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예가

杉浦康益 수기우라 야수요쉬 (Sugiura Yasuyoshi, 1949- )

썬필이 2019. 10. 2. 00:07

杉浦康益 수기우라 야수요쉬 (Sugiura Yasuyoshi, 1949- )

1949年 東京・葛飾に生まれる
1975年 東京藝術大学大学院陶芸専攻修了
1977年 日本陶芸展入選
1978年 日本国際陶芸展(大丸)
1982年 現代日本陶芸展(国際交流基金主催、イタリア巡回)
1984年 神奈川県足柄下郡真鶴町に築窯 , びわこ現代彫刻展「陶による岩の群」出品
1985年 第4回ヘンリー・ムーア大賞展
1994年 個展(かねこ・あーとギャラリー)で「陶の木立」を出品, 「陶の木立 林間—有機空間」(愛知県立陶磁資料館)
1995年 個展(寛土里)で彩文の器を出品
1997年 「杉浦康益 陶の岩・陶の木立」(キリン横浜ビアビレッジ)
2000年 個展(日本橋三越)で木の実や静物などを,モチーフにしたオブジェを出品
2005年 「陶による大地の恵みを謳う 自然の息吹とかたち」(神奈川県民ホールギャラリー)
2006年 「陶の植物園」(智美術館)「風のスクリーン」(越後妻有アートトリエンナーレ)
2007年 第14回日本現代藝術振興賞(日本文化芸術財団)
2009年 「風の砦」(越後妻有アートトリエンナーレ)
2012年 「西アフリカ逍遙」(寛土里)

杉浦康益 作家

수기우라 야수요쉬는 고등학교까지는 흙과는 관계가 없었다.
그리고 아직 무엇을 할지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데, 예술대학을 진학하면 4년의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대학진학을 마음먹었다.

그리고 동경대학 미술대학에 진학했는 데, 본인은 가장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진학했다고 하지만, 일본에서 가장 입학이 힘든 미술대학이다.

그런데 첫번째 입시에서 떨어지고 두번째 시험을 준비하던 중 토쿄의 비젠전시회를 둘러 본 것이 현재의 일을 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입학이 허가된 후, 등록하기 전에 담당교수에게 부탁해서, 장작가마에서 도자기 굽는 곳에 보내달라고 해서 1달넘게 일을 배울 기회를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1달내내 장작만 패고 흙나르는 잡일만 하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입학하고 보니 토쿄예술대학에는 장작가마는 없고 오직 개스나 전기가마만 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흙의 종류도 단순해서, 최고의 학부학생들이라고 자부하는 자신들이 만드는 것에 대한 고뇌가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매우 재능이 많은 학생들은 물레를 가지고 기능성 도자기를 만드는 것에 만족해하고 있었지만 수기우라 자신은 이 문제를 가지고 갈등하고 있었다.

그는 물레를 눈을 감고 손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무엇인가 만들 수 있는 것이고, 반대로 움직임이 조금만 거칠면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것이 물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물레의 특성을 너무 겁내했다.

수기우라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을때 교수중 한 사람이 그에게 와서 말했다.

"수기우라, 도자기는 돌과 같은 물체이다." 그리고 둥근 두꺼운 보울 하나를 땅에 내려쳐서 반으로 깨뜨렸다. 안에 보이는 것은 돌이 반으로 갈라진 것이었다.

정말 기묘하게도 나는 흙으로 돌을 구어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돌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매우 기뻤다.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해서 당시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

당시 생각에 모든 용기는 만든 목적이 있지만, 돌은 목적이 없기 때문에 수기우라는 물레로 그릇을 만들 수 없었다.

당시에는 가쯔오 야기의 작품이 도예계에 상당한 충격을 일으키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는 가쯔오 야기의 작품을 모방해서 몇 개를 만들었는데, 감정이 흙에 너무 쏟아지다 보니 너무 미성숙하고 보기에 너무 조악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오브제 자체는 '나' 자신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를 만들어 보았지만 마음속에 갈등만 더 생겼다.

그리고 생각한 것은 만일 돌맹이가 침묵하는 것이라면 수기우라는 그 안에서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한 개의 작은 돌맹이가 어떤 것이 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많이 모이면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수백개의 작은 돌맹이를 만들었고 그것을 출품했는 데, 수상을 했다고 한다.

수기우라는 농담으로 만일 자기가 1만개의 작은 돌맹이를 만들었다면 그랑프리상을 수상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해바라기 씨와 같이 작은 돌맹이를 만드는 작업이나 꽃잎이나 꽃술 같은 작고 정교한 것을 많이 만들어 화려한 꽃을 만드는 그만의 특유한 도예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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