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도공’ 백파선의 궤적] ④ 땅 속에서 찾는 백파선의 흔적 - 경남신문 - 2023-10-12
김해는 고려시대부터 도자기 수출한 지역
세종실록지리지에 자기소 ‘감물야촌’ 기록
상동면 일대 조선시대 가마터 유적 11곳
14세기 말~16세기 초 분청사기 가마터와
임진왜란 이후 운영 백자 가마터도 확인
백파선은 백자시대가 태동할 때 태어나
임란 이후도 도공들 상동면서 계속 작업
발굴작업 중인 ‘묵방리 도요지’ 곳곳 유물
부부가 일본서 처음 생산한 자기 유물과
상동면 유물 간 연관성 찾는 게 규명 열쇠
백파선 부부는 임진왜란 당시 고토 이에노부에 의해 일본 다케오로 향했다.
고토 이에노부는 다케오의 영주 나베시마 나오시케의 가신으로, 나베시마는 임진왜란 당시
김해 죽도왜성을 세운 인물이다. 백파선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김해는 고려시대인 11세기 후반부터
도자기를 수출한 지역이다.
조선 초기 세종실록지리지에 ‘김해도호부(김해읍성) 동쪽에 자기소인 감물야촌(甘勿也村)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감물야촌은 궁궐에 자기를 진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15세기에는 ‘김해도호부가 제포왜관(왜인들의 교역과 숙박시설을 갖춘 무역처)에 배치된
그릇 제작을 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오늘날 김해 상동면을 중심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도자기 유물이 다수 발굴된다.
백파선의 흔적이 상동면 어딘가에 있을 거란 기대는 허상이 아니다.
◇김해 상동지역 가마터 발굴 현황= 현재까지 확인된 김해 상동면 일대 가마터 유적은 총 11곳이다.
이외에 도자기가 발견된 고분군과 주거지 등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유적도 있지만,
가마터 유적 11곳은 모두 조선시대 유적이다.
가마터 유적 11곳은 1968년부터 현재까지 총 32건의 지표·발굴조사가 이뤄졌다.
1968년 정징원 전 부산대 명예교수의 석사논문에 수록된 6건을 시작으로 1990년대까지는 2건의 추가
지표조사만 이뤄지는 등 초기에는 적극적인 발굴조사가 되지는 않았다.
상동면 일대 지표·발굴조사는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2008년 한국문물연구원이 5건의 도요지 지표조사를 포함해 최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강산문화연구원 등에서 24건의 지표·시발굴조사 작업을 이어왔다.
성과도 드러났다. 2016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를 진행한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502-1)’는 2017년 7월 경남도기념물 제288호로 지정됐다.
‘분청의 고장’을 자처한 김해는 분청을 제작했다는 문헌만 남아 있었는데, 해당 유적이 이를 뒷받침할
명백한 증거가 됐기 때문이다.
분청사기는 회색 또는 회흑색 흙 위에 백토를 분장한 뒤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자기로,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14세기 말부터 16세기 초반까지 유행한 생활자기다.
곧이어 2018년부터 ‘상동 백자 가마터(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산 252-1)’ 발굴작업을 진행해 이곳이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중반 운영된 백자 가마터임을 확인했다.
또한 신어산 자락에 위치한 ‘묵방리 산 30번지 백자 가마터’ 주변에서 백자 가마터가 추가로 확인되는 등
점차 상동면 일대 도자기 요업시설의 규모가 확장돼 왔다.
이들 가마터 유적들을 통해 상동면 일대가 과거 세종실록지리지에 언급됐던 김해지역 대규모
요업단지인 ‘감물야촌’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더 나아가 조선 초기부터 조선 중기 이후까지
상동면에서 도자기 제작이 이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발굴조사는 현재진행형= 상동면 일대 가마터 발굴조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김해시는 문화재청으로부터 긴급발굴조사 사업비를 지원받아 백자 가마터인 ‘묵방리 도요지’ 중
일부(묵방리 10번지 백자 가마터)를 발굴조사하고 있다.
이 지점은 이번이 세 번째 조사로, 발굴조사는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이 맡았다.
지난 10일 찾은 현장은 막바지 발굴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작업지점은 가마터 상단부 소성실 부근. 흙을 조심스럽게 파내는 작업자들의 손에는 도자기
파편들이 심심찮게 잡혔다. 한쪽에는 이날 발굴한 유물들이 한아름 쌓여 있었다.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에 백자를 생산하던 가마터로, 왜란 때 잡혀가지 않았던 상동면의 도공들이
이곳에서 계속 작업을 해온 것으로 추정한다.”
현장 책임자인 김재홍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부 팀장은 백자 파편을 조심스럽게 들고
설명을 이어갔다. 키워드는 ‘사질 내화토로 만든 받침’이다.
“과거에는 그릇 사이에 불에 잘 견디는 흙으로 만든 받침을 넣고 여러 점을 포갠 다음 구웠다.
그런데 다른 지역 가마터와 달리 상동면의 유물들은 특이하게 ‘사질 내화토’로 만든 받침이 확인된다.
이는 조선 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상동면 가마터에 공통되게 나타난다.
결국 이런 제작 방식이 임진왜란 이후에도 계승되면서 가마 작업이 이어졌다고 해석 가능하다.”
묵방리 10번지 가마터에는 조업 순서가 확인되는 가마 2기가 확인됐으며, 4만여점의 백자 유물이
발굴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 주 중 해당 가마터 발굴조사 결과와 현장을 공개하는 자문회의가 열릴 예정이며,
정식 발굴보고서는 2년 안에 발간할 예정이다.
자문회의를 앞두고 있어 이날 현장 사진은 담을 수 없었다.
◇백파선 흔적 찾으려면= 백파선(1560~1656)은 분청사기(14세기~16세기) 시대가 끝나고
백자시대가 태동했을 당시 태어났다.
상동면이 백파선의 고향이 맞다면, 백파선의 흔적은 일본에서 백파선 부부가 처음 자기 생산을 한
우치다의 가마터에서 발견된 유물과 같은 시기 김해 상동면에서 생산된 유물 간 연관성을
찾는 데에서 시작할 것이다.
김재홍 팀장은 상동면의 가마터를 발굴하면서 찾은 일정한 규칙이 백파선의 흔적을 찾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가마터 운영에는 불을 땔 목재가 가장 중요한데, 상동면 일대 가마터는 시기가 지날수록 내동천을 따라
산 쪽으로 터를 이동한다는 것이다.
가마터 주변에 목재가 없어질 때마다 점차 산 쪽으로 가마터를 옮기는 방식은 다른 지역에서도
확인되는 현상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가마터 중 백파선이 태어날 시기와 가장 맞닿아 있는 곳은 경남도기념물 제288호로
지정된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다.
해당 가마터는 분청사기를 주로 생산하다가 마지막에는 백자를 생산한 흔적이 남아 있다.
김 팀장은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는 2m가 넘는 퇴적층이 있는데 마지막 단계에 초기 백자가 확인됐다.
당시 발굴 과정에서는 퇴적층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쳤고 전체 발굴조사가 된 건 아니다.
향후 해당 가마터에 있는 초기 백자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진다면 일본에서 백파선 부부가
만든 가마터 유물과 비교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 외에도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보다 내동천 위쪽에 위치한 미발굴 가마터(롯데상동야구장 뒤편)
등의 조사도 백파선의 흔적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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