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과차맛
차를 우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찻잎의 질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차를 우리는 물의 질입니다.
허차서(許次紓)는 《다소 茶疎》에서 물을 떠나서는 차를 논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다인은 물의 질이 차의 질보다 먼저라고까지 말합니다.
아마 그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럽 대륙의 지하수는 대부분 석회수라 그 물로 차를 우리면 차맛이 없다고 합니다.
차를 이야기하면서 기물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아도 물을 논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물맛이 좋다고 그 물로 우린 차맛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물맛은 사실 성분보다는 온도가 물맛을 더 많이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물맛은 거의 수온으로 결정됩니다.
섭씨 13도 전후의 물이 가장 맛있고, 35도~45도의 물맛이 가장 나쁩니다.
같은 수온일 때는 미네랄 등 미량 성분이 물맛을 좌우합니다.
칼슘과 마그네슘이 많이 함유된 물을 경수라고 하는데, 물맛도 나쁘고 차맛도 나쁩니다.
찻물을 끓일 때 물이 뿌옇게 흐려진다면 경수이고, 찻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연수라고 하더라도 한번 끓인 물을 계속 끓이면 산소가 증발해서 물맛이 나빠집니다.
질긴 고기나 채소를 오래 끓여 만드는 스튜는 경수로 만들 때 더 진한 감칠맛이 있습니다.
일류 프랑스요리 주방에서 경수로 스튜를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파스타도 경수로 데쳐야 씹는 맛이 살아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연수는 미네랄 성분이 적어 그만큼 차의 성분이 우러나기 좋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칼슘은 경수에서는 물맛을 나쁘게 하지만, 연수에 조금 있는 칼슘은 물맛을 좋게 합니다.
이런 부분은 인간의 머리로는 그냥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옛날부터 석회석이 많은 지역의 물맛이 좋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점토층을 통과한 지하수도 물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눈 녹은 물이나 빗물이 맛있다는 것도 그 물이 연수일 경우에 하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환경오염이 심한 지금은 턱도 없는 말입니다.
요즘 내리는 눈과 비는 보기에만 깨끗하지 실상은 깨끗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냥 수돗물을 한우물 정수기로 정수한 물로 차를 우린답니다.
무슨 신기한 것을 찾아다니기보다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