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도공’ 백파선의 궤적] ③ 콘텐츠가 건져 올린 잊힌 인물 - 경남신문 - 2023-10-10
백파선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넘어가 96세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조선도공들을 이끌며 훗날
‘아리타 도업의 어머니’로 불리게 된 인물이다.
백파선이 널리 알려지게 된 기점은 2005~2006년 제작된 뮤지컬 ‘백파’가
일본 전역에서 흥행하면서다.
몇년 뒤 한국에서도 백파선을 주제로 한 문화 콘텐츠가 하나둘 생산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백파선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도도 올라갔다. 결국 잊힌 인물인 백파선을 수면 위로
건져 올린 것은 ‘학술 연구’가 아닌 ‘문화 콘텐츠’였다.
잊힐 뻔한 인물 백파선을 살려낸 건
학술 연구가 아닌 팩션 위주의 콘텐츠
1998년 일본서 백파선 모델로 소설 발간
2005년 뮤지컬 흥행하며 널리 알려져
국내에선 2013년 드라마·책 등 쏟아져
◇팩션 중심으로 한일 양국에서 시작된 콘텐츠화= 백파선과 관련해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문화 콘텐츠는 1998년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리다 기요코가 쓴 소설책
‘용비어천가(龍秘御天歌)’다.
이 책은 백파선을 모델로 일본 아리타로 끌려간 조선도공들의 삶과 죽음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99년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예술선장 문부대신(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소설 속에서 백파선은 남편이 죽은 상황에서 조선식 장례를 고집하지만 이에 반대한 자식들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리다 기요코는 이어 2004년 용비어천가의 후속작인 ‘백년가약’을 발표한다.
이 작품에서 백파선은 죽어 신이 되는데, 후손들의 혼사에 개입하면서 일본의 문화에 쉽게
동화되지 않으려는 재일 조선인의 모습을 보인다.
이후 2005~2006년 일본 극단 ‘와라비좌’가 두 작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백파’를 제작한다.
뮤지컬은 아리타 초연을 시작으로 일본 전역에서 150회가량 공연되며
백파선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됐다.
백파선을 주제로 한 일본의 작품들은 모두 팩션(사실을 바탕으로 한 실화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픽션을 섞어 재창조한 장르) 작품인데, 한국에서의 콘텐츠 작업도 이러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국내에서는 2013년 한해 동안 TV드라마와 책으로 백파선과 관련된 콘텐츠들이 쏟아진다.
첫 신호탄은 MBC가 기획한 ‘불의 여신 정이’로 동명의 소설(권순규 작)
출간과 함께 32부작으로 방영된다.
백파선을 모티브로 한 정이는 배우 문근영이 연기해 화제가 됐으며 일본에 수출돼
방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광해군이 어린시절 우연히 알게 된 정이(백파선)를 연모하고, 백파선의 남편을
모티브로 한 김태도가 작 중 조선에서 사망하는 등 이야기 전개는 실제 사실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소설 ‘백파선-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이경민 작), ‘백파선- 400년 전 일본을
매혹시킨 조선 도공 이야기’(이수광 작), ‘불의 여신 백파선’(이경희 작) 등이 2013년 출간됐다.
하지만 모두 흥행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고향 자처한 김해에선 선양작업 활발
카페·광장 조성, 도자기 축제·체험 활동
주민 참여한 연극 공연·학술 세미나도
서울 백파선콘텐츠연구소·도예협회
포럼 개최·기념상 제작 등 다양한 활동
◇김해·서울서 이어지는 선양작업= 백파선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김해에서는 백파선 선양작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중심지는 김해 상동면 대감마을로, 마을은 백파선의 고향임을 자처한 유일한 곳이다.
(아직까지 백파선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마을은 과거 분청·백자 가마터가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도자기와 백파선을 지역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마을회관 1층에는 ‘Cafe 백파선’이 운영 중이며, 마을에 조성된 벽화에서는
도자기를 비롯해 백파선과 관련된 내용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카페 옆에는 ‘백파선 광장’이 조성돼 2019년부터 매년 마을축제가 열리고 있다.
오는 14~15일에 이곳에서 ‘제3회 대포천 감물야촌 축제’가 열리는데 부대행사로 백파선 관련
학술 세미나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축제에서는 극단 진영과 함께 주민들이 배우로 출연해 연극 ‘조선 최초의 여성사기장
백파선’을 공연하기도 했다.
이봉수 대감마을 만들기 추진위원장은 “백파선이 이곳에 살았다는 역사적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지만,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유추해보면 대감마을이 백파선의 고향일거라
생각한다”며 “백파선에 대한 잊힌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우리 주민들이 직접
연극 등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김해시민들에게는 백파선이 꽤 알려져 있는 편이다.
이는 김해시가 백파선 알리기에 힘써온 결과이기도 하다.
김해시는 지난 2016년부터 제21회 김해분청도자기축제의 슬로건을 ‘백파선, 400여년 전 도공의
숨결 김해분청에 어리다’로 정하는 등 2019년까지 백파선을 주제로 축제를 진행해왔다.
‘예술공간 예닮’ 등 김해지역 문화공간에서는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백파선에 대한
교육체험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 김해 극단 이루마는 2020년 경남연극제에서 연극 ‘조선도공 백파선’을 선보이며 은상을
수상하고 김해서 수차례 공연을 이어왔다.
앞으로는 백파선을 주제로 한 김해지역 동화작가들의 작품도 공개될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이혜경 전 서울시의원이 백파선콘텐츠연구소를 운영하며 다방면에서
백파선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2019년 한일백파선국제포럼 개최를 시작으로 음반(백파선 헌정앨범- 백파선을 그리다) 제작,
전시(불의 여신 사기장 백파선 현대와 만나다), 페이퍼 아트토이 등 콘텐츠를
제작·기획하고 있다.
한국도예협회도 지난 2018년 백파선기념사업회를 만들고 ‘백파선기념상’을 제작해
일본 아리타 백파선갤러리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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