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예가

김병열 - 비슬도예원

썬필이 2019. 9. 21. 15:27

김병열

1990년 경주공업고등학교 요업과 졸업

개인전 3회

주소 : 경북 청도군 각북면 헐티로 787  / 054-371-5588

김병열 작가
비슬도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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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보기

"연간 1천여점 만들지만 맘에 드는 건 30점" …도예가 김병열씨 -

매일신문 - 2009-04-25  http://news.imaeil.com/NewestAll/2009042506152223918

부드러운 곡선, 아름다운 빛깔, 다양한 문양…. 도자기의 멋!
섬세하고 매끄럽고 빛나는 도자기. 투박하고 거친 도자기는 또 그대로 그 멋을 낸다.

흙과 손, 물레와 발은 여인의 잘록한 허리, 풍만한 엉덩이를 빚어낸다. 도톰한 젖꼭지도, 뾰족한 주둥이도, 받침대도 그 모양은

물레가 돌수록,손길이 갈수록 진화한다.

그 손길은 기원전 5천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생활용기, 제사용품, 예술작품을 잉태하고 있다.

토기에서 도기로, 도기에서 석기로, 석기에서 자기로 불은 그 뜨거움을 더해간다. 바람은 불과 흙으로 분다.

유약으로 매끄럽고 광택이 난다. 강도를 더한다.

안료는 다양한 빛깔과 문양의 묘를 살린다. 장작과 가스, 전기 가마에서 불과 바람의 세기는 높고 낮고, 일정하고

불규칙함으로 조화를 부린다.

그 조화는 비로소 도자기 특유의 아름다움과 모양의 다양함을 조절해낸다.

손에서 시작된 흙은 불과 바람을 타고 미(美)를 완성한다.

흙을 빚는 장인의 손맛은 변해왔다. 장인의 손뿐 아니라 물레와 가마, 안료와 유약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다양해졌다.

장인의 손과 함께 경험과 과학의 축적은 도자기의 맛과 멋도 변화시켜 왔다. 전통에서 현대로, 현대에서 전통으로 오간다.

현대와 전통이 함께 어우러지기도 한다.

젊은 도예가 김병열(38·청도 각북면 남산리)씨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빚어낸다. 20년을 흙과 씨름했다.

꽁지머리에 콧수염, 회색 한복은 그 자체로 전통 도자기의 맛을 풍겨내는 듯했다.

폐교에 둥지를 튼 그의 작업장 입구는 넓은 운동장과 감나무, 장독대, 강아지까지 반겼다.

'비슬도예원'. 도자기의 맛을 빚어내는 터로는 제격이었다.

그는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도예정신은 전통을 잇되, 제조기법은 현대화와 과학화를 추구한다’는 것.

김씨의 도자기엔 포도,국화, 은행잎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금빛과 은빛, 청동의 빛깔이 선연하다. 그 문양은 새긴 것이 아니다.

도자기 표면에 포도, 국화, 은행잎을 포함한 꽃잎 문양이 스스로 피어난 작품이다.

그 문양은 스스로 나타났지만, 결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수없는 실패를 거듭했다.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많은 생명이 스러졌다.

그리고 '결정유 자기'(結晶釉磁器·Crystalline Glaze Porcelain)가 탄생했다.

유약에 금, 은, 구리 가루 등을 적절한 비율로 넣은 뒤 굽는 온도를 잘 조절하면 특이한 형태의 결정(문양)이 나타나는 것이다.

유약과 안료의 적정한 조합비, 굽는 온도의 일정함과 변화 등이 변수다. 그 결과가 바로 '결정유 자기'다.

작은 점들이 촘촘히 드러나거나, 비정형의 투박한 문양은 쉽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꽃잎처럼 일정한 형태의 문양이 도자기 표면에 나타나도록 하는 것은 그야말로 숨은 ‘기법’이다.

김씨는 그 기법을 위해 짧게는 3년,길게는 10년 공을 들였다.

수천, 수만개의 ‘마음에 들지 않는’ 도자기를 깨뜨렸다.

김씨는 어릴 적 학교 공부에 별 관심도, 소질도 없었다. 다만, 미술시간만큼은 그의 눈길을 모았다.

그림 그리기를 비롯해 미술시간은 즐거웠다.

특히 찰흙을 만질 때는 선생님에게 칭찬을 듣는 시간이었다.

친구들에게 가르치고 뽐내는 신명나는 때였다. 유일하게 ‘수’를 받는 과목이기도 했다.

그는 재능을 알아본 중학교 은사의 추천으로 경주공고 ‘요업과’에 진학했다. 요업과는 힘들었다.

교사와 선배들의 훈련은 혹독했다. 동기생 20여명은 그 훈련과 실습을 견뎌내지 못했다.

대다수 학부모도 자녀들에게 실습보다 대학에 진학할 것을 원했다.

2학년이 되면서 사실상 실습반과 이론반(대학 진학반)으로 나뉘었는데, 실습반에는 김씨를 포함해 단 2명이 남았다.

이론반은 도자기를 굽지 않았고, 실습반은 대학 진학을 위한 수업을 받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재능은 작품으로 드러났다.

고교 2학년 때 출전한 경북지역 ‘도자기 경연대회’에서 금상(1위)을 차지한 것. 그러나 대학 진학에는 성적이 걸림돌이었다.

결국 대구공전(현 대구공업대) 요업과 조교로 ‘취직’을 했다. 2년 6개월 동안 또래나 후배뻘 되는 학생들에게 도자기 실습을 했다.

군 제대 후 재취업 등을 고민하다 결국 고향 청도에 자리를 잡았다. ‘나만의 작업실’을 통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청도 풍각면에서 4년가량 작업을 하던 그는 1995년 고향 동네에 터를 잡았다.

집안의 논밭을 팔아 폐교된 각북초교 자리에 아내와 함께 둥지를 튼 것이다.

이후 3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결정유 자기’를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98년 6월 김씨 특유의 ‘결정유 자기’ 제조방식과

도자기에 대해 특허를 등록했다. 특히 유약에 금가루를 섞어 빚은 결정유 자기는 수집가들의 환심을 샀다.

김씨의 현대적 실험은 끝이 없다. 최근에는 결정유 자기뿐 아니라 기능성 자기에도 관심을 돌리고 있다.

유약 없이 빚은 흙을 재벌구이한 뒤 붓이나 스프레이로 청도 감물을 바른 ‘감물 도자기’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접목하는 그의 작업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도자기의 오묘한 빛깔과 문양은 김씨의 땀에서 나왔다.

◆정신은 전통, 기법은 현대

-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흙을 만지는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습니다. 초교 시절에도 미술시간만큼은 신이 났지요.

선생님들이 공부 못하는 나에게 찰흙 만들기에 대해서는 늘 칭찬을 해주셨지요.

고교 ‘요업과’를 시작으로 약 20년 동안 도자기를 빚고 있는 셈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도자기를 빚나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욕심과 조급함을 가진다면 실패하기 마련이지요. '혼을 불어넣는다'는 선인들의 정신을 배우고 있습니다.

또 정신은 옛 장인들의 전통을 잇고, 제작은 현대적 실험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늘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아름답고 신비스런, 결정유 자기

-결정유 자기란.

"굳이 풀이하자면 '유약을 통해 결정이 나타나도록 한 자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약에 금, 은, 동 가루를 적절히 섞어 온도 조절을 하면 결정이 나타나는데, 반복되는 실험을 통해 꽃잎 문양을 비롯해 다양하고

신비스런 문양을 얻을 수 있지요."

-왜 하필 ‘결정유 자기’인가요?

“고교 요업과에서 도자기 표면에 그림이 아닌 자연적인 문양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어려운 제작기법과 신비스런 문양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결정유 자기’의 유래는.

“처음 만들어진 것은 중국 명나라 때(1368~1644)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요변(불길과 통풍의 영향으로 도자기 색깔 등이 변하는 것) 흑유’는 결정유 자기의 고전 중의 고전으로,

예나 지금이나 도공들이 재현해 보고 싶어 하는 명품입니다.

이후 19세기 중엽 유럽의 왕립 또는 국립도자기연구소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해 아름다운 색상의 결정유 자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연구와 실험, 시행착오의 결과물

-‘결정유 자기’는 어떻게 만드나요?

“제작 과정은 전통 도자기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장작가마와 발물레를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현대적인 전기가마에서 더 균일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단지 비슷한 재료를 쓰지만, 유약과 안료의 조합비와 굽는 온도가 결정 모양(結晶狀)을 좌우합니다.

특히 불 조절이 관건입니다. 단 2℃의 온도변화에도 생성된 결정이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유약과 안료의 조합비와 굽는 온도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힘듭니다.

결정상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없는 시행착오와 연구, 경험의 결과라고밖에 말할 수 없겠군요.”

-특징은 무엇인가요?

“아름다운 문양이겠지요. 도자기 자체의 형태나 소성과정에서 안료로 그려 넣은 그림이 아니라 굽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기묘한

형태의 문양이 특징입니다.

인공의 제작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연의 문양이 찬탄을 자아내게 하지요. 연간 천 수백 점을 만들어보지만,

마음에 꼭 드는 작품은 기껏해야 30~40점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결정유 자기 제작에 전념하는 도예가는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이지요.”

◆끊임없는 새로움의 추구

-도예의 길을 걸으면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중국 일부에서 화장실 세면대나 변기에 전사지 등을 붙여 결정유 자기 흉내를 내고 있다는 것을 들을 때는 이 작업을 그만두고

싶기도 합니다. 혼을 불어넣은 작업이 희화화되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더욱 다양하고 신비스런 결정유 자기를 빚어내는 것입니다. 또 항균, 방충 등 기능성을 가진 도자기 제작도 시도할 생각입니다.

현재 '감물 도자기' 제작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특허 출원 중입니다.

아이들의 도자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올해부터 '체험교실' 등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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