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의 역사
옛 차살림 내력을 짚어보는 것은 우리 전통문화의 한 원류라 할 수 있는 차례의식이 과연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차례는 차를 달여서 천지신명께 올린 뒤 차례에 참석한 사람들이 신명께서 내리신 복을 함께 누리며 마시는
의례(儀禮)이며 차를 큰 그릇에 담아 돌아가며 마시는 회음례(回飮禮)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고구려에서 해마다 10월에 행하던 동맹(東盟) 혹은 동명(東明)과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을 증거로 들 수 있지요.
고구려시대 옛 무덤에서 전차(錢茶)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차가 부장품으로까지 쓰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다국(句茶國)이란 고구려의 지방 이름을 적어 전하고 있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평안북도 용호동에서 출토된
굴뚝이 달린 이동식 화덕의 존재는 곧 고구려의 차문화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신라의 차문화는 어떤 이유로도 부정할 수가 없지요.
경주 창림사 옛 절터에서 출토된 기와조각에 새겨진 다연원(茶淵院)이란 글자가 신라시대의 전문화된 찻집을
뜻한다는 해석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안압지에서 출토된 언정영(言貞榮)이라 새겨진 토기 찻사발이나 용왕 찻그릇, 신라 화랑들이 명상
수행했던 한송정의 차화덕 기록들은 신라 사회 전반에 걸쳐 차마시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이같은 차문화의 일반화를 결정적인 증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이 고구려, 신라, 백제의 인민들이 설과 추석 때
조상께 올리는 차례입니다.
국가가 천지신명께 차를 올려 제례의식을 행하고, 인민들은 자기 조상과 농사신, 용왕이나 농사와 관련된
신들께 차로써 의례를 치렀지요.
가야시대의 차문화 또한 선명한 증거를 남기고 있지요.
가야지방에서 출토된 토기 찻그릇들의 제작 연대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나 김수로왕의
시제(時祭)에 차를 올렸다는 기록, 김해와 언양, 사천지방에 전해오는 인도 아셈지방이 원산지인 차나무의
존재가 그 증거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차문화의 화려한 전성기였지요.
‘고려도경’에 나타나는 차 관련 제도와 문화는 일반 인민들에게 일반화된 것이었음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신라의 충담선사가 경주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해마다 3월3일과
9월9일에 차를 올린 것입니다.
또한 신라 왕실에서 태어난 왕자였던 김교각(金喬覺·696~794년)이 성덕왕 27년이던 728년에 신라에서 흰개,
볍씨, 차의 종자를 가지고 중국 안휘성 청양현 구화산으로 가서 오늘날 저 유명한 금지차의 원류가 되었지요.
이같은 역사적 사실은 삼국사기에 적혀 있는 매우 수상한 기록인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에 갔던 사신
대렴이 차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것이 우리나라 차의 기원이라고 한 기록의 진실성을 부정하게 해줍니다.
삼국사기라는 것이 고려의 신라에 대한 열등의식을 감추기 위해 중국에의 정치적 의존과 사대주의 목적이
들어있는 역사책임을 알고보면 이 기록은 이제라도 부정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 기록을 주장하면서 오늘날 중국 차 문화에 경도된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한국 차문화의 근원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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