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도자기 발전사
도자기 제조에서는 가마의 고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800~1,000℃ 에서 구운 흙그릇을 "도기, pottery" 라고 하고 1,300~1,400℃에서 만드는 것을
"자기" 라고 한다.
그리고 1,200-1300℃ 내외에서 자기가 되는 온도에 도달하지 못한 발전중간형 그릇을
석기(stoneware , 炻器 , 돌로 만든 것이 아님)라고 한다.
10세기 초 통일신라 전까지 한국의 도자기 기술은 조악한 수준이었다.
통일신라 말기부터 북송(北宋, 960–1127)이 멸망하고 남송(南宋, 1127–1279)이 설립되는 중국 혼란기가
계속되면서 중국의 도공들이 한국으로 망명하였고, 이 덕에 청자와 백자 도자기 기술이 전래되면서
고려시대에 완성을 보게 되었다.
특히 10~11세기에서는 송으로부터 다양한 제조기법이 소개되었고, 고려(918-1392)도공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독특한 고려자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의 도자기는 북방식의 백자와 남방식의 청자로 나누어져 있었다.
당나라 시대부터 송나라까지 백자와 청자가 같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다 송나라 후반기 부터 청자를 선호하게 되고, 북송이 멸망하고 남송이 생겨나면서 남방식 청자가 대세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 남방식 청자가 고려에 큰 영향을 미쳐서 고려청자의 발전에 기술적 모태가 되었다.
서해에서 인양되는 난파선 도자기의 대부분이 송대의 청자이기도 하다.
송나라가 멸망한 후 원나라가 들어서자 북방식 백자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백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던 백자와는 완전히 다른게 기술적으로 완성단계에 이른 것이었다.
고려말기에 원나라가 들어서면서 백자와 백자 만드는 기술이 고려에 전해졌다.
하지만 당시 고려는 백자를 만드는 고령토의 주산지인 남해안이 왜구에 의해서 침탈되었기에, 백자를 만들지는
못하고,분청사기만을 만들었고, 나중에 조선이 건립된 후 15세기 부터 백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 백자 도자기 기술은 급발전하여 18세기까지 절정을 이루다가 19세기부터는 세도정치와 기술에 대한
천시로 정체되었다.
조선에 영향을 미친 명과 청의 도자기 모양
15세기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백자를 바탕으로 색상을 입히거나 청자를 만든 화병과 접시 조선의 백자를
만드는 기본 틀이 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도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과 함께 도자기 생산국으로 이름을 떨치던 나라였다.
중국의 영향으로 기술을 받아들여 발전시켜서 다양한 모양,색채를 구현하고 있다.
18세기에 와서는 모양,색, 등이 훨씬 다양해졌다고 할 수 있다.
색상이 더 진해지고 조각이나 채색등이 많이 발전한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조선백자>

5억이 넘는 가격에 낙찰이 된 조선 백자들이다.극찬에 극찬을 하고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있다.
조선왕조 5백년 동안 그냥 둥그런 표면만 만들고 아무런 장식도 안했을까?
일본이나 베트남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좋게 발전시켰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조선의 경우 백자를 만들면서 많은 장식을 전부 없에고 아무런 장식없는 무장식 상태로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이었다.
미적인 감각이 있는 민족이라면 이런식으로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일본이 조선의 도공을 납치해 갔기 때문에 조선의 기술이 낙후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일본은 중국에서 도입한 기술의 영향이 훨씬 컸지 조선 기술자 이삼평이 한 일은 백자를 굽는 가마를 만드는 일이었다.
물론 이삼평이 만들고 난 후 많은 중국인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이주해 온 후로는 여러 곳에서 백자를 만들기 시작했고,
백자에 중국의 색상과 그림까지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래 일본 도자기를 보면 이삼평의 백자기술이 일본도자기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있겠다.
<17-18세기 일본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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