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중국 차 대안 찾다 아삼 야생 차나무 발견하다 - 인도 아삼차를 세계에 알린 찰스 부르스

썬필이 2021. 6. 8. 08:36

신정현의 `인물로 보는 차 이야기` 14 - 인도 아삼차를 세계에 알린 찰스 부르스

1823년 스코틀랜드 출신 로버트 부르스는 아삼 지역으로 들어가 싱포족 족장을 만났다.

(아직 아삼이 영국령이 되기 전이었다.) 족장은 그에게 따뜻한 음료를 대접했다.
그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차 향기잖아?” 그의 후각은 정확했다. 차나무 잎으로 만든 음료, 정말로 차였다.

싱포족은 밀림에서 자생하는 차나무 잎을 따다 말려 바구니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끓여 마셨다.

차나무인 것은 맞지만 로버트 부르스가 이전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품종이 달랐다.

그가 알던 차나무는 중국 무이산에서 자라는 소엽종 차나무였다.

무이산 차나무 잎으로 홍차를 만들면 향기롭고 맛이 부드러웠다.
싱포족 차는 향도 별로 좋지 않고 쓰고 떫었다. 대엽종 차나무였기 때문이다.

본래 대엽종 차나무는 쓰고 떫은 데다 차 만드는 방법도 완전히 달랐지만,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부르스는 단번에 이것이 차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르질링은 해발 2000m에 자리한다. 로버트 포천이 중국에서 가져온 중국 차나무는 다르질링에 심어졌다.
다르질링 차나무 원료로 만든 홍차는 홍차의 샴페인이라 불린다.

그는 빠르게 계산기를 돌렸다. 그때까지 영국 사람들은 200년 가까이 중국산 차를 마셔왔다.

세계에서 차를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자 차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끊임없이 차를 마셨다. 너무 차를 많이 마셔서 무역 적자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정말 이것이 차나무라면? 중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차를 만들 수 있게 된다면?

나는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로버트 부르스는 족장에게 차나무와 씨앗을 달라고 했다. 족장은 다음에 올 때 둘 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로버트가 1824년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를 대신해 족장을 찾아간 이는 동생 찰스 부르스였다.

족장은 형이 원했던 차나무와 씨앗을 동생에게 전달했다.
찰스 부르스는 씨앗을 자기가 머물던 방글라데시 북부 랑푸르의 정원에 심었다.

그리고 이 위대한 발견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동인도회사에도 이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뜻밖에 사람들은 그가 발견한 것을 차나무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형제가 아삼에서 차나무를 발견하기 전에도 가끔 여기저기서 차나무를 발견했다며 인도

캘커타 식물원이나 동인도회사에 보내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식물원장이나 동인도회사는 ‘이것은 차나무가 아니라

동백나무과의 식물’이라며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당시 영국 동인도회사가 중국과의 차 무역을 독점하고 있었다.

동인도회사는 차 무역 독점으로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었기에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차나무가

발견되고 누군가 그 차나무로 차를 만들어 자신들의 시장을 뺏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줄곧 부르스 형제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발견한 것이 차나무로 인정받지 못하게

여기저기 압력을 넣었다.

동인도회사는 물론이려니와 식물원장의 탐탁지 않아 하는 태도도 여기서 비롯된 결과다.
그러나 1834년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영국 의회에서 중국 무역에 대한 동인도회사의 독점권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

이제 다른 사람들도 중국에서 차를 가져다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동인도회사는 달라진 현실에 재빨리 적응했다.

동인도회사는 인도에도 차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하고 인도산 차를 만드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아삼의 다원에 자라는 대엽종 차나무는 폴리페놀 함량이 높아 진한 맛의 홍차를 만들 수 있다.

한편 찰스 부르스는 아삼 차나무를 계속 연구하고 있었다.

밀림으로 들어가 야생 차나무를 찾아 관찰하고 계통도를 그렸다.

정글에서 발견한 어린 차나무를 집으로 가져와 심고 가꾸기도 했다.
동인도회사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야생 차나무보다 중국 사람들이 오랜 세월 재배해온 차나무가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삼에서 차를 만들더라도 야생 아삼 차나무를 재배하는 대신 중국에서 차나무와 씨앗과 묘목을

가져오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차나무와 씨앗을 외부로 반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데다,

중국 관원에게 들키지 않고 차나무와 씨앗을 구한다 해도 인도까지 배를 타고 오는 동안 나무가 거의 죽었다.

겨우 살아남은 몇 그루를 식물원에 심어도 결국은 죽고 말았다.
동인도회사가 몇 년째 아무 성과도 못 내고 있는 중에도 찰스 부르스는 아삼 차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마침내 1839년, 자신이 재배한 아삼 차나무 잎으로 만든 홍차 8상자를 런던 경매에 내놨다.

이 차는 고급 차는 아니었지만 놀랄 만큼 비싼 가격이 매겨졌는데, ‘중국 아닌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차’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
‘비록 당장은 중국 차보다 맛과 향이 떨어지지만 재배와 가공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 중국산 고급 차와

비슷한 수준의 차도 만들 수 있겠다’고 믿은 사람들이 아삼컴퍼니를 세웠다.

그리고 찰스 부르스를 아삼 다원에서 차나무를 재배하는 최고책임자로 초빙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차갑게 식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맹

수의 공격을 받으며 정글을 개척해놓으면 덤불이 무서운 속도로 침입해왔다.

덤불과 전쟁하며 다시 차나무를 심어놔도 토양이 맞지 않아서인지, 재배 기술이 잘못돼서인지,

차나무는 제대로 살지 못했다.

찰스 부르스는 야생 차나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차나무 재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일하는 노동자들과 아삼컴퍼니 직원들, 아삼컴퍼니에서 파견한 의사들까지 줄줄이 풍토병으로 쓰러져

길거리에 시체를 베고 누운 시체가 즐비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아삼컴퍼니 주식은 반 토막 나고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찰스 부르스는 모든 책임을 지고 해고됐다.
아삼컴퍼니의 실패를 지켜본 동인도공사는 다시 중국 차나무를 가져오기로 했다.

그리고 첼시 식물원장이었던 로버트 포천을 중국으로 보냈다.

로버트 포천은 아편전쟁이 끝난 다음 해에 중국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중국행은 그의 두 번째 중국행이었다.

신분 높은 중국인처럼 꾸미고 시종으로 꾸민 가이드를 데리고 무이산 깊이 들어갔다.

거기서 수많은 차나무 묘목과 씨앗과 차 가공자까지 섭외해 인도로 보냈다.

몇 번의 실패 후 차나무와 씨앗이 무사히 인도에 도착했다.

로버트 포천이 구해온 차나무는 히말라야 기슭 다르질링에서 재배됐고 다르질링 차의 기원이 됐다.

다르질링은 해발 2000m 고지대로 지금 이곳에서 생산되는 차는 ‘홍차의 샴페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르질링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계속 아삼종이 재배됐고 지금도 그렇다.
찰스 부르스 후임으로 아삼컴퍼니 책임자가 된 조지 윌리엄스는 찰스 부르스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맞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중국종이 아삼종보다 생산량이 훨씬 떨어진다는 것은 이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종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조지 윌리엄스의 노력으로 아삼에서 토착 차나무가 성공적으로 재배됐다.

그리고 현재 인도의 다르질링과 중국, 대만, 일본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차 생산국에서

아삼 차나무가 재배된다. 찰스 부르스가 옳았다. - [신정현 죽로재 대표] 

https://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21&no=537697 

 

중국 차 대안 찾다 아삼 야생 차나무 발견하다

신정현의 `인물로 보는 차 이야기` 14 인도 아삼차를 세계에 알린 찰스 부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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