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하관차창 下關茶廠

썬필이 2019. 3. 3. 16:51

하관타차는 1902년부터 운남 영창향하관차창의 전신인 영창향 상호에서 비롯도니 차입니다.

특히 "송학"하관타차는 백년역사의 유명브랜드로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후 1941년, 강장차창으로 창건하여 타차,병차,전차,긴차등 다양한 긴압차 및 녹차,특종차,티백등 총

200여가지 품종을 생산해냅니다.

1950년 신중국 설립후 정식으로 "운남하관차창"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20세기초에 설립된 10여개의

마방상단과 호자급 차방을 통합하여 더욱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1980년대부터 국가 및 세계식품 품질상,중국차엽브랜드,중국 명품농산품,중화노자호,운남성 명품생산품,

운남성 저명상품등 30여가지의 영예를 수상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2013년12월 "중국유명상품"에 등록된 기업이며,

현재는 중국 운남성 대리시 창산 남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 운남하관차창타차(집단)고분유한공사(雲南下關茶廠沱茶(集團)股份有限公司)

생산품목: 녹차, 홍차, 보이차, 청차, 삼도차

주소: 중국 운남성 대리시 하관건설서로 141호

홈페이지: www.xgtea.com

주요 연혁:

 - 1902년 ‘송학패(松鶴牌)’ 보이타차가 하관 지역의 유명 상표로 팔림

 - 1941년 하관차창 정식 출범

 - 1973년 숙보이차 개발에 참여

 - 1975년 프랑스 수출 시작

 - 1989년 운남성 선진기업 인증

 - 1990년 중국 국가 2급 기업 인증

 - 1994년 현재의 주식회사 형태로 등록

 - 2004년 민간 기업으로 등록

주요 인증 및 수상:
- 1981년 ‘송학패’ 타차 국가품질은상 수상(85년에도 수상), ‘운남명패’ ‘중국차엽명패’ 등의 칭호를 받음
- 1986, 1987년 연속으로 보이타차가 세계식품박람회(International food fair) 백옥금관상

  (white marble golden crown) 수상
- 1989년 국가식품박람회 금상
- 2002년 원산지 표기 증명
- 2003년 유기농 전환 인증
- 2003년 ISO 9001:2000 인증

- 하관차창 보이차 2014년 고원진타차 생 100g 보이차잎 / 차예마을: 판매가: 10,400원

- 하관차창 보이차 2014년 합장보염 긴차 생 250g 보이차잎

  모델명 :4766

  판매가: 28,800원- 차예마을

-  하관 2013년 보마소천타차 생 150g 보이차잎

   모델명 : 4466 / 판매가(차예마을):20,000원

- 보이차 하관 2015년 P8653 생 357g 보이차잎 / 차예마을: 판매가: 32,000원

- [하관] 2018년 금인 8663 숙병 357g

제조사/원산지 : 하관차창/중국 운남
단위(중량) : 1개(357g), 1통(7편), 1건(28편)
무게 : 357g
저장방법 : 직사광선을 피해 건조하고 통풍이 잘되는 깨끗한 환경에서 장기보관
제품가 : 22,000원

하관 고급숙차로 진향이 좋고, 두터운 맛이 매끄럽고 부드럽습니다. 시원한 단맛이 잘 느껴지고,

회감이 좋고 뒷맛이 깔끔합니다.

- [하관] 18년 소법숙타 100g

70년대 프랑스로 판매되어 명성이 높은 소법타는 홍농색의 탕색이 맑고, 묵은 향기가 부드럽고 진한맛이 좋고,

진운이 명확합니다.

제조사/원산지 : 하관차창/중국 운남
단위(중량) : 1개(100g), 1통(50개), 1건(100개)
제품가 : 5,800원 

운남 하관 보이차를 생산하는 하관차창의 정식 명칭은 운남하관차창타차(집단)고분유한공사

(雲南下關茶廠沱茶(集團)股份有限公司)입니다.

쉽게 말해 ‘운남하관차창 주식회사’ 정도 되겠군요. 하관차창이 위치한 하관(下關)은 지금 운남성

대리(大理)시에 속해 있습니다.

원래는 오랫동안 하관이란 지역명을 써왔는데, 이곳이 관광명소로 개발되면서 대리란 이름이 많이 알려져

도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는군요.

우리에겐 ‘대리석’이라고 하면 쉽게 와닿겠습니다. 대리석의 원산지가 바로 이곳입니다.

중국인들에겐 그러나 김용의 소설 때문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중원에 당나라가 있던 시절, 이곳엔 태족(傣族)과 백족(白族)이 주를 이루어 세운 대리국

(大理國, BC 937~1252)이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운남성 대리시는 백족 자치구에 속해 있습니다). 대리국은 상당히 특이한 나라였습니다.

철두철미한 불교 국가로 군대가 없었으며, 왕은 자식이 성인이 되면 미련없이 출가해 승려가 되었고,

혹여 싸울 일이 있으면 상인들에게서 자금과 사람을 빌려 외적을 물리쳤다고 하는군요.

상인들은 왕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도 강해서 기꺼이 돈을 빌려주고 싸웠다고 합니다.

사실 싸울 일이 별로 없을 나라 같은데... 후에 이곳은 원나라를 세운 몽고족에 의해 없어집니다.

그러나 대리국의 성은 지금도 남아 있고, 소중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죠. (사진은 백족 민족의상입니다.

실제로 보면 더 예쁩니다^^)

소설 <영웅문>으로 유명한 홍콩의 김용은 이 특이한 역사를 가진 대리국을 소설 <천룡팔부>에서 활용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과거를 지닌 주인공들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중심 인물인 단예가 대리국의 왕자란

설정을 가지고 있죠.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김용의 소설은 중국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고,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다양하게 각색되어 숱한 무협영화 캐릭터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김용의 <천룡팔부>가 나온 이후 대리는 더욱 유명해져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죠.

대리는 하관과 상관(上關)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히말라야 산맥의 한 봉우리인 창산(蒼山)을 배경으로

이해(洱海)라는 담수호를 끼고 있어 하절경을 자랑합니다.

후에 김용이 이곳에 와서 “하관풍, 상관화, 창산설, 이해월(下關風, 上關花, 蒼山雪, 洱海月)”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관에는 바람이 많고, 상관에는 꽃이 아름다우며, 창산에는 눈이 덮이고 이해엔 달이 떠있네” 정도로

해석되겠습니다. 그래서 하관차창은 하관 지역에 불고 있는 선선한 바람을 늘 강조합니다.

이곳은 창산에서 불어오는 깨끗한 바람이 사시사철 선선하게 불고 있기 때문에, 보이차의 건조에 있어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가보니, 바람까지는 모르겠으나 공기가 매우 깨끗하다는 건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건물 뒤로 히말라야 산맥 줄기가 보인다는 게 꽤 색다르기도 했고요.

하관차창은 공식적으로 1941년에 창립되었으나, 실제 제품 생산의 역사는 100년 전으로 올라갑니다.

1902년 이곳에선 ‘松鶴牌(송학패)’ 보이타차가 생산돼 팔리고 있었는데, 하관차창이 그 역사를 계승해

지금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걸 무시하고라도 60년이 넘었으니, 오래된 차창인 것은 분명합니다.

예전에는 운남성의 다른 도시에서 티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거쳐야 했습니다.

때문에 티벳을 상대로 한 보이차 생산이 활발했죠.

지금도 ‘보염패(寶焰牌)’란 상표로 티벳에 보이차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운남성은 교통이 불편하고 인구도 많지 않은 지역입니다.

그래서 생산된 차를 팔기 위해선 다른 지역의 브로커와 연계를 해야 했죠.

이들을 흔히 ‘차상(茶商)’이라 하는데, 운남성과 가까운 광동성의 차상들이 특히 많은 양을 구입했습니다.

예전의 차창들은 그러니까 단순 생산설비에 불과했고, 판매와 운송은 차상들이 담당했던 것이죠.

오래된 보이차들 중 동경호(同慶號) 복원창호(福元昌號) 송빙호(宋聘號) 등은 모두 차상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들은 청나라때부터 번성했던 차상들입니다.

하관차창을 비롯한 운남성의 차창들은 그러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으로 변혁을 맞게 됩니다.

1911년 중화민국 건국 이후 활발해졌던 상업이 된서리를 맞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는 수많은 차창들을 통폐합했고 생산도 정부 관리 하에 실시토록 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명 차상들은 모두 문을 닫게 되었고, 대외 수출은 운남성차엽공사진출구공사가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혹은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라고도 하는데, 시기에 따라 이름이

다를 뿐 결국 같은 곳입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 정부는 보이차의 대중화와 규격화를 실시합니다.

1973년 진출구공사가 주도하여 곤명차창이 연구 개발하고, 맹해, 하관, 임창차창이 제품을 만드는 형태로

인공발효보이차가 개발됩니다.

지금은 흔히들 숙차(熟茶)라고 하는데, 발수악퇴숙발효차(發水渥堆熟醱酵茶)가 원래 이름입니다.

이때 맹해차창은 병차(餠茶, 원반형), 하관은 타차(沱茶, 새둥지 모양), 임창은 방차(方茶, 정방형),

곤명은 전차(磚茶, 벽돌 모양)의 제품을 생산해 규격화하게 됩니다.

물론 제품 생산은 어느 차창에서나 가능했죠.

그렇게 해서 생산된 제품에는 번호를 붙였는데, 앞의 두 자리가 이 제품이 표준화된 연도, 가운데 한 자리가

찻잎의 등급(산차는 두 자리를 씁니다),

그 다음이 차창번호(곤명 1, 맹해 2, 하관 3, 보이 4 등)입니다.

이렇게 해서 7562 녹인이니 7572 대익 같은 제품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숙차 보이차는 초기에 기존의 청차 보이차 애호가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숙차 역시 좋은 발효차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긴 했지만, 지금도 그런 인식이 조금은 남아있죠.

특히 대만의 보이차 연구가들 중에선 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몰려나면서, 운남성 차창에서 보이차를 만들던 사람들도

많이들 쫓겨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보이차 제조 방식을 바꾸어버렸으니, 맘 상할 만도 하겠죠?

민간 교류가 활발해진 80년대 이후엔, 대만 사람들이 다시 운남성에 건너가서 전통 방식의 보이차를

제조하기도 했습니다.금도 운남성에는 대만인들의 출자가 많은 편이고, 직접 운영하는 다원도 많습니다.

숙차가 처음 나왔을 무렵 각광을 받은 곳은 맹해차창입니다.

원래부터도 유명했던 곳이고, 숙차 개발에도 참여한데다 품질 또한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남아있는 오래된 제품 중에서도 맹해차창의 보이차는 유명하죠.

그리고 맹해차창은 보이차 유형 중 가장 보편화된 칠자병차를 개발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기존 소비 루트인 광동과 홍콩, 화교권에서 인기가 높았죠.

상대적으로 하관차창이 만든 병차는 너무 딱딱하고 발효가 쉬 되지 않는다 해서 맹해만큼은

인기가 없었습니다.

하관은 타차의 제조방식에 익숙하다보니 그렇지 않았을까 추측은 합니다만...

게다가 하관의 주력 소비 루트에는 티벳이 있었습니다.

티벳은 1949년 중국군에 의해 자치구로 편입되지만, 기존의 상업 교류 입장에선 ‘수출’과 다름없었죠

(후일담이지만, 대리에 가서 티벳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니, 말을 아끼는 눈치였습니다.

‘중국은 하나’라는 정부의 입장이 중요하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더군요).

당시 차창들의 보이차 생산은 자본주의적 상품 판매라기보다는, 사회주의적인 주문 생산 위주였습니다.

기존 소비 루트 이외의 생산은 주문을 받아야 이루어지던 때여서, 물론 하관 제품('중차패'를 주로 썼습니다)도

오래된 좋은 제품이 남아있습니다만,수량에서는 뒤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8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미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국영기업들을 조금씩 민간기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수혜자이자 희생자가 맹해차창이 되었습니다.

1986년 운남 성정부는 차창 사유화(민간 기업화) 작업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는데, 이미 그 전에 맹해차창은

민간 기업으로 분류돼 있었습니다.

품질이나 공급량, 시장 수요 면에서 가장 앞선 차창이었으니까 먼저 시장에 내놓은 것이겠죠.

그런데 맹해는 이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제품 생산에만 주력하면 되었지만, 민간 기업이 되면 자본 유치와 기업 경영의 비중이 훨씬

커지는데 이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죠.

저희가 보이차 수입을 준비하면서 의아하게 느낀 점이, 하관차창의 제품들은 대외적으로 비교적 준비가 잘

돼있었고 제품군도 다양했던 반면, 그 유명한 맹해차창의 제품 소개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어렵게 웹사이트를 찾을 수 있었지만, 맹해의 명성에 비해선 너무도 초라했고 여전히 칠자병차 위주의

생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운남성 진출구공사에 가서 이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맹해차창의 품질은 지금도 좋은데, 기업 경영과 투자에 문제가 생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1세기가 된 지금은 중국 정부에서 나서서 이런 문제를 도와줄 수도 없고, 자신들도 오랜 파트너인 맹해의

제품을 적극 홍보하고 싶기는 하지만 다양해진 소비자 입맛에 맞춰줄 수가 없어 고민이라고 아쉬운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관차창에 가서도 똑같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업 관계로만 보면 라이벌이라 할 수 있을텐데, 오랫동안 연구 개발과 제품 생산을 함께 고민해오고 했던

처지인지라 동종업계 입장에서 안타까운 심정이 큰 모양입니다.

 

하관차창은 수출이 확대되면서 득을 본 경우입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개방화 정책에 따라 하관차창은 2004년 5월에 민간 기업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저희와 한국내 독점 계약을 체결하면서 하관차창은 한국 보이차 시장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사실 하관차창 제품이 한국 내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이차 판매가 숙성연한을 중시한 나머지, 정작 어떤 제조창에서 어떤 제품을 
만드는지는 홍보가 없었습니다.
저희가 공급하는 티백 제품이 좋은 예가 되겠네요.
중국 내에선 티백이 그리 환영받질 못해서 ‘보이차 티백’은 전량 수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선 오래된 제품을 비싸게 파는 상행위가 많고, 정식 계약을 통하지 않고 
내수용 제품을 반입하다보니 티백 같은 제품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베트남산 제품은 있더군요. 품질에 대해선... 비방글은 올리지 말아야겠죠?^^).
게다가 원료 품질이 좀 떨어지는 녹차 티백과 달리, 보이차는 일단 숙성을 시킨 후에 다시 

티백용으로 분쇄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것도 원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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