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예가

강문식 - 늘솜도예

썬필이 2019. 1. 18. 13:06

강문식 -  늘솜도예
2006. 늘솜도예 설립
2006/07 경남기능대회 동상
2008 대한민국 공예대전 대상 / 김해시 공예대전 특선
2009 경남 기능경기대회 금상 / 김해 공예품경진대회 장려,경남 관광기념품 공모전 동상
2010 김해시 관광기념품 공모전 금상
2011 김해 공예대전 동상
2013 경남 관광기념품 공모전 장려
      현) (사)김해도예협회 회원, 경남공예조합 회원, 늘솜도예 운영

강문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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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연꽃 다기세트 - 김해시 공예품대전 대상작(2014)
‘향기' - 경상남도공예품대전 대상 - 2008

강문식은 충남 아산시에서 태어났다. "별스런, 그럴듯한 이야기가 없어요.
뭐라고 하면서 인터뷰를 해나갈지 걱정이네요."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위로 형님 두 분, 누님 두 분이 있다"는 그의 말에 막내라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겠다고 
했더니 아니란다.
"바로 위의 형이 저보다 아홉 살이나 많습니다. 
나이 차가 많아 형님 누나들과 함께 놀아보질 못했어요.
혼자서 놀며 자라다보니 제 성격이 좀 내성적입니다.
혼자서 그림도 그리고, 찰흙이 있으면 조물락 조물락 가지고 놀고 그랬죠.
저는 정말 평범한 아이였어요."
고등학교 시절에 미술부 활동을 했으니 재능이 있었던 것이냐고 물었더니 또 아니란다.
"그림을 좋아하긴 했죠.
그런데 미술부에 든 건 그 때문이 아니에요.
1학년 신입생일 때 특활반을 구성하는데, 좀 친하게 지내보고 싶은 녀석이 미술부에 가입하기에 
저도 따라서 가입했지요. "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그는 친구 따라 미술부에 가입했던 것이다.
"그때 함께 활동했던 미술부원들 중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예술 쪽으로 활동하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어요.
유일하게 저만 도자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미술부 친구들에 비해 실력이 모자랐다고 털어놓았다.
"저녁까지 남아서 소묘와 데생 연습을 많이 했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아 답답했는데, 계속 하다 보니까 
어느날부터 조금씩 실력이 늘더군요.
'나도 열심히 하면 실력이 느는구나'라고 생각했지요."
혹시 정신을 차리고 보면 혼자 제일 늦게까지 남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남들이 지쳐 
나가떨어진 다음에도 끝까지 하려 들었던 걸 이루어낸 것이냐고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학입시 때 전문대 시각디자인과를 지원했습니다.
실기과목으로 소묘와 데생을 했죠.
그리고 과 수석으로 입학했어요. '내 생애 처음 1등'이었습니다." 그는 활짝 웃었다.
"사실 그 전에는 별로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런데 과 수석으로 입학하면서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시각디자인은 그의 적성과 잘 맞지 않았다.
그는 일찌감치 군에 입대해 서울에서 의경으로 복무했다.
제대 후에는 부산 기장군에서 고깃집을 하던 누나네로 내려왔다.
누나네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던 어느날 도예가 한 명을 소개받았다.
"매형의 골프 친구 중에 기장에서 도자를 만드는 이수영씨가 있었어요.
매형이 보기에 제가 걱정이 좀 됐던지,
'도자기 한 번 배워볼래?' 하면서 제 의사를 물어보셨고, 저도 호기심이 생겼죠.
지금 생각해보면 매형이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신거죠."
이수영은 당시 결혼을 해 일본으로 갈 계획을 갖고 있었다.
강문식은 이수영이 일본으로 가기 전에 3개월 정도 도자기를 배웠다.
"숲 속에 있는 공방이었어요. 아늑하고 느낌도 좋았습니다.
그 공방이 태어나 처음 들어가 본 도자기 공방이었습니다.
그 공방에서 물레를 처음 배웠어요." 
그는 첫 물레질에서 '이건 나와 맞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물레의 기본은 중심을 잡는 거지요. 흙 반죽이 쏟아져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요.
처음엔 흙 반죽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걸 배우는데, 단순한 작업처럼 보였지만 힘들었어요.
그리고 단순한 동작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습니다.
'이거다! 나하고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그렇게 도예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낮에는 물레질을 하고, 밤에는 누나의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이 
3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이수영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 김해 진례의 도예가 김기환을 소개해주었다.
도예가가 되기로 결심한 강문식은 24세 때 진례로 왔다.
김기환의 자방도예를 비롯해 다송도예, 금산도예, 길천도예 등에서 도자기를 배우며 일했다.
그리고 2006년 마침내 진례면 청천리에 늘솜도예를 설립했다.
4년 전쯤 현재의 장소인 안평마을로 옮겼다.
"만들어보고 싶은 작품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구상하고 또 만들어보고…
처음에는 생각대로 잘 안돼 힘들었습니다.
새로운 모양으로 성형하고, 유약 연구도 하면서 이번에는 잘나오겠지 하면서 가마에서 꺼내면 
기대보다 완성도가 떨어지고… 그런 과정을 숱하게 겪었습니다.
공모대회에 작품을 출품해도 성적도 잘 안나오고 힘들었죠.
그러다가 2008년에 김해공예품대전에서 특선, 경남공예품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경남공예품대전 대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는 다른 도예가의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대상 수상 확정이라는 전화연락을 받았을 때 머리가 하얗게 비는 듯 하더라구요. 
아무 생각이 안 났습니다.
잠시 후 정신이 들면서 내가 열심히 만들었고, 그런 작품이 상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는 "그 수상 소식이 과 수석 입학 이후 내 생애 두 번째 자신감을 안겨준 일"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하루는 좀 늦게 시작된다.
오전 11시쯤 일어나 집과 지붕을 맞대고 있는 공방으로 와서 새벽 3~4시까지 일을 한다.
느지막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었다. "공예품, 즉 작품과 도자기 판매는 별개입니다.
판매할 수 있는 생활자기를 부지런히 만들어 팔아야 제가 표현하고 싶은 세계를 담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작품만 만들고 싶지만,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하니 그럴 수는 없고….
평소에 작품 구상을 늘 하고, 만들어 놓은 작품도 다시 살펴보고 보완해 만들고,
다른 사람 작품도 보고, 늘 도자기 생각에 빠져 있지요."
백자도자기도 만들고 분청도자기도 만들지만, 그는 백자가 자신의 성격과 더 잘 맞는 
분야라고 말했다. 
"백자는 형태미가 좋아야 합니다. 
디자인과 문양이 좋아야 하구요. 완성된 백자도자기는 세련되고 깨끗하지요.
제 성격이 깔끔한 걸 좋아하는 편인데, 그런 면이 백자와 잘 맞습니다.
백자로 만든 다도구 한번 보세요. 선이 예쁘지 않습니까?"
그는 백자 작업이 무척 까다롭다고 말했다. 
순백의 완성품을 만들자면 작은 티 하나만 묻어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는 가스가마를 쓰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장작가마에서는 나뭇재가 튀는데, 백자에 나뭇재가 앉으면 작품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마 내부 청소도 철저히 하고 있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작품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에 김해도예협회전에 출품했던 작품을 다시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 작품은 도자기에 조각보 문양을 올린 것이다.
조각보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고운 천 조각을 기물 위에 올려놓고 문지르는 방법을 사용했다.
"나이가 들면 자기 것만 고집하고 시각도 보수화되기 쉽습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멈추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도자기를 좋아하는 대중들에게도 한 마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장작 가마냐 가스가마냐부터 물어보거나, 유명한 도예가의 작품인지 아닌지부터 알아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편견을 버리고 도자기 그 자체로 봐주세요.
도예인들이 도자기를 빚는 마음은 모두 똑같이 귀하고 소중합니다." - 김해뉴스 - 201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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