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다도가 생겨난 비밀

썬필이 2020. 3. 29. 17:40

다도가 생겨난 비밀

이제껏 살펴본대로 ‘다도(茶道)’는 12세기 이후부터 진행되어온 일본 역사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창안해낸

일본인의 종교의식이었습니다.
[이도차완이 등장하기 이전 농차를 마시는데 주로 이용된 천목차완.]
다도의 핵심에는 도교(道敎)와 도가사상의 특징인 현실세계에 대한 신비주의적 형이상학적 이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도교의 상징인 무위(無爲)사상을 일본 무사들의 폭력성, 잔혹성, 강압성을 누그러뜨리고 제압하기 위한

정치의 한 방법으로 여성적 유약함이나 소극성을 찬양하는 문화로 변형시켰지요.
이처럼 다도의 정신적 내면 세계는 중국의 도가사상에서 취사선택하고, 내면 세계를 담는 그릇은 조선의

불교문화와 서민행활을 응용하여 창안한 것이지요.
적어도 500년 정도 끊임없이 계속된 다도 형성의 역사는 곧 일본 미학체계의 역사이자 일본인의 정신구조가

확립된 역사여서,오늘날 한국의 차인들이 아무 생각없이 ‘다도’를 말하고 닮으려고 애쓰는 것은 매우

불행하며 위험한 일입니다.
차문화는 군대와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문화를 지닌 민족과 국가를 소리없이 점령하는 무서운

전쟁으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차문화의 특성이 매우 다양하고 은밀한 도구와 정신의 복합체여서 한 번 손을 대면 자신도 모르게

계속 이끌려 들어가게 되지요. 마치 중독성 강한 마약과도 같습니다.
다도의 내면이 담겨 있는 그릇으로서의 조선 불교문화와 서민 생활을 주축으로 삼아 초암차 문화가 일어났고,

농차법이 만들어져 마침내 다도가 완성되었지요.
결국 다도는 일본 정신의 혁명적 진화를 가능하게 한 종교였는데, 그 혁명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그릇이

다름아닌 이도차완이었습니다.

중국과 고려, 조선의 수많은 그릇들 중에서 유독 ‘이도(井戶)’라 이름 붙여진 이 그릇이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 특유의 미적 감각 때문이었지요.
‘초암차 문화>농차법>다도’의 완성이 절체절명으로 필요했던 이유는 일본의 정치적 혼돈을 극복하고 일본

통일을 달성해야 했기 때문이겠지요.
정치적 혼돈의 주역은 칼 숭배자들인 무사들이지요. 이들은 권력 장악을 위한 편가르기와 불신, 탐욕과

사치풍조를 주도한 상업자본가들의 차문화를 변혁시키면 정치적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았지요.
그때까지 일본 차인들이 써온 차그릇들은 모두 크기가 작은 것들 뿐이었는데, 여러 명이 한 그릇에 담긴 차를

돌려 마시는 농차법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용량이 큰 그릇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농차법은 전혀 새로운

차법인데다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시대적 병폐를 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예감하게

해주었거든요.
그같은 시대적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낸 사람이 타케노 쇼오 였지요.

그는 놀랍게도 상류계급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사무라이도, 승려도, 귀족도 아닌 일본의 최하층민인 ‘부락민(部落民)’ 출신의 피혁상인이었지요.

그는 신분의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피혁상인으로 모은 자본을 이용하여 비교적 차별이 덜한 쪽으로 눈길을 돌려 차그릇 감정사가 된 것이지요.
그런 그의 눈에 발견된 것이 이도차완입니다.

큰 것은 한꺼번에 20명 이상이 차를 돌려마실 수 있을 만큼 용량이 크고 투박하게 생긴 것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