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정화를 위한 물

썬필이 2019. 8. 16. 11:23

정화를 위한 물

다완을 바닥에 놓을 때는 헝겊으로 만든 작은 깔개를 깔고 그 위에 얹지요.

이 모습은 방바닥에다 발우 수건을 펴놓고 그 위에 발우를 얹는 것과 똑같습니다.
깔개를 까는 것은 방바닥이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면서 차완의 청결과 차의 청정을 지키기 위한 예절입니다.

발우를 발우 수건 위에 펴는 것은 몇 가지 좋은 이유 때문입니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식사하더라도 각자가 편 발우 수건 위에서만 식사가 이뤄지므로 식사 끝난 뒤 각자의 발우 수건만

챙기면 어떤 소란이나 불결함도 남지 않아 간편하고 깨끗합니다.

방바닥에 묻어있을지도 모르는 더러움이나 오염된 것들로부터 음식이 담긴 발우를 보호하는 의미도 있지요.
이런 이유들보다는 방바닥, 즉 생활이 이뤄지는 삶의 자리에는 온갖 부정(不淨)과 사악함도 함께 존재하는데,

이런 것들과의 격리, 차단의 뜻이 더 강합니다.
차완 밑에 깔개를 까는 것은 발우 수건 위에 발우를 얹는 불법(佛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차완을 다룰 때 매우 조심하는 모습은 발우를 펴고, 공양을 하고, 발우를 거두는 과정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지극히

조심하며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발우는 단순한 밥그릇이 아니라 청정한 법기(法器)이며 생명의 신성과 고귀함을 상징합니다.
이도차완을 다룰 때 바닥에서 10cm 이상 쳐들어서는 안되며, 두 무릎을 꿇고 두 팔꿈치도 바닥에 붙인 채 엎드려서

감상하는 것이 규칙입니다.

차완을 이렇듯 신중하게 다루는 것은 비싼 가격 때문이 아니라 미의 종교로까지 칭송받는 이도차완에 헌정하는

예절로 봐야 옳습니다.
차완을 사용하기 전에 맑은 물로 헹구는 것은 발우에 음식을 담기 전 물로 씻어내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청결을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정화(淨化), 즉 비속한 상태를 신성한 공간으로 바꾸는

종교의식으로서의 의미가 더 큽니다.
‘마하승기율’ 등 불교 경전의 흙으로 만든 발우에 관한 계율에 흙 발우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려면 먼저 그 땅에 물을 뿌린 뒤

내려놓거나 발우 밑바닥에 만다라의 섭을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역시 부정한 공간을 청정하게 정화된 제의(祭儀) 공간으로 변화시키는데 물이 정화수로 이용되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와같은 물의 정화의식을 만다라로 형상화 한 것이 이도차완 굽 주변에 특이한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흔히 ‘가이라기’ 또는 ‘매화피’라고도 부르는 이 오돌토돌하고 까칠까칠한 모습은 흙발우의 굽 언저리에 물방울 형상의 만다라를

두라고 한 부처의 법문을 그릇으로 나타낸 것이지요.
흙발우의 세계에 내재된 만다라의 비밀을 보다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이도차완입니다.
이도차완의 미술적 원류는 양산 통도사 용화전 앞마당에 있는 봉발대(奉鉢臺)로 보여집니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이 희귀한 발우는 미륵세존이 이땅에 강림하시면 그때 공양을 올리기 위해 만들어 둔 것인데,

인간의 이상세계를 향한 꿈을 확인시켜 주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농차에서 볼 수 있는 차완을 씻어내는 물과 발우 공양 때 사용되는 물은, 이승의 부정스런 자리를 정화시켜

청정무구한 정신세계에서 살 수 있기를 갈망하는 인간의 오랜 꿈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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