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한 잔의 커피에 모든 것 걸다

썬필이 2019. 11. 4. 05:08

한 잔의 커피에 모든 것 걸다 - 다이보커피점大坊 珈琲店 :차와문화 - 2019.11.02l

http://www.teacultur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10

▲ 다이보커피숍 외부 입간판

작년 9월 15일 도쿄 메구로구 유텐지(東京都 目黒区 祐天寺) 에 있는 7평 남짓 되는 식당,

마고MARGO에서‘다이보커피점大坊珈琲店’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이곳은 유기농음식과 와인을 팔았지만, 출판기념회가 있는 15일과 16일 양일간은 정상영업을 중단하고

다이보커피점의 커피를 판매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준비된 커피콩이 떨어지면 영업을 종료하는 행사로, 다이보커피점 주인인 다이보 카츠지

(大坊 勝次)씨가 자신의 출판기념회에 오는 고객들을 위해 손수 커피를 추출했다.

그날 준비된 커피는 다이보커피점 인기 메뉴인 브랜드 3번(20g 100cc /600엔)과

브랜드 4번(25g 50cc /700엔)이었다.

다이보 카츠지씨는 도쿄 미나미아오야마 오모테산도 교차로근처에서 38년간 다이보커피점을 운영했다.

그러나 임대해 있던 건물이 철거되면서 2013년 12월 23일 문을 닫았다.

▲ 다이보커피숍의 책.

그는 폐점되는 것이 아쉬워 38년 동안 자신의 삶이 점철된 그 공간에서의 이야기인 ‘다이보커피점 사용설명서

’에세이를 비롯해 다이보커피점과 인연이 깊었던 35명의 고객기고문, 전문사진작가가 찍은 다이보커피점 사진을

넣어 ‘나의 집’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 책자는 폐점 시 1000부 한정판으로 제작했지만 더 많은 고객들이 구입을 원했고,

그 요청에 의해 개정된 ‘다이보커피점大坊珈琲店’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간하게 되었다.

이날은 출판기념 행사로 다이보씨와 그의 커피를 잊지 못하는 옛 고객들이 만나는 날이었다.

이 행사가 있고 9일이 지난 작년 9월 24일, 다이보씨의 출판기념행사가 개최된 줄도 모르고 나는 일본 커피

역사자료 수집을 위해 오랜만에 도쿄를 들렸다.

나는 여느 때처럼 시간을 내어 오모테산도의 다이보커피점을 찾아갔다.

오모테산도 교차로는 자주 다녀서 낯익은 장소인데 그날따라 오모테산도 교차로에서 바라본 다이보커피점

방향의 풍경이 좀 달랐다.

건물 2층에 걸려 있어야 할 커피색 목재간판도 보이지 않았고, 그 주위 어디에서도 다이보커피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다이보 커피점이 있어야 할 자리는 나대지 상태로 텅 비어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 다이보씨.

나는 갑자기 혼란에 빠졌다.

나를 믿고 유명 커피점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동행한 일행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은 다이보 커피점이 왜 없어졌는지 알 수 없어서 그냥 미안하다고만 했다.

매년 커피관련 일로 일본을 자주 방문하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2013년 이후에는 도쿄를 방문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년 중 무휴였던 다이보커피점을 찾아 온 것인데, 폐점을 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1975년 7월 1일 도쿄 미나미 아오야마에서 개점

다이보커피점은 1975년 7월 1일 도쿄 미나미 아오야마 3-13-20번지에 위치한 건물 2층 작은 공간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개점을 알리는 안내문을 주변에 돌렸는데, 그 내용에 다이보커피점 소개와

다이보 카츠지씨가 개점에 임하는 각오를 써 놓았다.

성은 다이보, 이름은 카츠지입니다. 조금 친숙하지 않은 이상한 이름이지만 본명입니다.

다이보, 이렇게 불러주십시오.

10년 동안의 숙원을 이루고자 이번에 작고 조촐한 커피점을 열게 되었습니다.

다이보커피점은 지하철 오모테산도역 근처에 있습니다.

아오야마 길. 아오야마 3정목 건물 2층에 있습니다. 다이보커피점은 10평정도입니다.

고객 한 분 한 분 정성을 다해 손수 만든 커피로 . . . 제가 직접 접대할 수 있는 이상적인 면적입니다.

카운터는 12분이, 테이블에는 8분이 앉을 수 있습니다.(중략) 다이보커피점의 장점이라면 커피입니다.

커피생두를 선별에서 배전, 브랜드까지. 제가 수행했던 모든 것을 한 잔의 커피에 걸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에 맞지 않고 맛이 없다면, 가차 없는 지적을 주문합니다. 고객들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진심으로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다이보커피점은 년 중 무휴입니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이제부터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거듭 당부 올립니다.

다이보 카츠지 올림. 7월 1일 개점. 다이보씨는 개점당시 27세였다.

▲ 다이보씨가 1975년 개점당시 영업을 알렸던 안내문.

아주 아주 특별한 브랜드 커피 번호

아메리카노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다이보커피점에서 브랜드커피를 주문한다면 한참 망설일 것이다.

다이보커피점에 처음 갔던 날 보게 된 브랜드커피 메뉴에서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날 마셔보려고 했던 브랜드 커피메뉴는 5지선다형 시험문제 같아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할지 분석이

필요했는데, 좀 과장해서 미적분이나 고등수학을 동원해야 할 것 같았다.

고객의 취향대로 커피농도를 선택할 수 있게끔 커피무게, 추출량, 가격을 함께 적어 놓았다.

이것은 다이보씨만이 할 수 있는 친절한 배려(?)였지만, 처음 접한 고객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다이보씨가 사용하는 커피 추출도구들

나는 브랜드 1번(30g 100cc /700엔)을 마셔볼까.

아님 3번(20g100cc/600엔)을. 순간 머릿속에서는 각각의 번호에 적힌 숫자를 나누고 더하고 빼고를 반복했다.

그 결과 브랜드 1잔과 스트레이트까지 해서 총 두잔의 커피를 같이 주문하기로 했다.

브랜드 3번과 스트레이트 6번 모카. 순간 많이 망설였지만, 회상해보면, 커피 맛을 상상하면서 머뭇거렸던

갈등의 순간들은 행복의 시간이었다.

다이보커피점 메뉴판 중간쯤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당점의 커피는 가장 맛이 좋은 온도로 되어 있습니다만,

특별히 뜨거운 커피를 원하시는 분은 말씀해주시가 바랍니다.’라고.

손님 테이블에 제공되는 커피온도에 대해 분명한 기준이 다이보씨에게 있었다.

▲ 다이보씨가 사용하는 융드리퍼

그가 사용하는 융드립 방식은 추출과정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추출된 커피의 온도가 다른

추출방법보다 좀 낮다.

특히 다이보씨의 커피추출 과정을 보면, 커피 한 방울 한 방울에 정성을 다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러나 그는 최상의 커피 맛을 지키기 위해 온도 유지를 중시했다.

그래서 그는 가열이 가능한 금속제 용기를 서버로 사용했다.

추출이 길어지는 경우나, 뜨거운 커피를 원하는 고객에게 커피를 곧바로 가열해서 내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보씨는 오랜 세월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인간이기에 한번쯤은 대충할 수 있으련만, 일련의 과정을 생략하거나 지나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더구나 그는 서두르거나 조급한 표정을 짓지도 않는다.

▲ 다이보씨 융드립추출장면.

한번은 우리 일행이 다이보커피점 전 좌석을 다 차지하고 모두 다른 종류의 커피를 주문한 적이 있는데,

그는 전혀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그날도 다른 날과 똑같은 절차에 따라 커피를 만들고 순서대로 커피를 제공했다.

그는 개점 시 자신이 스스로 정한 매뉴얼을 변함없이 지켜나가고 있었다.

나는 시작부터 정한 메뉴를 38년간 한 번도 변경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커피점을 다이보커피점 말고는

본 적이 없다.

그를 보면서, 나는 수시로 바꾸고 변경하는 우리 커피전문점의 비전문적인 영업방식을 생각해 보곤 했다.

다이보커피점에는 좀 별스러운 메뉴가 몇 개 더 있다.

포도주스와 홍차, 맥주, 체리, 진, 위스키다.

수차례 다이보커피점을 갔었지만 딱 한번 포도주스를 마시는 손님을 보았다.

그래서 그 다음번에 갔을 때 커피를 마시고 추가로 산포도주스를 주문해서 마셔보았다.

맛은 보통 집에서 만든 포도주스와 같았고 별 특이점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밀크커피와 아이스커피 그리고 스트레이트 메뉴에 있는 모카, 콜롬비아, 브라질, 탄자니아등도 모두 한 번씩

마셔보았지만, 브랜드커피에 비해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다.

다이보씨는 커피를 수동식 소형로스터를 사용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하게 볶기 때문에 다이보씨의 커피에는

남다른 개성과 특유의 풍미가 있다.

다람쥐통 같은 수동식 소형로스터

▲ 다이보씨가 사용하는 수동식 소형로스터.

다이보커피점의 특이점이라면, 보통은 점포가 작고 아담하다는 것과 브랜드 커피메뉴를 말한다.

그러나 커피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이보씨를 말할 때면, 그가 평생 수족같이 사용하는 수동식 소형로스터를

빼놓지 않는다.

그는 다람쥐 통처럼 작은 로스터를 바텐의 카운터 밑 가스 불 위에 올려놓고 커피를 매일 볶는다.

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커피연기는 대부분 환기팬으로 빠져나가지만,

원두 배출시점이 가까워지면 급격하게 많은 연기가 생성되기 때문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가

실내로 유입된다.

그래서인지, 다이보커피점의 실내마감과 가구는 진한 커피색 목재로 되어있다.

▲ 일명 다람쥐통으로 불리는 로스터 통.

한번은 아침 10시 개점시간에 맞추어 간 적이 있는데, 그 시간에 다이보씨가 로스팅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그의 로스팅이 보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그가 수동로스터를 손으로 돌리면서 어떤 장비도 사용하지 않고 소리와 배출연기, 손끝으로 전해지는 무언의

감각에 의지해서 커피를 볶고 있었다.

로스팅을 마치고 뜨겁게 배출된 원두를 바텐 아래에서 소쿠리에 담아 선풍기와 부채로 식혔다.

나는 로스팅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손동작 하나하나의 의미를 생각했다.

다이보씨가 로스팅을 마치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했지만, 실내는 진한 커피향으로 가득했다.

▲ 로스팅후 커피를 담아 식히는 부채와 소쿠리.

그날 나는 다이보커피점은 실내공기까지도 커피색으로 물들어 있을지 모른다고 상상을 했다.

그는 수동식 소형로스터를 정말 잘 다루었고 경지에 올라 있었다.

로스터가 지닌 한계를 잘 알고 로스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의 것 이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는 고가의 자동화된 로스터를 가지고도 맛있는 커피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맛있는 커피는 장비로 되는 것이 아니야.’라고. 커피쟁이의 도道란 무엇일까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1998년 그의 작품 '꿈의 서프시티(夢のサーフシティ)'에서 자신이 단골로

다니는 다이보커피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당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만약 도쿄에 거주하고 있다면 아오야마 거리

오모테산도(青山通りの表参道) 교차점 근처에 있는 다이보(大坊) 커피집을 가보세요.

커피 맛이 매우 좋습니다.

나는 항상 "3번"농도를 마십니다. 그리고 여기는 커피콩도 나누어줍니다. "

다이보커피점은 하루키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예술계의 유명 인사들에게도 사랑을 듬뿍 받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곳. 다이보커피점은 이렇게 전설이 되어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작년 9월 다이보커피점을 찾아 갔던 그날,

오모테산도의 공터에서 느낀 당혹스러움은 잠시였지만 더 이상 다이보커피점을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여행기간 내내 우울했었다.

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다이보커피점의 소식과 행방을 계속 추적했다.

한번은 도쿄에서 개최된 세계 바리스타 대회와 커피전시회를 참관하고 다음날 다이보커피점을 간 적이 있다.

다이보씨는 우리 일행을 매우 반갑게 맞아주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한국의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 ‘다이보’씨가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하자,

그는 “작은 커피집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이름이 나있지요?”라고 말했다.

바 한쪽에 손님이 한분 계셨다. 단아한 정장차림의 할머니로 오신 지 좀 된 것 같았다.

그 할머니는 다이보씨가 만들어 준 커피를 벌써 반 이상 마신 후였고, 남은 커피를 아끼듯이 조금씩 마시면서

커피의 맛과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방인인 우리들의 행동이 궁금했는지 힐끗 힐끗 보면서 알 수없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우리와 다이보씨와의 대화가 잠시 중단되자 궁금했는지 다이보씨에게 우리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들의 대화를 재미있다는 듯이 듣고 있었다.

이웃 나라의 낯선 사람들까지도 다이보커피점을 찾아오는 것에 흐뭇함을 느낀 것 같았다.

나는 자연스레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 눈빛으로 그리고 목을 약간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녀는 웃음을 머금은 눈빛으로 답장을 보내왔다.

‘다이보씨 대단하지요? 나는 다이보 커피점이 있어서 행복해요.’라고.

단순 음료의 제공자로서의 역할이 아닌,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마음의 휴식처가 된 다이보커피점.

그는 우리들에게 인생을 걸고 가도될만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커피를 통해 돈을 벌어 보겠다는 환상이나, 노후대책으로 커피점을 무분별하게 창업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던 다이보 카츠지씨.

다이보커피점이 사라진 오모테산도의 텅빈 공간에 서있었던 그날 이후, 나는 고민하고 있다.

‘커피쟁이로서 지녀야 할 도道는 무엇일까?’라고.

글. 사진 이병규 / 건축사 (T. 010-3534-5334) 대구 남산동에서 이병규의 커피클럽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