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실에 꽂는 꽃
조선시대 사찰 문화를 근간으로 삼아 성립된 일본 초암차 특징 중의 하나인 꽃꽂이는 다른 특징들과
사뭇 차별화되는 의식입니다.
약 14세기부터 시작된 서원차(書院茶)가 지닌 망국적 폐해를 근원적으로 뜯어고쳐 일본을 회생시키기
위해 창안된 초암차 발전 단계에서 마지막으로 고안된 것이기도 하지요.
초암차는 크게 두 측면에서 시작되었는데, 차실이라는 건축물의 외형과 내부 구조를 포함한 설계와
시공이 한 측면이며, 완성된 차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행다법(行茶法)이 다른 한 측면입니다.
이를 외적 조건과 내적 조건이라는 말로 바꿔보겠습니다.
두 조건은 거의 동시적인 발전 단계를 거치게 되었는데, 외적 조건은 조선시대 서민의 주거시설과
수행자의 토굴, 선비들이 독서와 명상하는데 쓰던 초당(草堂)의 형태와 내부구조에서 대부분
영향받았지요.
내적 조건은 이미 살펴본대로 발우공양법의 특성을 거의 그대로 응용했습니다.
꽃꽂이 의식은 엄밀하게 따진다면 외적 조건 중에서 차실 내부의 장식에 포함됩니다.
실내 장식은 꽃꽂이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는데, 그 종류와 기능 문제는 따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결국 꽃꽂이가 제 자리에 놓여짐으로써 차실의 장식은 완성되었음을 뜻합니다.
이때부터 차를 마시는 의식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다도’의식이 펼쳐지지요.
일본 다도에서 꽃을 꽂는 그릇은 그 소재가 흙이든 유리나 혹은 대나무, 칡덩굴로 만든 것이든 모두
‘꽃병(花入)’이라 부릅니다.
꽃병 재료의 변천 역사도 따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꽃이 등장한 까닭만 간략하게 언급하겠습니다.
꽃병에 꽃을 꽂아 차실을 장식하게 된 것은 1550년 무렵부터였습니다.
그 이전에도 차마시는 자리에 꽃 장식이 등장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갖춰야 하는
의식은 아니었습니다.
몹시 까다롭게 정해져 있는 조건에 맞는 꽃병에다 반드시 한송이의 꽃을 꽂도록 한 것은 1550년 이전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꽃이 한송이어야 한다는 의식의 근원은 조선시대 사찰의 불교의식인 육법공양(六法供養) 중 하나인
헌화(獻花)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육법공양에서 꽃을 올릴 때 꽃의 종류나 수량이 정해져있지는 않습니다.
부처를 공경하는 마음과 생명의 존귀함을 아는 마음이 담겨있기만 하면 꽃의 종류나 수량은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꽃은 두 가지 상징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불교적 의미와 불교 이전부터 형성되어 전해져 온 생명의 원류에 관한 신화로서의 꽃으로 나눠져 있지요.
이 두 가지 의미가 불교 전래 후 불교적 침윤을 거치면서 생명의 고귀함과 부처를 존경하는 종교적 심성의
상징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이같은 의미를 지닌 조선 불교 의식에서의 꽃이 일본 초암차실에서는 한 송이라는 엄격한 불문율 아래서
새로운 상징으로 태어났지요.
간결, 함축이라는 미학체계를 낳은 것입니다.
여러 송이로 장엄하는 조선불교 의식에서 ‘한송이’로 간결화시키면서 꽃이 상징하는 세계도 더욱
함축하여 일본화한 것이지요.
꽃은 피었다가 떨어집니다. 인간도 그러하지요. 한 번 피고, 한 번 떨어지는 꽃의 법문은 곧 인간입니다.
한 송이 꽃을 꽂는 것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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