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난 누가 책임질까? 노후준비 지금 바로 해야 할 이유 -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42)
아주 오래된 친구가 은퇴설계에 대해 컨설팅해 달라고 왔습니다.
“짧으면 3년, 길면 5년 후면 은퇴해야 하는데, 나 이 정도면 괜찮은 거야?” 또래 친구들보다 부동산도
좀 있고 은퇴 준비도 어느 정도 한 상황에서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떤 계획이 필요하고 자산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친구와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돈에서 삶으로 화제를 옮겨 가며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유쾌한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아직 은퇴준비를 안 하는 것일까.’
그렇게 닦달했는데 노후준비는 낙제점
우리나라에서 은퇴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부터입니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은퇴하고 2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말인데, 돈·건강·관계 등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대충 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이런 말로 언론은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주었고 금융기관은 공포마케팅을 했습니다.
그런데 20년도 안 된 지금 우리는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고, 1차 은퇴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의 노후 준비는 낙제점입니다.
마음이 동해야 몸이 움직이는데 은퇴준비를 해야 할 40~50대에게 은퇴·노후는 아직 먼 미래의 일,
남의 일입니다.자녀교육문제, 주택문제, 창업, 이직, 대출상환 등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서
은퇴준비는 사치로 다가옵니다.
그러다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상황에 닥치게 되죠.
그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은 은퇴준비에 손을 놓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공통적인 심리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주의입니다.
무언가 근거를 가지고 있는 합리적인 낙관주의가 아니라 문제와 고민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낙관주의입니다.
이런 낙관주의는 늘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은퇴 준비로 애들 교육비 줄일 수 없는데 고민하면 뭐해. 어떻게 되겠지’, ‘당장 대출 갚기도 벅찬데,
10년 뒤 생각할 여유가 어딨어. 대출 다 갚고 나서 생각하면 돼.
’ 이런 생각이 은퇴준비를 우선순위에서 몰아내고 언젠가 상황이 되면 하면 되는 것으로 만들고 맙니다.
두 번째는 공포마케팅과 준비할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뭐 어쩌라고’ 하면서 포기하는 마음입니다.
은퇴 후 30년을 살려면 10억원이 있어야 한다,
20억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 생각이 안 납니다.
한 달에 50만원도 저축하기도 힘들고 그걸 20년을 모아야 1억원 좀 넘는 게 현실입니다.
10억원, 20억원 하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만두만 먹고 살아도 6억원이 넘게 든다,
자장면만 먹고 살아도 10억원이 넘게 든다는 얘기를 들으면 경각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그냥 포기하게 됩니다.
세 번째, 자녀들에 대한 은근하고 막연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투자수익률이 가장 낮은 투자, 성과를 기대하면 안 되는 투자, 오로지 비용으로 생각해야 할 돈이
바로 자녀 교육비입니다.
부모가 이성적으로, 머리로는 이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그래도 내 아들은, 그래도 우리 딸은 용돈은 좀 줄 거야’,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자녀들도 용돈을 주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능력을 갖추기가 힘든 현실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60년이 넘게 성장을 지속해온
사회를 살아온 우리와 달리 우리 자녀는 저성장, 고령화,
인구감소 등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규정하는 사회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없어 부모를 부양하거나 용돈을 주기 힘든 세대라는 것이죠.
어쨌든 자녀들에 대한 은근한 기대와 의존이 은퇴준비를 해야 하는 절박함을 약화합니다.
이런 세 가지 마음이 만들어내는 ‘은퇴 준비 없음’이 갑자기 다가오는 ‘퇴직’과 만나면 정말 골치 아픈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는 ‘2019 미래에셋 은퇴라이프 트렌드 조사보고서’에서 퇴직자의 65.9%는
갑작스럽게, 예상하지 못했거나 예상했던 시기보다 빨리 퇴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구체적인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맞이하게 되는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의 퇴직’은 고민과
기약 없는 재취업으로 이어지고 노후 불안과 불행으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퇴직은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요, 예상하지 않은 것일까요.
당하는 자신은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옆에서 보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입니다.
퇴직도 노후도 예정된 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단지 눈 감고 귀 막고 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결과가 참 무섭습니다. 궁금하다면 우리보다 조금 더 일찍 초고령 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을 보면 무서운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책『장수의 악몽, 노후파산』은 병원에 갈 돈도 없는 노인, 부모를 돌보다 파산한 자녀, 무너진 가정 등
무서운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미래의 나를 타인으로 생각하는 뇌
심리학에 따르면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 뇌의 내측 전두엽이 밝아지고 타인을
생각할 때는 어두워집니다. 미래의 나, 은퇴한 이후의 나를 생각할 때는 내측 전두엽이 밝아질까요,
어두워질까요. 미래의 나를 생각할 때도 내측 전두엽은 타인을 생각할 때와 같은 상황이 됩니다.
우리 뇌는 미래의 나를 타인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은퇴를 준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은퇴한 자신을 타인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누가 타인을 위해 자녀의 교육을 포기하고, 현실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겠습니까.
어쩌면 은퇴준비의 핵심은 ‘미래의 나’를 ‘자신’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상상하라’는 말은 성공학 교과서에 주로 나오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위험을 예측할 때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은퇴한 미래의 나를 ‘자신’으로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느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2019년 5월 현재부터 시작해 1년, 3년, 5년,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그려보면 어떤 모습인가요. 2040년이 되면 나이는 몇 살이 되나요.
그때 몸 상태는 어떨까요. 그때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어디서 살고 있을까요.
아이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고 배우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상상할 수 있는 한 최고로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미래의 나, 은퇴한 후의 나,
나이가 든 나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지금 아이에게 교육비 투자를 하는 것과 20년 뒤 아무 부담 없이 자기 인생을 살도록
하는 것 중 어느 게 아이를 위한 것인지 조금 더 명확할 수 있고, 조금 더 이성적일 수 있고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모두 똑같은 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래의 나를 타인으로 인식하는 상태에서는 효과적인 은퇴설계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지혜로운 선택을 위해, 회피와 포기에 이은 위험에 처하지 않기 위해 오늘 진지하게
미래의 나, 은퇴한 나, 타인이 아닌 나의 모습을 그려보기를 권합니다.
'경제.금융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을 아시나요? 헬조선·이생망·욜로의 공통점은 (0) | 2019.09.12 |
---|---|
기생충·돈·알라딘…부자 꿈꾸는 당신, 지니를 기다리나요 (0) | 2019.09.11 |
"돈 속성을 알아야"···4000억대 자산가의 부자되는 법 (0) | 2019.09.09 |
"돈은 돌고 돌지 않고 갈만한 곳에 간다" (0) | 2019.09.08 |
투자 편향성 극복하는 법 (0) | 2019.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