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현의 ‘인물로 보는 차 이야기’](13)
홍차의 전설 `금준미`를 만든 장위안쉰 `정산소종`에서 송연 향 빼니 꽃·과일 향기가...
보석처럼 붉고 환하게 빛나는 차탕, 꽃향기 과일 향기가 어우러진 좋은 향,
새콤하고 쌉싸래한 맛….
복잡하면서도 조화로운 홍차를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
지금은 인도와 스리랑카를 비롯한 아시아는 물론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홍차가 생산된다.
(아프리카는 커피나무가 잘 자라는 곳이지만 커피나무가 잘 자라는 곳에서는
차나무도 잘 자란다.)
그러나 모든 차가 그렇듯, 홍차를 처음 만든 나라도 중국이었다.
중국에서 언제 처음 홍차를 만들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전설은 남아 있다.
명나라 말 나라가 어지러울 때 푸젠성의 한 농부가 찻잎을 따서 녹차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군대가 들이닥쳤다.
군대는 농부의 가공장에서 하룻밤 자고 가겠다고 했다.
녹차를 만들려면 당장 찻잎을 덖어야 했지만 서슬 퍼런 군대의 기세에 눌린 농부는
아무 소리 못하고 자리를 비켜줬다.
찻잎을 다 망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샌 농부가 날이 밝자마자 가공장으로
달려갔다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군인들이 찻잎을 바닥에 깔고 자고 있는 게 아닌가.
본전 생각에 어떻게든 잎을 활용해보려고 했다.
그렇게 완성한 차는 검은색이 됐다. 본래는 녹색이어야 했다.
검은색으로 변한 차를 인근에서 팔 자신이 없었던 농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내다 팔았다.
그런데 그의 차를 샀던 상인이 다음 해에 찾아왔다.
지난해보다 돈을 더 쳐줄 테니 같은 차를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닌가.
신이 난 농부는 그때부터 열심히 검은색 차를 만들었다.
깔고 자서 뭉개진 잎을 버렸겠지 어떻게 차가 됐겠냐고, 말이 안 된다는 이들도 있다.
기록이 없으니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16세기 초 푸젠성 우이산에서 홍차가 처음 만들어진 것만은 확실하다.
역사가 400년이나 된다. 홍차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파리 모양을 살려 가공한 홍차다. 두 번째는 가공하면서 이파리를 잘게 자른 것이다.
이렇게 잘게 자른 홍차는 물에 우리면 잎에 들어 있는 여러 성분이 한꺼번에 빠져나온다.
밀크티를 만들 때 이 홍차를 쓰면 차 맛이 진하게 나와서 좋다.
마지막은 이파리 모양을 살리되 소나무 장작을 때서 연기 냄새가 배게 한 차다.
이렇게 만든 차를 소종홍차라고 한다.
중국 사람들이 처음 만든 홍차는 소종홍차였다.
소종홍차는 왜 소나무 연기 냄새가 배게 만드는 것일까?
이것도 몇 가지 설이 있다. 소종홍차는 고산 지역에서 생산된다.
본래 고도가 100m 올라갈 때마다 기온은 0.6도 떨어진다고 한다.
이런 지역에서 자라는 차나무는 성장이 매우 느리다.
소종홍차를 만드는 차나무도 5월 상순이나 돼야 봄 차를 만들 만큼 잎이 자라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는 비가 많이 온다.
어떤 차든 비가 오면 만들기 힘들다. 농부들은 따온 잎을 널어놓고 밑에 장작을 피웠다.
장작불로 온도를 높이면 비가 와도 어떻게든 차를 만들 수는 있었을 테니.
그런데 장작도 비에 젖어 있다.
젖은 장작은 굉장한 연기를 내뿜으며 타들어갔다.
그 연기는 고스란히 찻잎에 스며들어 소나무 연기 냄새가 나는 차가 됐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소종홍차가 인기를 끌어 너도나도 따라 만들자 애초에 소종홍차를 만들던 푸젠성 우이산
사람들이 차별성을 두려고 이름을 정산소종이라 붙였다.
정산은 ‘진정한 고산 지역에서 나는 차’라는 의미다.
그리고 남들과 다르게 만들기 위해 가공 마지막 과정에 베이컨 훈제하듯 연기 나는 소나무
장작을 피워 연기가 스며들게 했다는 얘기다. 둘 다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전통적으로 소종홍차를 만들 때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썼다.
차 만들 때 비가 오고 날이 궂으면 비에 젖은 소나무 장작을 때서 연기로 말렸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은 이 과정을 생략했다.
하지만 가공 마지막 단계에서는 꼭 장작을 때서 일부러 연기가 배어들게 했다.
소종홍차를 처음 유럽에 소개한 나라는 네덜란드였다.
1610년 네덜란드가 마카오에서 소종홍차를 구입해 유럽으로 가져갔고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 공급했다.
포르투갈 캐서린 공주가 영국 국왕 찰스 2세에게 시집을 가면서 홍차를 가져갔다.
낯설고 외롭고 말도 설은 결혼 생활 동안 캐서린은 홍차로 위로를 많이 받았다.
그는 종종 영국 왕실 사람들과 귀족을 차 마시는 자리에 초대했는데 그 맛과 멋에 반한
사람들이 홍차에 빠져들면서 차차 홍차 붐이 일었다. 캐서린이 마셨던 홍차도 소종홍차였다.
정산은 ‘진정한 고산 지역에서 나는 차’라는 의미
그렇지만 소나무 연기 냄새를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18세기 중엽 일부 차상이 스모크 향을 뺀 홍차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소나무 연기 냄새는 사라지고 대신 꽃향기와 과일 향기가 짙어졌다.
꽃향기, 과일 향기 나는 홍차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럽 사람들이 닥치는 대로 홍차를 사 가니 중국인은 팔 걱정 없이 많이만 만들면 됐다.
구황 작물인 고구마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차나무를 심었다.
홍차를 팔아서 돈을 많이 벌면 구황 작물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동치 시기(1862~1874년, ‘동치’는 청나라 10대 황제 목종이 사용한 연호) 후난성 핑장에서
기록한 ‘평강현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도광(1821~1850년, 중국 청나라 선종 때 연호) 말에 홍차가 크게 흥해서 상인들이
외국에 팔았다.
연간 수십만금이 넘는 액수였다.”
“최근 몇 년 동안 홍차가 흥해서 산골짜기 고구마 심었던 데에 모두 차를 심었다.
차 시장이 번성해서 가난한 집 부녀는 서로 시장에 가서 차를 고른다.
차를 고르는 사람이 2만명이 넘는다.”
그에 비하면 정산소종은 썩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생산량이 점점 줄어들다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정산소종을 만들던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남자가 있었다.
이름은 장위안쉰. 그의 아버지는 정산소종이 영화를 누렸던 옛날이야기를 자주 들려줬다.
그는 정산소종의 전설을 다시 찾고 싶었다.
그래서 엄청난 노력 끝에 세상이 놀랄 만한 최고급 홍차 제품을 만들어냈다.
일단 차나무에서 싹만 따냈다.
(무슨 차든지 싹만 따서 만들면 가격이 매우 비싸다.) 연기 냄새도 뺐다.
이렇게 만든 홍차는 은은하고 좋은 꽃향기와 꿀 향기가 났다.
그는 이 새로운 차에 ‘금준미’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겨우 정산소종의 명맥을 이어가던 사람들도 금준미로 힌트를 얻어 소나무 연기 냄새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버렸다.
사실은 소나무 연기 냄새 입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작을 때려면 아무래도 원가가 높아지고 일도 많아지는 데다, 우이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며 소나무를 베는 것이 금지되자 소나무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힘들게 소나무를 찾아 스모크 향을 입힌다 한들, 소비자가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스모크 향을 안 입히면 되지 않나 싶지만, 막상 오래도록 고수해온 전통을
바꾸기가 쉬웠으랴. 지금은 중국 차 애호가 치고 금준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맛도 맛이고 향기도 향기지만 깜짝 놀랄 만큼 비싼 가격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고급 차가 속속 등장하는 분위기도 금준미 인기에 한몫했을 테다.
시장 환경에 잘 맞췄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홍차에 집념을 갖고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했던 장위안쉰의 유연한 사고방식이 단단히 한몫했을 것이다.
- [신정현 죽로재 대표] https://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21&no=484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