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 청주시한국공예관 기획전 - 네 가지, 그러한 것
전시기간 : 2024. 11. 5.(화) ~ 2025. 1. 14.(화)
전시장소 : 청주시한국공예관 갤러리 3(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문화제조창)
충북의 공예가
지역문화의 가치향상과 경제 활성화, 도시재생을 위한 미술관의 역할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예술과 사회,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들을 훌륭하게 매개해 줄 수 있는 기관으로서,
2001년 청주시한국공예관이 설립되었습니다.
지역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여 지역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되며,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도시재생을 이끌기 위해 각종 문화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청주의 경제, 사회, 문화적 발전을 위한 필요 요인으로 청주시한국공예관은
자리 잡아 왔습니다. ‘
충북의 공예가’는 충북 지역의 공예가와 공예계를 기록하고 조망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기 위한
청주시한국공예관의 주요 전시 프로젝트입니다.
동시에 충북 지역 공예문화계가 가진 정신과 가치, 목표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고
있는 지역 공예가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청주가 대한민국 최초로 세계공예협회(WCC) 인증 공예도시가 된 2024년, 청주시한국공예관은
충북의 공예가라는 이름 아래 다채로운 도예 문화를 선보입니다.
전통을 이어 현재를 말하고 미래로 얽혀나가는 아름다운 도자 예술과 함께, 예술과 삶 속에
녹아나는 충북 도예가들의 관계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충북의 공예가’는 앞으로도 지역에 뿌리내린 애정과 관심을 기반으로 찬란한 공예문화를 꽃피운
‘우리’를 다양한 전시로 선보이겠습니다.
네 가지, 그러한 것
생에 관한 무수한 고찰 중에서, 삶이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인류의 오랜 고전, 성경이 창조에 있어 인간과 흙에 대해 언급한 사실은 인류의 역사가 곧 흙의
역사임을 증명하는 단면입니다.
생의 근원을 자연 요소에서 찾고자 하는 견해는 흙과 물, 불과 바람으로 확장됩니다.
불교에서는 흙과 물, 불과 바람이 화합하여 사람이 된다(地水火風和合成人)고 하였으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모든 물질이 물, 불, 흙, 공기의 네 가지 기본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극히 단편적인 사례일 뿐, 동서양 다양한 분야의 사상에서 어떠한 시작이자 끝을 자연에서
찾고자 한 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류가 근원에 대한 답변을 구하고자 했던 이 네 가지 자연 요소가 경이로운 합일을 이루는
예술이 있습니다.
흙과 물이 빚어내고 불과 바람이 구워내는 도자 예술은 근원의 답을 품은 자연의 응집체이자
인류문명의 시작을 함께 한 동반자입니다.
흙, 물, 불과 바람이라는 자연을 교집합으로 두고, 삶과 도자 예술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닮아있습니다.
도예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마치 스스로 그러한 자연 그 자체처럼,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온몸으로 흙을 느끼고 물에 흘려보내며 불을 이겨내고 바람을 받아들입니다.
2024년, 청주시한국공예관은 ‘충북의 공예가’라는 기획 아래 화합의 예술로서 충북 지역
도예가들의 예술과 삶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도자 예술이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네 가지 모습을 도자가 완성되기까지 꼭 필요한
네 가지 자연의 요소에 담아보았습니다.
사람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들이 있습니다.
삶이 그러하고 예술이 그러하며 자연 또한 그러합니다.
자연이 자연으로 존재하고 사람의 손을 통해 자연이 문화로 변화하고, 문화 속에서 사람이
사람과 만나 우리를 이루는 과정 모두 이해를 넘어 그러하게 된 것들입니다.
우리는 바람 한 자락에 더불어 감상을 나누고, 흐르는 물처럼 동등한 눈높이로 서로를
바라보며, 번져가는 불길에 세계를 확장하고 예술적 토양을 바탕으로 삶의
풍부함을 더해갑니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너무나 당연하기에 그 가치가 새삼스러운 부분들을 이 전시를 통해 애써
재회하려 합니다.
자연과 삶을 담고 사람을 닮은 도자 예술을 통해 우리의 세계가 일으킨 당연하지 않은
기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 불, 흙, 공기로 세상이 시작하고 손이 자연을 만나 예술을 시작했으며 만남이 우리를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스스로 그러하게 된 것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모든 것을, 재회하고 찬미하는 오늘이고자 합니다.
PART 1.
서로를 나누는 바람
청풍래고인(淸風來故人)은 맑은 바람과 함께 찾아온 오랜 친구처럼 만남의 기쁨을 담은
고사성어입니다.
따스하고 반가운 인간관계를 함축하는 의미는 손부남 작가와 김장의 작가의 관계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만물과의 상생에 관한 관심을 토대로 꾸준히 작업해 온 손부남 작가는 김장의 작가와의 관계를
계기로 도예 분야의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표현의 폭을 넓혀왔습니다.
백자토를 비롯해 여러 흙으로 섬세한 조형 예술을 구가하며 화합의 방향성을 논하는
김장의 작가는 손부남 작가가 삶뿐 아니라 작품활동에서도 중요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공기는 순환하며 바람이 되고, 바람은 흙이 되어 생명의 살갗을 만듭니다.
가마에 들어간 흙은 불과 공기를 만나 단단해지는데, 이때 흙의 성분과 산소의 만남은 도자기의
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서로의 지음(知音)이 되어 삶과 예술에 유의미한 기쁨이 되는 이들의 관계는 서로의 예술적
토양이자 변화의 요인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손부남 Son Bu-nam
혼돈의 이미지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자연과 사물을 향해 숨을 고르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Artist’s Favorite
손부남 작가는 상생의 주제 아래 생에 대한 원초적인 기원을 그립니다.
아주 오래된 인류가 동굴 벽면에 남긴 흔적의 계보를 이으며, 살아있는 것들로 이루어진
연결망을 넓혀갑니다.
고대 인류가 그린,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믿음과 희망은 곧 생명으로 요동치는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는 상생에 대한 기원입니다.
자연이 품은 태초의 에너지로 약동하는 표면은 작가가 경험한 세상에 대해 직접적이면서도
순수한 인상을 드러냅니다.
휘몰아치는 생명의 호흡 속에서 생각하는 주체, 자아는 한낱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전체에 녹아드는 일부가 되어 함께 존재합니다.
작가의 시선과 사유 속에서 만물은 우열의 가림 없이 순환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작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상생을 담아냅니다.
평면 위에, 도자 위에, 돌가루와 물감을 섞고 여러 재료를 이용하는 작업 방식은 독특한
질감으로 다가옵니다.
작가만의 조형 요소로 이루어진 각각의 표면은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이 만나고
소통하는 교차점입니다.
김장의 Kim Jang-ui
서로를 겨누던 포탄 위에 핀 꽃, 그리고 안식을 위하여
Artist’s Favorite
김장의 작가의 작품은 재난과 상실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감수성에 대해 제안합니다.
작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로 사는 삶, 서로에 대한 배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 모두의 공존,
그 공존을 위한 각자의 책임감 등을 고민하며 흙을 만집니다.
백자토 및 여러 흙으로 다구(茶具)를 비롯해 조명 오브제 등의 다양한 형상을 만드는 작가의
조형 작업은 자연이 있기에 영위하는 삶에 대한 감사와 고민, 즐거움으로 가득 찬 환경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녹음이 우거진 때 여름비 소리를 들으며, 또는 소복이 쌓이는 흰 눈이 만든 고요 속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찻상을 두고 마주 앉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 이 시간 속 흐르는 평화와 안식은
작가가 그려내는 소망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소담하면서도 진중하고 편안하면서도 활력을 갖춘 작품이 탄생합니다.
어지러이 얽히고설킨 만휘군상임에도 끝내 갈등을 풀고 서로를 위하며 피워낸 안식은,
작가의 작품에 기대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PART 2.
헤아리는 물
흙이 도자가 되는 과정에서 흙 자체의 성질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수분의 정도입니다.
점토질의 흙에 물을 혼합해 가소성(Plasticity)을 조절하며 손과 물, 흙이 만나 형태를 이룹니다.
손을 통한 재료의 변형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물은 조화로운 매개자가 됩니다.
물로 흙을 빚어가듯, 예술에 대한 유대감으로 삶을 빚어나가는 부부 도예가들이 있습니다.
김진규·은소영 작가와 임병한·권지영 작가는 부부이자 예술가라는 관계 위에서 흙을 빚듯
삶을 빚어갑니다.
김진규 작가는 분청 기법에 충실하여 작가만의 인화문印花文을 통해 순수한 정서를 전달합니다.
은소영 작가는 백자토를 이용한 조형 작업을 통해 전통적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합니다.
임병한 작가는 무유소성 기법으로 흙 본연의 질감을 살린 작업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며
권지영 작가는 내면을 대변하는 상징물로서 도자 오브제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예술적 영역과의 결합자(combinator)이며, 반대로 예술 자체가 이들 관계의
동반자이기도 합니다.
이는 삶과 예술을 연결하는 서로의 안정이자 변화의 요인이 되고, 예술은 이들의 관계와 삶,
세계 사이의 끈이기도 합니다. 서로를 헤아리고 이해하며, 마음으로 같아져 흘러갑니다.
은소영 Eun Soyoung
작가이자 모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담아낸 길상(吉祥)의 의미
Artist’s Favorite
은소영 작가는 삶의 경험에서 비롯된 다양한 염원을 시각적 표현으로 옮겨낼 방법을 고민하며
이미지를 수집하고 도자에 담아냅니다.
작가라는 예술적 자아를 이루는 여러 조각이 그녀 안에 다채롭게 존재하며, 특히 가정을
이루는 어머니로서의 고민은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 되었습니다.
가족의 평온을 기원하며 건강과 풍요, 휴식을 바라는 마음은 갖가지 상징들로 작품에 드러납니다.
결국 모든 이들이 바라 마지않는 모든 소망이 작가의 언어로 표현됩니다.
진실로 소중한 이의 행복을 바라는 맑은 본질이 길상의 의미가 되어 도자 조형으로 나타납니다.
섬세한 부조 조각이 더해진 백자의 맑은 표면은 마치 염원이 담긴 기도와 같아서, 작가의 작품
하나하나가 행복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읽힙니다.
작가의 조형 언어는 작가 개인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었기에 진실하고, 누구나 바라는
평안과 행복을 말하기에 공감의 울림을 가지고 현대의 길상도(吉祥圖)로 자리매김합니다.
김진규 Kim Jinkyu
<무한한 확장>의 푸른 색면은 무한한 공간 속 에너지와 생명력의 상징으로,
공간적 한계를 넘어 시공간까지 확장하고 싶은 내적 울림의 표현이다
Artist’s Favorite
김진규 작가의 작품은 태토로 구운 토기에 백토로 분장하는 전통적인 분청의 기법에
충실하면서도, 작가만의 인화문(印花文)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덧입습니다.
작가의 시선을 거쳐 표면 위를 수놓았던 섬세한 문양은 점차 응집되고 간결해지며,
절제된 표현 속에서 무한해집니다.
깊이 있고 순수한 정서는 그대로 간직한 채 추상의 과정을 거친 표현은 보다 핵심적이며
역동적으로 자연의 속성을 닮아갑니다.
우리나라 분청자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꾸준히 인화분청 작업을 발전시켜 가는 작가의 작업은
긴 시간과 노력, 아득한 인내심을 필요로 합니다.
한땀 한땀 수놓듯 피어난 작품 표면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오로지 작품과 작가만이 남아
고요하고 경건하기까지 한 작업 과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강렬한 푸른 색과 절제된 직선, 퍼져나가는 동심원의 조형적 표현은 작가가 추구하는
초월과 확장의 파형을 만들어냅니다.
자유로운 실험 정신과 조형적 탐구를 향한 열정이 우리 분청의 근원에 뿌리박은 채
더 크고 넓은 영토로 나아갑니다.
권지영 Kwon Jiyoung
나’를 성찰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표현해 나가는 과정
Artist’s Favorite
권지영 작가는 자아의 예술적 표현을 위한 도자 오브제를 만듭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10여 년의 세계 여행에서 마주한 삶의 경험, 생명과 죽음 등 자아와 관련된
무수한 편린들이 모여 여러 형태의 오브제를 형성합니다.
작가는 흙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의 기술과 재료를 사용합니다.
핸드 빌딩과 석고 캐스팅, 테라코타 기법, 장작가마, 저온 소성 기법 등을 활용해 작업을
완성해 갑니다.
또 필요하다면 페인팅이나 퍼포먼스 요소를 더하거나 여러 소재와 접목하기도 합니다.
작가에게 ‘뿔’은 자아 표현을 위한 대표적인 형상입니다.
삶의 여러 경험 속에서 겪은 감정과 의미들이 단단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굳어갑니다.
삶과 예술 작업은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자아를 성찰하는 환경이자 과정의 일부이며,
예술에 삶을 맞춰나가기보다는 작업의 방식과 재료 등을 삶에 맞춰 가꾸어나갑니다.
흙으로 빚은 작가의 정체성은 작가만의 언어로 써나가는 생에 대한 기록입니다.
임병한 Im Byunghan
이것은 나를 대변하는 호랑이들의 이야기이며, 내가 말하고 싶은 표현과 소리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의지이다
Artist’s Favorite
임병한 작가의 소통은 신화적이고 민족적이며, 그렇기에 상징적이고 해학적이면서도
친근합니다.
작가만의 표현 방식으로 생명을 얻은 호랑이들은 전래동화 속 호랑이들을 떠올리게 하고,
삿된 것을 쫓는 영물의 부적으로 힘찬 에너지를 띄는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긴 시간 우리와 함께해 오며 여러 의미를 품었기에, 작가는 호랑이를 통해 작가의 삶을
표현하며 세상과 주고받고 싶은 소리를 담아냅니다.
전통 장작가마를 이용해 60시간 이상 구워내는 무유소성 기법은 자유분방한 조형과 맞물려
작가만의 훌륭한 언어이자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흙 본연의 질감을 살리면서도 자연유(自然釉)의 우연적 변수들이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이야기를 작품에 더하기도 합니다.
도자 작업으로 전해지는 임병한 작가의 언어는 자유롭고 우연적이며 불완전하기에 더욱
감각적이며, 여러 갈래의 상상력을 부추기는 유연한 형태로 보는 이들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PART 3.
흔적을 남긴 불꽃
도자기를 가마에 구워내는 과정은 글 몇 자로 담아낼 수 없는 인고의 시간을 거칩니다.
고온을 견디며 인내의 땀방울을 머금고 불을 이겨낸 흙은 한계를 초월하여
깊이감을 더해갑니다.
〈흔적을 남긴 불꽃〉에서는 도자 예술을 통해 예술가로서 자아를 들여다보고 세계와 소통하는
도예가들을 소개합니다.
유재홍 작가는 작가만의 표현 방법에 침잠하여 타협하지 않는 예술혼을 드러냅니다.
스스로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세계와 존재, 부조리와 믿음, 자신다운 자아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이를 형상화합니다.
조원영 작가는 도예 작업을 통해 과감한 발언을 던집니다.
권력과 존재에 대한 구조적인 성찰은 현실을 드러내고 담론을 시작하는 촉매제로 작용합니다.
끝없는 고민과 고유의 감수성으로 이루어낸 이들의 작품은 색다른 예술적 도전으로서 세상에
자리를 잡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000℃는 가벼이 넘겨버리는 뜨거운 불꽃이 단단하게 흙을 구워내듯이, 타협 없는 성찰과
시도는 세상과의 대화에 불길을 지핍니다.
유재홍 Yoo Jaehong
예술은 사고의 경계선 너머에 있을 것이며, 우리는 진리를 지향하며 이를 바라본다
Artist’s Favorite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 여태 알아 온 것들에 다르게 접근하기
위해서, 그렇게 좀 더 다양하고 풍성해지기 위해서 예술가의 눈이 필요합니다.
유재홍 작가는 세계를 섬세하게 바라보고 다양한 환경에 관심을 가지며 현실과 비현실,
감성과 이성의 경계를 가로지릅니다.
작가의 다양한 관심과 다채로운 사고는 작품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되는데, 완전한 인간
Perfect Human이라는 제목 아래 신화와 신성의 경이로움이 독특한 조형으로 드러납니다.
흙의 물성은 즉흥적인 리듬으로 채워졌다 비워지며 공간감을 탐구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작가가 닿은 ‘흔하지 않은 정의’에 손을 뻗게 합니다.
작가는 분명히 있으나 표현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하지만 무시할 수 없으며 누구나
고민해 볼 법한 지점들에 대해 그려나갑니다.
이를 곱씹으며 상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고정된 삶을 움직이는 변화의 징후입니다.
조원영 Cho Wonyoung
식별하기 힘든, 상상만으로도 구별이 안 되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깰 수도, 찢을 수도,
넘을 수도 없는 ‘의식의 막’이 작업 결과물이든 삶이든, 모든 존재물로부터 유일하게 구분되는
가치 있는 뭔가를 만들지 않을까 싶다
Artist’s Favorite
조원영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내면에서부터 발굴되어 나온 유물처럼 다가옵니다.
작품과 마주하며 이를 감상하고, 갖가지 기호로 빼곡하게 들어찬 표면을 읽어내고자 시도합니다.
각종 숫자와 철자,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눈으로 좇으며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몇 가지
단서들을 발견하고 이해하지만, 작품은 모든 것을 친절히 설명해 주지 않고 감춰버립니다.
세계를 마주하는 경험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며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받아들여집니다.
작품으로 승화된 작가만의 관점은 우리가 흔히 느끼고 공감하는 것과 미묘한 차이를 두고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관으로 향하는 도입부입니다.
익숙했던 세계를 벗어나는 도입부에 서서, 우리가 작가의 작품을 하나하나 읽어내고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몇 가지 단서들에서 시작되는 상상과 사고는 저마다의 또 다른 맥락을 갖추고 뻗어 나갈 것입니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다른 이를 향하여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넬 것을 제안합니다.
이 인사를 시작으로, 작가가 수집한 생각과 정보들이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는
무질서의 맥락으로 흐릅니다.
PART 4.
층층이 빚은 흙
물리적, 화학적으로 쌓여오기를 반복한 흙과 동시에, 보이지 않음에도 분명히 퇴적되어 온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흙이 있습니다.
이 보이는 흙과 보이지 않는 흙 모두가 우리를 있게 한 자양분입니다.
우리는 모두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기에 그 존재의 의미가 무서울 정도로 깊고 큽니다.
태고부터 층층이 쌓여온 흙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연결이자 유대감이며 전통입니다.
<층층이 빚은 흙>에서는 옛것을 익혀 새것을 만듦의 가치를 추구하는 도예가들을 살펴봅니다.
이은범 작가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작업의 화두로 삼아 전통 청자의 깊은 색감을
현대적인 조형으로 담아냅니다.
나지선 작가는 조선과 근대의 석간주 자기를 연구해 작가만의 미감으로 선보입니다.
우리 전통 도자에 깊은 관심을 가진 황인성 작가는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복원과
발전을 거듭합니다.
전통은 비단 오랜 것을 넘어, 아득한 시간 많은 이의 손길과 생각을 통해왔기에
그 가치가 빛납니다.
층층이 쌓여온 전통 위로, 또 한 층 우리 시대의 전통을 빚어가는 이들은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문화적 토양이자 미래를 위한 선물입니다.
이은범 Lee Eunbum
옛 법을 익혀 새로운 것을 만든다
Artist’s Favorite
흐린 비구름 사이로 스며 나온 햇빛 한줄기를 펴 바른 색, 변화무쌍하여 온전히 남겨둘 수
없기에 더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의 색, 망막과 기억에만 남아 아득하게 그리움을 피워내는
자연의 색이 이은범 작가의 청자에 담깁니다.
자연이 찰나의 순간 드러냈다 감춰버리는 색의 비밀을 작가의 작품을 통해 훔쳐본 듯합니다.
작가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화두로 우리의 전통 청자를 연구하고 이를 양분 삼아 현대의
새로운 청자를 피워냅니다.
섬세한 상감기법이 만든 오묘한 색감과 유려한 곡선, 특유의 광택이 시선을 홀립니다.
전통 기법과 재료에 관한 연구 및 응용, 현대적인 미감의 기형과 장식, 청자 특유의 섬세함과
유려함이 작가의 열정과 정성을 바탕으로 조화로운 운율을 자아냅니다.
까마득한 시간 동안 흙이 깊어지는 까닭은 뿌리가 깊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청자의 본질에 천착하며 새로운 줄기를 틔어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이은범 작가의 청자 또한 더욱 맑고 깊어지고 있습니다.
나지선 Na Jiseon
현대의 미감으로 재회하는 석간주자기
Artist’s Favorite
석간주자기(石間朱磁器)는 조선 중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자기입니다.
전통적인 천연 안료인 석간주는 산화철이 많이 함유되어 적색의 빛을 띠기에 이를 유약에
섞어 발라 만든 석간주자기는 짙은 적갈색에서 연한 붉은색까지의 풍부한 색감을 드러냅니다.
석간주는 예부터 여러 방면으로 도예가들에게 가까이 사용됐으나, 고려 시대 흑유자기나 청자,
철화백자 등에 비해 연구와 분석이 미비한 편입니다.
사용된 흙의 품질과 고르지 못한 표면 등으로 미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지 못한 경향이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색의 분포와 흘러내린 유약의 흔적, 태토를 감추기도 드러내기도 하는
불규칙한 투명성은 오히려 현대적인 미감으로 더욱 즐겁고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나지선 작가는 이러한 석간주자기를 연구하고 지금의 관점으로 풀어냅니다.
석간주자기만의 다양한 색감과 장식, 물성을 효율적으로 드러내는 노력을 거듭하여 우리 전통의
미감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활용합니다. 청명하면서도 묵직하게 반짝이고, 흘러내리고 맺히는
리듬감을 지닌 작가의 석간주자기는 앞으로의 변화가 더욱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황인성 Hwang Insung
전통을 알고 익히는 것은 깊고 넓은 뿌리 위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Artist’s Favorite
황인성 작가는 수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 함께 발전시키고 누려 온 전통에 높은 가치를 둡니다.
수천 년간의 노력과 실천으로 이어져 온 것을 알기에 더욱 소중히 여기고, 장작가마와
무유도기를 중심으로 우리 전통 도자를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전통에 대한 믿음과 응용은 작가에게 무한한 영감과 원동력을 안겨줍니다.
그 색이 푸르스름하다고 해서 ‘푸레’라는 이름이 붙은 푸레 도기는 제작 방법의 기원이
삼국시대에 닿을 만큼 오랜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높은 소성 온도와 많은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기법은 굉장한 노력과 연구가 수반됩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되고 힘든 이 방식이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매력을 그 과정과 결과에
부여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또한, 장작가마 속 재가 내려앉아 생기는 자연유와 소금이 기화되며 생기는 유약 효과는
자연적이고 우연적인 아름다움을 표면에 더합니다.
작가는 색감과 기능을 염두에 두며 흙을 조합하고 고화도에서 자연유의 효과를 극대화하며
원초적이고 노동집약적인 결실을 맺습니다.
작가의 도자는 태고의 흙이 가진 날것의 힘을 품고 어스름 위로 드리운 저녁별처럼 반짝이며,
우리 전통의 연구와 발전, 응용과 표현에 진지하게 임하는 마음의 무게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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