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예가

八木一夫 가쓰오 야기(Kazuo YAGI , 1918-1979)

썬필이 2019. 10. 4. 12:05

八木一夫 가쓰오 야기(Kazuo YAGI , 1918-1979)

1918年 陶芸家・八木一艸の長男として京都市に生まれる
1937年 京都市立美術工芸学校彫刻科を卒業
1947年 『青年作陶家集団』の趣意書を発表する
1948年 鈴木治、山田光、松井美介、叶哲夫とともに「走泥社」を結成する
1957年 京都市美術大学(現・京都市立芸術大学)彫刻科の非常勤講師となる  この年初めて黒陶作品の制作を始める
1969年 『八木一夫作品集』(求龍堂)が出版される
1972年 東京伊勢丹で「八木一夫個展」が開催され、本のシリーズを発表する
1978年 パリのグラン・パレで開催の「FICA78」にて「八木一夫陶彫展」と題し
    作品「Haiku I ~XI」を陳列、高評を博す。 東京伊勢丹で「還暦記念八木一夫展」が開催される
1979年 心不全のため死去

八木一夫 作家

가쓰오 야기는 1918년 기후현에서 도예가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리고 16세 되던 해에 오사카로 이주했는 데, 그곳의 고등학교에서는 예술적 재능을 보여주지 못했고, 특히 그림을 못그려서

그것을 보강하고 3차원적 모델링 개념을 개발하기 위해 쿄토시립 예술학교에서 조각을 시작했다.

하지만 가쯔오 야기는 학과에서 항상 마지막이었고 졸업도 최하위로 했다.

졸업 후 가쓰오 야기는 대만에 있는 일본정부 산업상공부 도자시험소에 들어갔는 데, 매우 운이 좋게 그곳에서 로뎅과 같이 일을 하던 누마타를 만나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전시회를 1939년에 가졌는 데, 아무도 오지않는 완벽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낙담한 21살의 청년은 불행히도 폐렴에 걸리게 되고 대만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알루미늄으로 되어있는 병원에서 힘든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도자기를 굽는 가마에서 그릇만드는 것을 보게되었다.

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가쯔오 야기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 후 흙과의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1946년 전쟁이 끝나고 재활도 마치자, 그는 처음 일본에서 동네의 도자기 강좌에 등록해서 도예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이것이 일본 도예계에 “흙을 밟는 모임”을 만들고 일본도예계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된다.

가쯔오 야기는 1948년에 시작되어  일본도예계에 혁신적을 일으킨 소데이샤 그룹의 대변인이었고 그룹활동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작품을 만들 때는 기능성이나 예술성을 염두에 두지않은  “오브제”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지만,  Joan Miro나 Paul Klee같은

표현주의 서양화가의 미학적인 면을 일본의 기형에 잘 주입시켰다.

이런 그의 작품의 미적인 특징의 근본은 전통을 보존하는 것이지만, 보여지는 미래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가쓰오 야기의 작품은 오히려 중국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를 준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일본의 전통문화를 계승해서 발전시키는 것이지만, 일본의 인간문화재 선정과는 무관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노년에는 손가락에 류마치스가 생겨서 젓가락을 잡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작품을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1979년 2월의 마지막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Reference::  kotobank.jp, 동경문화재연구소[tobunken.go.jp]  The Japan Times
작품보기





 " lion bowl "   D14.4cm














cup,   1950

1950년대 기하학적 문양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거꾸로된 모양의 화병

alphabet stamped white-slip vessel, W16xH14.6cm, ca.1970-75


black globe vase, ca.1960 H32cm

Vase, ca.1960  $8,750 (Christie’s auction, 2011.03.23) underglaze white slip, 투명유약,  W16.3 H15.3cm

'spring cat' water jar  ca.1960

2-sided open flat jar,  H22.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