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샤쿠의 비밀 / 차시
‘농차’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차 도구가 찻가루를 떠낼 때 쓰는 차샤쿠, 즉 차숟가락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차시(茶匙)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일본 다도 역사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도구로서 농차가 생겨나기 이전에는 없었던 물건이지요.
대나무를 쪼개어 껍질 부분을 이용하여 만드는데, 끝 부분이 숟가락 입 모양과 비슷합니다.
다도의 원류인 초암차를 창시한 무라타 슈코는 이 차샤쿠를 손수 만들어 썼으며, 그 이후 다도의 권위자들도
이 전통에 따라 직접 만들었습니다.
다도 명인들이 사용하던 차샤쿠는 일본의 역사 미술품으로 추앙받고 있지요.
계절 장소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멋을 부리거나, 사연있는 차인들과의 교류 등 기념할만한 일이 있었을 때는
손잡이에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적고 만든 사람 이름을 적어 남기기도 했습니다.
차완은 중국과 조선에서 들여와 썼지만 차샤쿠만은 일본 땅에서 자란 대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중국 한국의 역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기능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무라타 슈코 이전에는 차샤쿠를 알지 못했고 사용한 적도 없습니다.
차샤쿠는 슈코의 창안으로 등장한 전혀 새로운 차 도구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슈코는 차샤쿠를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여기서 일본 다도와 조선 불교문화의 교류 비밀이 드러납니다.
한국의 절집에서는 발우공양을 하지요. 일본 불교에는 없거나 크게 변형되었습니다.
발우공양 때 발우와 함께 사용되는 매우 특이하게 생긴 숟가락이 하나 있습니다.
공양하는 숟가락보다는 훨씬 작게 생긴 숟가락입니다.
나무나 대로 만들었는데, 이것을 여등대(汝等臺)라 부릅니다.
여등시(汝等匙), 생반대(生飯臺)라고도 하고, 여동대, 여동밥, 여동통이라는 말로도 통용되고 있는 매우
오래된 불교 용어지요.
여등대는 승려가 발우 공양하기 전 발우에 담긴 밥 중에서 먼저 몇알을 덜어내어 담아 놓는 도구인데,
귀신들을 먹이기 위해서지요.
이 이름은 발우 공양때 외우는 게송(偈頌)인 하발게(下鉢偈), 즉 발우를 펴놓고 외우는 게송의 첫 구절인
‘여등귀신중(汝等鬼神衆)’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때 여등대에 담는 밥의 양은 밥알 3~ 7낱
사이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보다 적게 주면 귀신들이 굶주리게 되고, 많이 주면 배가 터지기 때문에 반드시 정해진 만큼만 주어야 합니다.
여등대 의식은 순수한 불교문화 소산이어서 한국 민속이나 전통문화와는 관계없던 것이지만, 불교의식이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세속으로도 전해졌지요.
세속에서는 흔히 여동밥 떠놓는 조그만 밥그릇을 여동대라 하고, 여동대에 떠놓는 밥을 여동밥, 여동밥 담는
통을 여동통이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여등(汝等)이란 ‘너희들’을 뜻하며, 여등(余等)은 ‘우리들’이란 뜻을 지닌 매우 오래된 말입니다.
여등대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이 차샤쿠라고 하기 위해서는 발우 공양법이 일본에 전해졌어야만 합니다.
이 문제는 원효사상을 흠모했던 공야상인(空也上人·903~972), 화엄학 계승자 명혜상인
(明慧上人·1173~ 1232), 정토염불 계승자 법연상인(法然上人·1133~ 1212)과 조선시대 일본 외교관
대부분이 일본승려였다는 사실이 그 해답이 됩니다.
이점은 다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결국 차샤쿠는 여등대를 모체로 하여 만든 일본인 특유의 기질이 빚은 소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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