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애사상의 내력
원효의 무애사상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를 이끌어준 앞 시대 사상가들의 다양한 삶의
이력들 속에서 싹텄습니다.
원효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원광, 안함, 자장, 명랑, 의상 등은 지배층 중심의
불교를 지향했지요.
거기에 비해 혜숙, 혜공, 대안 등은 서민을 중심으로 불교를 펼쳤지요.
지배층을 중심으로 한 귀족불교를 전개한 사람들이 모두 유학파들이라면, 서민들을 중심으로
불교를 전개한 이들은 모두 국내파였던 점도 분명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지요.
원효가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대는 이러한 두 입장이 맞물려 있던 때였지요.
그들 모두는 치열한 문제의식을 전제하여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며 고뇌하고 깊은 사색에 잠겨 살았던
구도자들이었지요. 원효는 이같은 스승과 선배들의 진지한 수행 분위기 속에서 수행의 첫 길을 시작했습니다.
한 세대 위에 있으면서 원효와 당대를 같이 살며 수행했던 혜숙, 혜공, 대안화상 등은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분들이지요.
혜숙, 혜공, 대안화상은 허위와 가식의 포장 속에 갇혀버린 그 시대 귀족들과 승려들에게 참다운 삶의 모습,
즉 그들이 상실해버린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을 거침없이 보여주었지요.
혜공은 조그만 절에 살면서 날마다 미치광이처럼 술에 취해서 등에 삼태기를 진 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는 우물 속에서 잠을 자도 옷이 젖지 않았지요. 나무꾼과 소치는 아이들, 농부들이 쓰는 삼태기를 등에
지고 술에 취해 춤추고 노래한 것은 이 티끌세상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대안화상은 언제나 장터거리에 살면서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 했습니다.
호화롭게 생활하는 귀족사회의 궁전을 마다하고 장터거리에 살면서 허위와 가식에 가득찬 귀족 승려들에게
수행자의 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올바로 전해줌으로써 사치에 젖어 있는 귀족들이 그들 삶을 뒤돌아보게 하기
위해서였지요. 시골의 혜숙, 골목거리의 혜공, 장터거리의 대안이 보여준 것은 왕실이나 귀족들이 사는
성 안의 큰 절에서 귀족생활하는 승려들에 대한 무서운 질책이었지요.
원효는 이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비로소 무애의 실천행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원효는 삼국통일 전쟁이 남긴 비극의 얼룩을 지워내면서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깊고 크며,
인간에 대한 불쌍함과 애처러움은 또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원효가 깨달은 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낼 수 있는 것이 대비심(大悲心)이며 보살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지붕 밑에서 한 그릇에 담긴 밥을 함께 먹는 것과 같은 삶을 실천했습니다.
민중속으로 들어가 함께 지내면서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삶을 추구했지요.
바가지 하나에 담겨 있는 밥이나 국물을 골고루 나눠 먹으면서 해맑게 웃고, 먹고난 뒤에는 춤추고 노래하여
세상 근심을 덜어내는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밥이나 국물을 담는 바가지였습니다.
마치 석가모니 시대의 흙발우가 지닌 의미와도 닮았지요.
이같은 원효의 무애사상이 일본에 전파되어 무애차가 되고, 다시 농차라는
이름의 초암차 형식이 생겨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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