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다도에 쓰이는 그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후 일본에서 다도 사범 자격증을 취득하고, 1979년 한국차인회설립에 큰 역할을 했다.

한국차인회 지도위원,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경주차인회 회장을 맡고 이다.

1989년에는 충담사의 <안민가>에 나오는 '답게'정신을 본받고자 들차회를 만들어 다도 보급에 앞장섰다

 한편 1971년 선도요, 1974년 새등이요를 설립하고 정호다완 재현에 몰두한 끝에 마침내

1993년 그 원형을 재현해 냈다. 저서로는 <회전이치 다도(1993)>가 있다.

주소 : 경주시 하동 201-42 --->불국사 가는 길목

최차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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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보기

구정다완(井戶茶碗)
입전 14.1 ~ 15.0cm 높이 : 7.8cm 굽지름 : 5.2cm 무게 :.360g 판매가 :1,500,000원
분청찻잔 입전 :7.6cm 높이 : 4.4cm 굽지름 : 3.0cm - 1985作
12다완

- 우리지역 최초의 신여성, 도예가 최차란 선생 별세 - 토함산 '새등이요'에 혼을 묻고 영면하다  - GBN - 2018.03.12

  http://www.egbn.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100715

선생은 1926년 경북 기계면 미현리에서 동학의 시조 최제우선생의 형인 최세후의 5대손으로

3대째 옹기를 굽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기계면 산골에서 옹기를 굽게 된 동기는 선대들이 동학의 박해를 피해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선생은 민예사를 운영하던 중 일본인들이 우리의 막사발을 귀하게 여기는 것에 주목하여,

일본으로 건너갔고 1971년 도쿄박물관에서 일본의 국보가 된 조선 초기 막사발을 만난다.
또한 이것이 다도에 쓰이는 그릇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도자기와 차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다도 사범 자격증을 취득, 1979년 한국차인회 설립을 주도하며 한국차인회 지도위원과 이사를

역임했으며 경주에서 들차회를 열기도 했다.
선도요에 이어 1974년에는 현재의 ‘새등이요’를 설립하고 정호다완 재현에 몰두해 1993년 일본 다도 도구

평론가인 하야시야 세이조(林屋晴三)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후 우주로부터 시작해 삶과 생활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형태적으로 보여주는 12다완을 완성했고

2010년 생애 가장 의미 있는 전시회를 시작으로 몇 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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