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다완을 바닥에 놓는 이유

썬필이 2019. 8. 15. 12:36

다완을 바닥에 놓는 이유

일본 다도의 농차는 차완을 찻상이나 기타 여러 형태의 탁자 위에 얹지 않습니다.

가끔 우리나라 차인들이나 차를 파는 가게같은데서 말차를 찻상에 얹어서 타거나 마시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농차 본디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한국식이라고 말해버린다면 달리 말할 까닭이 없겠으나 말차에 상관된 다른 조건들을 볼 때 한국식이라고

우기는 것은 다만 억지거나 무지일 뿐임을 금방 알 수 있지요.

농차에서 차완을 방바닥에 놓는 것은 이 차법의 유래가 발우 공양에서 왔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있는

셈이지요.

즉 발우 공양이 지닌 심오한 종교적 세계를 다도의 미학으로 응용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발우를 상(床) 위에 올리지 않고 바닥에 놓는 까닭은 승려 스스로를 낮추기 위함입니다.

몸과 마음을 대지와 같이 낮추는 것이지요. 겸손을 실천하고자 함이기도 하고요.

밥 그릇을 일부러 땅바닥에 놓고 식사하는 것은 승려뿐입니다. 상이나 식탁이 없어서가 아니지요.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대고, 그 다음에 머리를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와도 같은 원리지요.

상을 차리지 않는 것은 수행의 기본입니다. 상을 차리자면 반찬과 그릇 등을 여러 가지 갖추어야 합니다.

승려의 수행은 그런 세속적 번잡함과 음식에 이끌리는 욕망을 극복하는 것이며, 음식을 만들어 차려놓고

절제하기보다는 아예 음식을 장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릇이 많으면 그릇마다 담을 음식을 장만해야 하지요. 승려의 계율에 되도록 적게 먹도록 정한 이유가

적게 먹으면 그만큼 살생이 줄어들기 때문이거든요.

먹기는 하되 최소한의 양으로 육신을 보존할 수 있는 만큼만 먹고 수행하라고 한 것은, 인간 육신을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살생은 생태계의 건강한 순환을 자연스럽게 유지해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모든 거소가 연관되어 있다는 불교 철학이 매우 구체적인 모습으로 실천되는 증거가 발우 공양입니다.

무소유 정신의 생활화가 곧 발우 공양이기도 하고요.

초암차를 창시하고, 중흥시키고, 완성한 일본 다도의 스승들은 이같은 발우 공양이 지닌 지극한 생명사상을

받아들여 당시 일본의 폐해였던 호화로운 사치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는 사무라이와

귀족들의 차문화를 혁파시켜 나갔지요.

궁궐처럼 크고 호화롭게 지은 차실에 수백명 씩 손님을 초대하여, 금은보화와 비단으로 치장하고 값비싼

차완을 가져와 경쟁하듯 뽐내는 서원차(書院茶)의 폐단을 끊지 못하면 일본은 스스로 멸망하고 말것이라는

여론이 초암차를 창시하게 만든 것이었으니까요.

이때 이도차완 자체가 본디 승려의 발우였고 보면 발우가 비록 차완으로 바뀌어 사용될지라도 발우 공양의

본질이 조금도 훼손됨 없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있었으니, 참으로 지혜로운 응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다도 완성자인 센노 리큐로부터 농차를 배우고 그 정신을 실천한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의 모순을

극복하면서 통일의 단초를 열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일본통일이 달성되어 오늘의 일본이

태어나는 초석을 만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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