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초암의 조건

썬필이 2019. 9. 6. 20:18

초암의 조건

정책적 억압 아래서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한 사찰과 승려들의 궁핍하고 소외된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토굴(土窟)’입니다.

토굴이란 땅굴을 파고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집처럼 꾸민 시설이나 움집을 말하지요.
불교 탄압이 극심했던 때에는 토굴을 파거나 움집을 짓고 살았던 수행자들이 많았습니다.

정책적 소외와 탄압으로 사찰 살림이 매우 어렵게 되자 승려들은 의식주를 극도로 절제하면서 오직 수행에만

전념했는데, 겨우 비바람이나 추위를 막기만 하면 되는 원시적 시설이었지요.

그 이후 절집 문화에서 토굴이라 하면 목숨 걸고 수행에 정진하여 존경받는 수행자의 청빈하고 검소한 삶을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토굴, 움집, 귀틀집으로 대변되는 청빈한 수행자가 거처하는 작고 소박한 집과 사림(士林)으로 불리는 산림처사

(山林處士)로서의 선비들이 검소와 청빈의 덕을 닦는 수양처로서 독서하고 차 마시는 초당(草堂)의 구조가

일본 쇼안(草庵)의 구조에 직접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서민들의 소박한 살림집인 초가(草家) 또한 앞에서 살펴본 두 경우와 닮은 데가 많습니다.

서민의 초가는 가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강물같은 마음씨가 녹아 스며들어 있습니다.

무엇이든 억지로 꾸미지 않고 된대로 살면서 자연과 한몸이 되어 사는 또 하나의 자연입니다.
이런 집들은 저마다 크기와 모양이 각각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둥을 포함한 목재 대부분이 소나무이며, 소나무의 껍질만 벗길 뿐 굽거나 휘어진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요.

소나무는 송진이 들어 있어서 좀 벌레로부터 상하지 않으며 빗물에도 오래 견디면서 은은한 송진 향내를 풍기지요.
기둥이나 서까래의 휘어진 굴곡은 자연스런 곡선미를 통하여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꿈틀거리는 생명의 운동과 팽창의 리듬이 지각됩니다.

굴곡진 소나무를 그대로 건축 자재로 사용하는 것은 어떤 제한된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한국인의 고유한

인식태도가 반영된 것입니다.
사물을 결정론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사물에 대하여 항상 자신을 불확실한 상태로 남겨두려는

사고 방식이 낳은 건축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거나 인간의 지식을 드러내거나, 자신이 만든 조형물 속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려는 의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순수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지요.
굽이굽이 다양한 그 자연스러움은 굳이 인간의 꾸밈의 맛을 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움이자

불변의 힘입니다.
이같은 사고 방식은 결국 인위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꾸밈없는 여유와 꾸밈없으면서도 뭔가 더 크고

심오한 것을 담게 됩니다.

이리 저리 휘어지고 굽은 소나무 기둥과 서까래의 조형적 분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곡선의 힘은, 초암차의 상징인

일본의 국보차실(國寶茶室)인 ‘다이얀(待庵)’의 건축 방법에서 응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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