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 철화초어문 병 粉靑沙器 鐵畵草魚文 甁
16세기 높이 28.7cm : 2004년6월30일 서울옥션 제88회 미술품경매 8,500만원 낙찰
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자문을 위해 물고기 전문가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고교 교사이면서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전5권짜리 책을 낸 대단한 분입니다.
『현산어보』는 좀 생소하지만 『자산어보(玆山漁譜)』라는 제목은 제법 익숙할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흑산도에 유배간 정약전 선생이 쓴 책입니다.
그는 정약용 선생의 형님이십니다. 불행하게도 섬을 나오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유배지에서 인근 바다의
해양생물을 관찰하고 꼼꼼하게 기록한 것이 이 책입니다.
세화여고(당시)의 이태원 선생은 자(玆)로 알려진 글자는 응당 ‘현’으로 읽어야 한다며 제목을
『현산어보를 찾아서』라고 했습니다.
내용은 정약전 선생이 거론한 해양생물을 현지에 내려가 꼼꼼하게 재확인하고 현재에는 어떤 연구까지
이뤄졌는가는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딱딱한 생물학 책이 아니라 여행기처럼도 혹은 수필처럼도 읽히는 책으로 책이 나왔을 때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선생을 찾아간 것은 물고기 자문을 위해서였습니다.
조선시대 도자기에 상당수 있는 물고기 문양을 보시면 그 물고기 이름을 특정(特定)할 수 있겠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샘플로 가지고 간 사진에 매우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청화백자에 그려진 물고기는 모두가 비슷비슷해 생물학적 변별력은 없다고 했습니다.
분청에 보이는 물고기가 ‘혹시 쏘가리가 아니냐’는 물음에도 비슷하지만 정확히는 특징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훗날 좀 더 자료를 챙겨 보내 드리겠다고 했으나 기대보다 실망 - 특정할 수 있는 물고기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 컸던지 후속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앞서 청자에서도 소개한 듯이 청자 문양에도 물고기가 등장합니다.
청자의 물고기 문양 역시 생물학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도안화됐습니다.
그런데 분청사기가 되면 누가 보아도 ‘쏘가리 닮았네’하기 마련입니다.
민물고기인 쏘가리에 대한 설명을 보면 우선 머리가 길고 입이 큽니다. 이는 그림 속 문양과 거의 같습니다.
그리고 등지느러미가 두 개 있습니다.
앞쪽은 좀 작으면서 톱날처럼 뾰족뾰족한 돌기형상입니다. 뒤쪽은 요는 물고기처럼 곡선형에 크기가
앞쪽보다 훨씬 큽니다. 지느러미는 앞에 소개한 분청사기 병에 보이는 문양 그대로입니다.
이 병 역시 쏘가리 두 마리가 꼬리를 물고 있는 것처럼 연속해 그리면서 그 사이에 연꽃 하나를 그려 넣었습니다.
연꽃으로 보기 힘들 정도인데 그런대로 프리미티브한 멋이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 띠를 두른 선 안에 연판문을 넣었습니다. 어깨 쪽은 수그린 잎, 즉 복엽(伏葉)형입니다.
반면 아래쪽은 위로 치켜있는 앙엽(仰葉)형입니다.
물고기를 철화로 그린 것은 계룡산 가마의 특징입니다.
계룡산 일대에서는 15세기의 면상감 기법 유행이 지나가고 16세기 들어 철사를 사용한 문양 넣기가
대중화될 때 이렇게 수중(水中) 장면으로 지방색을 특화시켰습니다.
계룡산 가마에서 그려진 활달하고 거침없는 문양은 일본 컬렉터들이 대환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오늘날 한국인들도 쉽게 이끌리는 미적 정서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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