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꽃병의 선택

썬필이 2019. 9. 6. 11:31

꽃병의 선택

화려한 꽃을 한아름씩 꽂아두는 항아리나 보석 장식을 한 금동 항아리, 청자나 백자 꽃병에다 꽃을 꽂아 차실에 두는

풍습은 일찍부터 있어왔습니다.
서원차실에도 꽃병을 얹어 두는 ‘고시이다(腰板)’라는 자리가 따로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꽃병과 꽃은 화려함과 사치를 더하기 위한 장식이었습니다.
‘다도’의 꽃꽂이는 타케노 쇼오에 의해 전혀 새롭게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다케노 쇼오는 도자기, 그림, 글씨를 존중하여 감상하고 수집, 비평하는 문화를 유행시킨 인물이기도 하지요.

그의 감식 수준은 매우 놀라워서 좋은 차 도구들은 모두 쇼오의 눈빛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였지요.
쇼오는 서원차실을 초암차실로 뜯어 고치면서 문제의 그 ‘고시이다’를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그 대신 작고 소박하게 생긴 꽃병을 얹는 상(床)을 두었는데, 상에는 칠을 전혀 하지 않고 백목(白木) 그대로 둔 채

소박하게 생긴 꽃병을 얹고는 꽃 한송이를 꽂았습니다. 그것이 초암차실의 꽃꽂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꽃꽂이가 유행했지요.

하지만 보통 차인들은 여전히 화려하고 값 비싼 꽃병에다 꽃을 꽂고 차를 마셨습니다.

처음에는 꽃 대신 대나무나 솔가지를 꺾어다 꽂다가 꽃으로 바뀌었는데, 조선을 여행하고 돌아온 일본 승려들에

의하여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초암차 문화를 창안한 선구자들에 의해 기존의 차마시는 문화가 일대 변혁을 거치게 된 것이지요.
그 무렵 조선에서 들여온 선불교의 유행은 초암차실을 소박하면서도 선적인 깊이를 지닌 공간으로

변화시키도록 했지요.

문제는 차 도구를 마련하는 것이었지요.

쇼오는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민의 체취가 느껴지는 생활잡기들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차 도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서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잡기들이었지요.

일본 서민들은 가난할 수 밖에 없으며,가난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지런함, 정직함,

절약 뿐이었지요.

서민의 그런 삶과 꿈이 배어 있는 잡기들을 차도구로 사용하면 차인들도 어느새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인위적으로 꾸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여겼지요.
서민의 삶은 지식으로 가꾸어진 것이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것이며, 본능이란 곧 자연상태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서민의 삶이 투영되고 느껴지는 그릇은 자연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사치와 향락, 비싼 가격과 권위적인 선과 색깔 형태를 지닌 지배층 그릇 대신 서민의 생활잡기가 차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하자 차인들의 의식구조는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실용적이면서도 미적가치를 많이 지닌 생활잡기 속에서 일본의 새로운 미학이 싹튼 것입니다.
차인은 일본 문화를 이끄는 주역이며 이들의 차생활 변화는 일본 지배층에게 곧바로 영향을 끼쳐, 생활잡기를

차도구로 사용하는 문화는 소리없는 혁명이 되어 일본을 변화시켜 갔습니다.
청동, 청자, 백자는 꽃의 자연성을 손상시킨다고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초암차 선구자들은 손수 꽃병을 만들어 썼지요.

대나무를 잘라서 만든 대나무 꽃병, 넝쿨식물의 줄기를 이용하여 만든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같은 꽃과 꽃병 문화의 원류는 모두 청빈한 조선 사찰 수행자와 조선 서민들의 생활 언저리에서

발견해낸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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