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9) 한국의 자생차와 다맥(茶脈)
침묵의 계절인 겨울을 뚫고 진체(眞體)를 찾으려는 운수납자들의 안거가 끝나가고 있다.
불교계의 큰 어른들께서 형형한 눈빛으로 불법의 대의를 찾으려는 납자들에게 깨달음의 당처(當處)는 안거와
해제밖에 있음을 말씀으로 전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어른인 법전 종정은 “설법은 했으나 할말은 없다.”며 풍혈연소선사의 선문답을 일깨웠다.
“말을 하면 용(用)이 되고 말을 하지 않으면 체(體)가 됩니다.
어떻게 해야 체와 용으로부터 모두 벗어날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풍혈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항상 강남의 3월풍경을 생각하니 새가 우는 곳에 온갖 꽃이 향기로우리라.”
법전 종정은 선문답 뒤에 이렇게 덧붙였다.“침묵한다면 평등의 세계만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며, 언어문자로
표현한다면 차별의 세계만을 나타내게 됩니다. 말해도 걸리고 침묵해도 걸립니다.
침묵만 알면 밖의 티끌이 의지할 곳이 없고 언설만 알면 안의 마음이 할 일이 없습니다.
안의 마음이 하는 바가 없으면 모든 경계를 요동시키지 못하고 밖의 티끌이 의지할 바가 없으면 만법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마거사는 ‘침묵너머 침묵’을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강남이니 강북이니 꾀꼬리니 종달새니 복숭아꽃이니 하는 차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저 만행중에 만난 봄 길을 무심히 다닐 뿐입니다.”라고 무명에 빠진 중생에게 ‘침묵너머의 침묵’이 있는 길을
말씀하고 있다. 차별심은 체와 용을 굳게 하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게 하는 근원이다.
그런 점에서 선과 차의 세계는 하나이면서 둘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고지식한 이분법은 많은 사람들을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지게 한다.
그 갈등은 도저히 해법이 없는 갈등으로, 양측은 영원히 건널 수 없는 다리를 만들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차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자생차에 관한 것, 다맥(茶脈)에 관한 것, 그리고 구증구포에 관한 것들에 대해 많은 차인들이 마치
자신이 가진 ‘비법’이나 ‘제다’가 올바른 전통의 계승인양 말하고 있다.
최근 많은 차인들이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자신들은 이른바 ‘우리차’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다.
그같은 논점에 많은 차인들이 너도 나도 앞장서고 있다. 마치 모두 진정 우리차를 사랑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세상은 그 어느 것도 고정불변한 것이 없다. 문화도 역사도 꾸준히 현실의 삶과 연동하며 변하고 발전하고 있다.
그중 문화는 그 성장과 쇠퇴의 폭을 더욱 활발하고 넓게 갖고 있다.
현재 우리 문화주기는 1년에서 6개월 정도로 짧다.
경이로울 정도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문화는 100년,30년,10년을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문화의 성장과 쇠퇴는 디지털코드에 맞게 1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같은 변화에 있어서 차도 예외는 아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차를 먹는 인구는 매우 적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호사가들의 취미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목욕탕에 속옷까지 다양하게 응용되어 일반대중에게 파고 들고 있다.
차 상품은 이제 웰빙코드에 맞는 문화로 급속하게 자리잡아버린 것이다.
차도, 차의 문화도 이렇게 우리 현실삶과 연동해 변화발전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같은 문화의 변화를 전제로 삼고 최근 일부 차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가지 논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이른바 자생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현재 우리나라에 산재하는 대부분의 차나무가 일본 품종이고 우리 자생차는 서너군데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부가 마치 ‘한국전통차의 참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생차는 이른바 ‘야생차’다.
그들이 말하는 자생차나무는 ‘관목’이다. 관목은 그 수명이 길어야 100년에서 150년 사이다.
무성번식한 차나무는 1000∼2000년을 훌쩍 뛰어넘는 교목종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유성번식한 관목종은 교목종처럼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도 다원(茶園) 자체만으로 1000년이 넘은 곳은 존재한다. 그러나 차나무는 그렇게 존재하지 못한다.
다원과 함께 1000년이 된 것이 아니고 씨앗이 떨어져서 다시 나고 또 다시 성장해 이른바 육종으로 개차나무가
스스로 된 것들이다. 또하나는 자생차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생차와 우리 전통차는 정서상으로는 매우 아름다운 말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좋은 감나무와 사과나무라도 산속에 방치해 두면 이른바 우리가 먹을 수 없는 ‘돌감’과
‘돌사과’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과일나무를 가꾸는 농민들은 끊임없이 새로 과일나무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는 것이다.
차나무 역시 마찬가지다.
감나무 배나무 사과나무를 가꾸듯이 현대에 맞게 새롭게 육종 보급되고 일반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예는 이같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일본이 육종개발한 우수한 차나무는 약 18종, 중국은 58종이나 된다.
지금도 중국과 일본의 차인들은 끝없이 새롭고 우수한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몇몇 차인들이 왜색차라고 주장하는 ‘야부기다’종은 일본에서 이미 폐목종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전통차나무에 대한 논쟁은 불식되어야 한다.
다음은 ‘다맥’에 관한 부분이다.
얼마전 송광사에서 열린 근현대의 걸출한 다승, 다송자스님에 관한 세미나에서 많은 학자들이 명쾌한
답을 선보였다. 여러 차인들이 주장하는 ‘다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맥’의 존재는 선사들뿐만 아니라 차인들의 공과 덕을 찬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 역시 다맥이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다맥의 사자전승은 많은 부분에서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맥이 존재한다면 이른바 법맥처럼 내려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수행자에게 차는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수행자의 수행속에서 다맥이란 따로 존재할 수 없다.
단지 그 법맥 속에서 다맥은 존재한다고 보여진다.
수행의 과정에서 방편으로 존재하는 차라면 법맥과 다맥이 하나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법맥의 정신사 속에서 다맥은 장강의 흐름처럼 유유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또하나는 우리 전통차의 색·향·미에 관한 것이다.
전통차를 주장하는 몇몇 차인들은 한국의 전통차는 구수한 숭늉냄새가 나며, 다갈색이라고 말하고 있다.
먼저 전통차에 대한 그 어떤 문헌을 찾아봐도 구수한 숭늉냄새와 다갈색은 보이지 않는다.
16대나 이어온 다승들의 시나 글에도 신라, 고려, 조선 등에서 보여지는 수천 편의 차시에도 그같은 전통차의
모습은 결코 나와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고증을 거쳐 그것이 한국 전통차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하는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우리에게 소개된 대부분의 차 문헌들은 우리의 색·향·기·미에 대해 이렇게 공통적으로 적고있다.
가장 좋은 차색은 비취 청취를 띠고 있으며, 최고의 차맛은 소락재호, 이른바 우유나 치즈의 맛을, 향은 진향
난향 순향 청향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여 차에는 아름답고 힘찬 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 우리 전통차 문헌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들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차 역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과학적 근거와 현실성을 바탕으로 많은 논점들이
제기되어야 한다.
차는 또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친 정성스러운 마음과 관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같은 전통의 맥은 현실적합성과 그 역사적 사실성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우리 것을 찾자는 것에는 100% 동의한다.
그러나 그같은 사실을 대중에게 주장할 때는 책임 소재가 따름을 알아야 한다.
임시방편적인 지식과 연구를 갖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주장하는 무책임한 태도는 차인으로서 해야 할
본분사가 아니다.
이제 차인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
제다는 제다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공부, 다례는 다례로서 나름대로의 공부과 공유를 통해 검증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발생하는 오류는 많은 차인들을 호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어떤 분야에서든 진지한 성찰과 끊임없는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침묵너머의 침묵’이 일깨우는
가르침은 매우 크다.
그 가르침과 분별심을 버리고 온 마음과 정신을 열어 사물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며 차문화를 가꾸고 있는 차인들이 새겨야 할 경구다. - 일지암 암주
■ 구증구포 방식의 차
최근들어 차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제다에서 다례 그리고 품평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각양각색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 가장 우려되는 것이 있다.
바로 구증구포(九蒸九曝)에 대한 것이다. 한국의 전통차는 구증구포의 방식을 통해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로니컬하고 어이가 없는 주장이고 대목이다.
먼저 구증구포로 만들 수 있는 차는 없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구증구포란 말 그대로 옮기자면 차를 여러 번 찌고 삶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찌고 삶지 않고 솥에서 익히는 덖음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덖음차를 만들어놓고 구증구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같은 주장은 터무니 없다.
차 성질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인 것이다.
찻잎에는 감이나 도토리속에 많이 들어 있는 타닌(폴루펠린)과 여러 효소가 들어 있다.
타닌은 기본적으로 텁텁하고 떫다. 그것을 이른바 달디단 차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알기 쉬운 예를 들어본다면 떫은 감을 곶감으로 만드는 방식과 같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껍질을 벗겨야 한다.
그리고 그 벗긴 곶감을 햇볕에 말리면 타닌 성분이 당분으로 변해 맛있는 곶감이 되는 것이다.
차도 마찬가지다. 차에 수분이 남아 있으면 산화된다. 이른바 메주처럼 떠버리는 것이다.
찻잎이 떠버리면 그 발효 정도에 따라 오룡차가 되고 황차가 되고 홍차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에 익혀 수분을 확실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한번을 덖던 두 번을 덖던 차속에 들어 있는 수분을 증발시켜내면 되는 것이다.
찻잎에 존재하는 수분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살청이다.
살청을 통해 수분을 머금고 있는 피막, 이른바 코팅막을 터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덖음을 통해 수분을 완벽하게 증발시켜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구증구포는 어디에 쓰는가. 바로 한약방 같은데서 보약을 달일 때 쓴다. 한약재의 뿌리는 매우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약재의 성분을 제대로 우려내기 위해서는 구증구포의 방식으로 추출을 해야 한다.
차에서 구증구포란 말은 상징적일 수도 있을 거란 추정도 해본다.
동양의 고전인 주역에 있어서 ‘9’는 극양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극양이라는 것은 고귀한 가치의 극점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차에서 구증구포는 정성들여 만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강할 것이라고 본다.
만약에 덖음차가 아닌 구증구포의 방식으로 차를 만든다면 찻잎은 덩어리지고 여러 파편으로 나뉘어 형편없는
차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증구포는 증제차에서는 있을 수도 있지만 덖음차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몇몇 차인들은 덖음차를 만들어 놓고 구증구포차를 만들었다고 하고, 구증구포로 만든
것이야말로 우리 전통제다라고 말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구증구포로 만든 차라는 상품까지 내세워 판매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같이 만든 차가 마치 최고의 명차인양 말하고 있다.
그것은 차의 가장 기본적이고 과학적인 방식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같은 방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구증구포는 상징적이다.
신령스럽고 예민한 차를 다룰 때 매우 정성스럽게 다뤄 제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의 제다에 있어 정성은 매우 중요하다. 차의 색·향·미·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많은 차인들이 구증구포의 환상에서 벗어나 과학적인 원리를 가진 건강한 차인으로서 차를
제다하는데 힘써야 한다.그리고 일반 차인들도 그같은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건강한 차는 바로 그곳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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