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란 작설차, 죽로차 등으로 부르는 차나무 잎이나 순을 따서 덖거나 데치고, 찌거나 발효시켜 만든 다음
끓인 물로 달여 마시는 행위,
그리하여 육신과 정신에 미치는 오묘한 변화의 세계까지를 한마디로 줄여서 표현한 것입니다.
차나무와 찻잎만을 뜻하기도 하며, 찻잎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공하여 만든 것을 말하기도 하지요.
새롭게 창안된 방법으로 달여서 찻잔에 담아둔 것을 차라고 하며, 찻잔에 담긴 것을 마시기만 하는 행위를
뜻하기도 하고, 마신 뒤의 느낌을 차라고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총칭하여 차라 부르기도 합니다.
아무튼 차라는 이름(말)이 생겨난 것은 정확한 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만
중국쪽 역사로는 광동성 마카오의 사투리인 ‘차(cha)’와 복건성 아모이 사투리인 테 혹은 떼(te)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지요.
따라서 처음부터 지배계층의 기호 식품이나 승려들의 수행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흔히 오랑캐라고 부르는 변방 소수민족들이 예부터 사용해온 약이었습니다.
음식이 지닌 독을 풀거나 육신에 생긴 질환을 치유시키기 위한 약이었다는 말이지요.
중국이 고대국가 형태를 띠기 시작한 은(殷)나라 이후 당나라 사람 육우(陸羽·733~804)가 ‘다경(茶經)’을
저술하여 중국 차의 역사와 이론을 처음 정립하기까지의 약 2천여년 동안은 여전히 변방 오랑캐인 소수민족의
약으로서 더 잘 알려져 있었지요.
우리는 육우라는 중국인과 원효(617~686)라는 신라인을 먼저 기억해두고 동양의 차문화 기원을
추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비교 인물이니까요.
그같은 약으로서의 차가 지배계층의 기호 식품이 되고, 불교 승려의 수행을 돕는 신성한 역할을 하게된 것은
지혜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진행된 문화사라 할 수 있겠지요.
중국은 영토가 넓은 만큼 민족의 특성이 다양하여 한 종류의 찻잎으로 약이나 기호식품을 만들었고
그 방법도 다양했습니다.
특히 한문문화의 눈부신 발전과 성현들의 탁월한 깨달음과 학문의 성취는 주변의 한국과 일본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려와 조선 왕조의 경우는 중화사상을 지나치게 숭상하고 의존하는 폐단까지 낳기도 했지요.
불교 또한 주된 흐름이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진 관계로 중국의 지배계층과 승려들이 중요하게
여겨온 차법(茶法)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차문화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차와 차문화가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중국 차문화를 계승했다는 주장은 우리 차의 역사를 잘못 살폈거나 중화사대주의에
함몰 당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한국 현대 차문화의 주류처럼 오인되고 있는 중국 차법과 일본 초암차법(草庵茶法)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렇게 요구하거나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된
것처럼 조작하여 가르치고 있는 점은 크게 비난받고 하루 속히 바로잡아야할 수치일 뿐입니다.
중국 차법은 다만 중국 역사와 전통에 따라 창안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의 차법 또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맥을 지녀왔으며, 조선시대 불교문화는 일본 초암차(草庵茶)의
원류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차례문화(茶禮文化)는 중국의 육우도 모르는 오래된 우리 차문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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