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0) 다예사
봄빛이 완연하다. 겨우내 자연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일깨웠다. 자연은 모든 사람들의 환상같은 것이다.
그러나 자연속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괴로움과 공포를 느끼곤 한다.
이번 겨우내 일지암 초당은 황금빛 베이지색 지붕없이 지내야 했다.
한번 내리면 20∼30㎝씩 쏟아지는 눈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외국자격증 남발 ‘茶 사대주의’ 경계를
초당 지붕을 얹는 인근 마을의 일꾼들은 그냥 손을 묵히고 있어야 했다.
입춘이 지나 땅속 깊이 잠복해 있던 얼음이 풀리던 날에야 겨우 초당지붕 얹는 작업이 시작됐다.
어느새 얼음에서 풀려난 붉은 땅들이 고슬고슬하다.
일지암 초당 운력이 끝나자 순천의 눈이 크고 순박한 차농사꾼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땅이 풀렸으니 자신의 다원을 한번 방문해달라는 것이었다.
다원의 이름은 ‘土父茶園’. 땅을 자신의 아버지처럼 경건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대하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그는 타고난 차 농사꾼이다.
상사호가 바라보이는 20도 넘는 경사지에 한폭의 수채화 같은 다원을 8년만에 일궈냈다.
차밭을 비껴 물이 흐르는 계곡을 손질하고, 소나무와 진달래를 가꾸는 데서 나아가 온 동네사람이 참여하는
작은 생산공동체를 일궈냈다.
밤낮없이 땅을 일구고 차를 돌보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진짜 차농사꾼이라고 한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유기농 차농사를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다.
우직하게 한길로만 차를 만들고 대중들에게 자신있게 권한다. 그런 그의 눈에서는 맑은 차의 진향이 있다.
차는 진실하고 맑은 마음자리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산비탈을 홀로 8년을 거닐며 일궈낸 차밭은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한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그같은 작업들이 바로 우리의 차를 지키는 지킴이다.
오늘 우리의 차문화는 급속히 분화하고 있다.
차 품평회며 다예사, 한·중·일 등 각국 다도의 맥을 공부하는 다양한 장들이 늘어가고 있다.
급속히 확산되는 차문화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은 바로 우리 것을 지키고 가꾸는 일의 부족이다.
일본의 다풍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뒤 그것을 마치 우리의 다도인 양 공부시키는 차인들이 있는가 하면,
중국(타이완)의 다예사 자격증을 무분별 남발하는 차인들이 부지기수로 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우리가 짚어야 할 점은 바로 중국과 일본 다풍에 대한 무분별한 ‘우리화’이다.
우라센케, 오모도센케의 일본다풍을 마치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다풍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이다.
일본의 다풍이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70년 초부터다.
당시 거의 멸절된 한국의 다도는 효당 최범술, 의재 허백련, 응송 박양희, 금당 최규용 등 몇몇 다인들에
의해서만 교류될 뿐 일반 차인들에게까지 전수되기에는 역량의 한계가 분명했다.
그런 틈을 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일본의 대표적인 다풍들이 우리 차인들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런데 그 차풍들에 대한 문화적 역사적 검증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우리 전통다도인 것처럼 여겨지는 풍조가 일각에서 인지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런 일본의 다풍을 일본다도의 대표적인 종가에서 공부한 일본인 차 선생들이 직접 국내에 들어와
가르치고 있다.70년대 초반 미국의 문화를 최고로 치고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던 때와 너무도 흡사하다.
일본이 차문화의 최강국으로 인정받는다고 해서 일본의 차문화를 수입할 만큼 우리의 전통차문화가
빈약하지 않다.
우리 전통차문화의 원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깊고 넓은 역사의 푸른 광맥을 갖고 있다,
다음은 중국 다예사 열풍이다.
‘묻지마’보이차에 이어 우리 차인들에게 마치 음습한 안개처럼 스며들고 있는 것이 바로
‘묻지마’다예사 열풍이다.
현재 중국에는 수없이 많은 다예사들이 있지만 아직 다예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물론 중국은 차의 역사로 볼 때 그 원류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차문화가 부활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문화혁명으로 인한 차 생산기반과 차문화 파괴의 영향권에서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했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차생산은 걸음마 단계에 있다.
그런 점에서 수십년 나이를 먹었다는 보이차는 제대로 된 제품이 아닌 불량품이다.
건강을 위해 마시는 보이차가 바로 건강을 해치는 약이 되어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예사도 마찬가지다.
많은 한국의 차인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무분별하게 다예사 자격증을 취득해온다.
마치 그 다예사가 훌륭한 차인의 증표인 것처럼 여기면서 그들은 자랑스럽게 우리 차인임을 내세운다.
많은 차인들이 ‘차의 사대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에서 배워온 차심평도 예외일 수 없다. 우선 다예사처럼 품평사 자격증을 취득해온다.
각자 배운 대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차를 심평하지만 심평기준이 없으니 오류가 생김은 당연하다.
이같은 오류를 시정하기 위한 차인들의 노력도 배가되고 있다.
대한민국 차 품평대회, 대한민국 명차 품평대회 등은 이같은 노력의 결과들이다.
차를 연구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보성 도립차 시험 연구소, 원광대·부산동의대·부산여대·순천대한국녹차연구소 등에서는 향, 탕색, 맛 등의
재질과 우린잎,외관 등 외질을 통해 차의 품평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차의 품평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를 쌓는 중요한 작업이다.
일정한 품질을 보증하는 차의 품질은 생산자나 소비자 사이에 신뢰를 쌓음으로써 그 품질을 한층 더
발전시킬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차 품질 향상을 위한 품평기준 마련이 긍정적인 것은 차문화계 인사, 차 생산자, 차 연구자, 차 소비자 등이
함께 참여하는 공통의 장이 꾸준히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제주에서 마련된 세미나는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차와 관련된 한국 차인들이 다 모여 녹차 평가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는 향후 우리 차 현실에 맞는 심평기준안을 만들어 나가자고 했다.
그같은 일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한국차 품평기준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나아갈 것이 자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매우 많다.
불과 몇해 전 일이다. 차인구가 늘어가고 차 소비량이 증가함에 따라 차의 브랜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자
명차선정을 위한품평대회가 곳곳에서 열렸다. 이른바 한국명차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생산자들 사이에서 무리한 명차 만들기 경쟁이 벌어졌다.
생산량의 유무와 상관없이 명차 브랜드로 선정됨은 유리한 마케팅을 선점하는 것으로 여겨져 명차 출품용
차를 만들기위해 올인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차 품평대회는 대회 당일 차 생산자가 출품한 100g단위 차 몇통을 심평하는 수준이었다.
차 생산자들은 명차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팽개치고 오로지 명차 몇통을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그래서 탄생한 명차는 이름만 명차였다. 심평이 끝난 후 시중에 나오는 차는 그같은 등급을 맞출수 있는 차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같은 명품차 생산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차인들이 새로운 기준을 가진 품평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최근의 품평대회는 차 생산자도 모르게 열리는 경우가 많다.
차 생산지에서 생산되는 차와 일반시중에서 유통되는 차를 한꺼번에 구입, 차 생산자도 모르게
품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문제점은 남는다.
우선 생엽의 생산시기나 채다·제다법이 서로 다른 차를 함께 비교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심평기준. 차가 지역적
특산물이라고 한다면 각 지역마다 차의 분류법이 보다 세분화돼야 한다.
한발짝 더 나아가서 첫물차, 두물차, 끝물차, 여름차, 가을차 등 계절차에 대한 심평이 각 시기에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품평에 쓰이는 용어의 정립도 시급하다.
심평용어의 정립에 있어서 차의 외형과 내질을 우리의 기준에 맞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차인구 500만시대를 맞아 우리차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대목들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갖는 것은 우리 차문화를 한차원 발전시킬 수 있는 시금석이다.
우리 차문화를 찾기 위해서는 두가지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먼저 규방다례 선비다례 생활다례 등 전통의 수많은 행다예법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고전이라는 고고한 장강의 흐름속에 내재한 전통다법을 있는 그대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다도를 연구할 다도학에 대한 투자와 결실이 필요하다.
또하나는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 우리차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열찬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현실에 맞는 심평과 품평, 그리고 다예사 등을 배출하기 위한 기준을 생산자와 소비자 연구자
차문화인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한국차문화 바탕을 만들기 위해 한발짝씩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 - 일지암 암주
■ 묵은차 맛있게 만들기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차인들은 햇차의 진향이 그리워진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차나무들을 보면 엄마가 아이를 기르듯 대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마음이 부산해진다.
그러나 한해를 건너온 묵은 차들은 그맛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차의 맛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보관이 매우 중요하다.
병차, 이른바 발효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맛과 향이 진해지기 때문에 건조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녹차는 다르다.
묵은 차일수록 그 맛과 향이 떨어지기 때문에 매년 알맞은 양을 한꺼번에 준비해 잘 보관해야 한다.
일부 차인들은 차를 보관하기 위해 따로 저온냉장고를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웬만한 차인이 아니라면 차 전용냉장고를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묵은차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차를 마시기 전에 살짝 볶는 것이다.
번거롭고 예민한 일이기는 하지만 다른 냄새가 배지 않을 깨끗한 프라이팬을 준비한 후 뜨겁게 데워 살짝 볶아
먹으면 햇차의 향을 즐길 수 있다.
또다른 방법도 있다. 워머(warmer:찻물이나 차를 따뜻하게 해주는 차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요즘 차인들 사이에서 애용되는 워머는 두가지로 사용된다.
하나는 우려낸 찻물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차담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경우이다.
그것은 매우 통상적인 워머의 기능이다.
밤에 차담을 나눌 때 워머위에 놓인 투명한 찻그릇과 찻빛깔은 보는 사람, 마시는 사람 모두에게 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해준다.
또 다른 워머가 있다. 돌이나 쇠 워머이다.
워머위에 묵은 차를 올려놓고 열을 가한 후 그 차를 우려내 마시는 것이다.
그때 워머는 차를 다시 한번 볶는, 이른바 가향처리의 기능을 한다.
가향처리된 차는 햇차의 맛과 향을 온전하게 회복하지는 못하지만 묵은차의 체증을 덜어버려 햇차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3∼4년이나 묵은 차도 같은 방법으로 가향처리를 하면 잃어버린 차맛을 일정정도 회복할 수 있다.
묵은 차를 볶아서 새롭게 마시는 것 역시 차를 마시는 비방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차를 마시는 비방이 아니라 찻속에 깃든 화·경·청·적의 진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우선이다.
차의 종류를 구분하고 질이 좋은 물을 사용하고 차의 분량을 가늠한 다음 물을 끓여 차를 마시는 행위는
차의 진정한 모습에 다가가는 체(體)와 용(用)의 진미를 알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요즘들어 차를 잘 음용하기 위해 현대적인 차구들이 많이 도입되고 있다.
‘크로스 오버’란 것이 차문화에도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차 문화가 도입되고 실험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차문화가 중장년층의 전유물을 넘어 어린 학생, 젊은 청년들까지 함께하는 문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화적 접근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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