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공존의 아름다움

썬필이 2019. 8. 19. 10:38

공존의 아름다움

혼자 차를 마실 때나, 손님으로 초대받아 차를 대접받을 때 차가 담긴 차완을 앞에 놓고 공손히 합장하여

절을 하게 됩니다.

차를 낸 주인의 정성과 차를 이루고 있는 일체의 생명들에 대한 예절로서 하는 인사지요.

발우 공양 때도 이와 같습니다. 반찬과 밥을 담은 그릇이 얹혀 있는 찬상(饌床)이 발우를 펴놓고 기다리는

자기 앞에 오면 먹을만큼의 밥과 반찬을 덜어낸 다음 옆사람에게 찬상을 넘겨주지요.

찬상에서 음식을 덜어내기 전에 한 번 합장하고,공양이 시작되기 전과 공양을 마치고 발우를 묶어 앞에 놓고

나서 다시 일제히 합장합니다.

차실에서 농차를 마실 때도 그러합니다.

차가 담긴 차완을 받고나서 합장하고, 차를 다 마신 뒤에도 다시 정중하게 합장하고 절을 하는데 발우

공양 때와 거의 비슷합니다.

이때 합장하고 하는 절은 먹을 음식과 마실 차를 마련한 사람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인사이자 자신의 몸을

인간의 먹이감으로 내놓은 풀잎, 열매, 뿌리에 대한 은혜에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지요.

비록 풀잎 혹은 열매, 뿌리라 하더라도 신성한 생명을 지닌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이라하여 인간 아닌 미물들의 생명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생명평등 정신에서 비롯된 귀한

예절이자 의식입니다.

인간의 삶은 인간과 다른 수많은 생명체들의 헌신없이는 한시도 존재할 수가 없지요.

인간이 살기위하여 먹는 음식은 곧 다른 생명체의 희생이 있어서 마련된 것이어서 항상 육신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에 그쳐야만 합니다.

동일한 우주 안의 생물체로서 영원히 공존하기 위해서는 이 필연의 법칙을 엄격하게 지켜야만 합니다.

동물, 식물, 미생물들의 숫자가 현저하게 감소하거나 멸종하면 인간도 멸종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것이 아름다움의 원천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생명의 평등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우주질서입니다.

승려들은 계율에 따라 육신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적게 먹도록 정해져 있고, 승려가 된다는 것은

그 계율을 지키는 생활에 보람을 느끼며 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계율을 지키며 수행하는 모습을 통하여 세속의 삶을 교화하고 삶의 영원한 목표로 숭상되어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발우 공양은 바로 이같은 생명의 평등을 실천하는 의식이며, 다도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 또한 이와같아서

차마시는 일이 도(道)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다도의 확립이 절실했던 14~16세기의 일본은 봉건주의라는 세습적 군사독재자인 쇼군(將軍)의 시대였습니다.

의리, 충성, 용맹이라는 이상과 무예를 존중하는 무사계급의 지배가 특징이었지요.

할복, 자살의식, 칼에 대한 숭배가 이 시대 문화의 핵심이었습니다.

무사계급들은 차츰 쇼군을 위한 끝없는 전쟁과 피 마를 날 없는 잔혹한 삶, 광기와 권력욕에 몰입해 가는

난세의 날들이었지요.

서민들은 한치 앞이 안보이는 절망으로 고통받았습니다.

희망을 잃고 좌절해 있을 때 전혀 새로운 모습의 불교 유파가 나타났는데, 원효의 화엄사상을 종지(宗旨)로

삼은 법연상인 (法然上人·1133~1212)이 창립한 정토종(淨土宗)이 그것이었지요.

이 무렵 원효의 무애사상과 발우 공양의 지혜를 일본 승려들이 차생활에 응용하기 시작하면서 세속으로

전파되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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