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 산수시문 연적 白磁靑華山水詩文硯滴 8.8x9.4x6.7(h) cm :
2012년9월26일 서울옥션 제125회미술품경매 No.427 3300만원 낙찰
조선후기 들어 과거지망생 수가 급증하면서 덩달아 개화한 것이 시(詩)의 시대였다.
과거 과목 중 하나에 시가 들었기도 했거니와 운치 있는 시를 지을 줄 모르면 제대로 된 문인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시를 짓는 일은 문인 사회를 넘어 중인들까지 번졌고 또 기방에서도 한글을 섞어 한시를 읊는
가요가 크게 유행했다. 그런 시절을 배경으로 도자기에도 자주 시문이 적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강가의 정자와 조각배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은 말 그대로 한 폭의 산수화이다. 그 빈 여백에 시귀 하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네 면을 돌아가면서 시구를 적었다. 그런데 이 시구는 모두 제각각이다.
우선 산수화가 그려진 윗면의 구절은 ‘五月江深草閣寒(오월강심초각한)이다.
이는 당나라의 시성 두보가 읊었다.
성도 시절 그의 후원자였던 엄무가 성도를 떠나 장안으로 돌아가기 전에 술과 안주를 가지고 초당을
방문했을 때 (「嚴公仲夏枉駕草堂 兼携酒饌 得寒字」)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앞 구절은 엄무에 대한 찬사이고 뒤쪽은 외진 곳에서 한가롭게 사는 삶에 만족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구절은 보통 ‘백년지벽시문형(百年地僻柴門逈)’과 짝이 돼 ‘평생 외진 곳에 살아 사립문도 아득하고,
오월의 강은 깊고 초가집은 쓸쓸하네’로 많이 읊어졌다.
뿐만 아니라 그림의 소재로도 쓰여 명나라 후반부터 자주 그려졌고 조선에서도 18세기 중반 대단한 활동을
보인 최북(崔北 1712-1786경)도 큰 부채에 이 구절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 게 있다.
측면 시는 2수를 차례로 적었는데 하나는 당시 분원 주변에서 많이 읊어졌던 시구였고 하나는 생소한 것이다.
우선 생소한 것부터 보면 ‘한잔 술에 한잔 술에, 늙은 홀아비 봄바람에 고꾸라지네, 공명도 부귀도 다 싫고,
단지 남은 인생 일 없기만을 바랄 뿐이네
(一杯酒一杯酒,鰥翁醉倒春風前,不願貴不願富,但願無事送餘年)’이다.
시의 작자는 찾을 수 없는데 어딘지 분원 도공의 힘겨운 생활을 읊은 듯한 느낌도 있다.
두 번째 시는 술에 관련된 것이기도 해 술병이나 술항아리에 여러 번 쓰인 적이 있다.
리움 미술관에는 커다란 술항아리에 이 시구가 적혀 있으며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에는 사각 술병의
한쪽에 이 구절이 있다.
양쪽 모두 맨 마지막 구절이 이 연적과는 다르다. ‘말없이 술잔만 주고받는다(長酌不言無)’로 돼있다.
또 이 시 역시 작자가 확인이 안 된다.
그러나 시의 내용은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더없이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願以酒泉土 원컨대 주천의 흙으로
陶成白玉壺 백옥 같은 술항아리를 빗어
相逢知己友 마음 맞는 친구를 부르니
世事雲外閑 세상사 구름 밖에 한가롭도다
그런데 술병이나 술항아리가 아니라 글 짓는 문인의 서탁 위에 올려놓는 연적이 되면 운치보다는
전위적이란 느낌이 없지도 않다. - 스마트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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