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암차실 - 작은 문 안의 큰 세계
차실의 좁은 문(높이 90㎝정도)은 심오한 미학 세계를 지녔습니다.
손님은 묵묵히 거룩한 곳에 다가간다고 믿는 것입니다.
무사는 차고 있던 칼집을 벗어 처마 밑 칼을 걸어두는 자리에다 걸어 놓고 맨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차실은 지극한 평화가 깃든 곳이기 때문이지요.
손님은 천천히 몸을 낮추어 구부리고 높이 3피트쯤 되는 입구를 지나 차실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모든 손님에게 신분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깨닫게 하며,겸양의 미덕을 가르치기 위해서지요.
대합실과 차실을 잇는 정원인 노지(露地)의 풍경을 차실에 앉아서 그윽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매월당의 차시(茶詩)에서 확인되는 풍경과 퍽 닮았습니다.
매월당이 머물고 있는 암자의 방문이나 창을 열면 밖에 펼쳐진 사계절 밤낮의 자연 풍광을 방안으로 모셔
들이듯 감상했던 그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작은 문을 초암차의 세계와 세속과의 단절을 상징하는 경계로 응용했듯이, 이 좁은 문과 차실 사이에
인위적으로 꾸민 정원 풍경을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응용한 것이지요.
청동꽃병이나 청자 꽃병 대신에 잡기류 속에서 발견해 낸 무덤덤하고 소박한 질그릇이나 대나무, 칡덩굴 같은
식물 줄기로 엮은 바구니 등을 꽃병으로 대체했습니다.
흙, 나무로만 꾸며진 차실 분위기를 더욱 더 깊은 고요와 온화함을 살려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꽃 한송이를 꺾어다 꽂는 의식은 좀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불교 의식에서 말하는 육법공양 (六法供養)의 하나인 헌화의식을 차실의 미학을 위해 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차도구는 겉으로 드러난 완전함, 화려함 보다는 드러나지 않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지닌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부족해 보이거나 흠집이 난 것이라도 거리낌없이 썼습니다.
금이 가고 틈이 벌어지기도 한 그릇에서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불균형 속의 균형, 불완전 속의 완전을 보려고 한 센노리큐의 마음은 인위적인 형식미와 완전미가 지닌
허구를 꿰뚫어 본 것이지요. 그의 눈에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그릇은 바로 이도차완이었습니다.
이도차완은 그가 꿈꾸었던 초암차를 완성시켜주는 마지막 조건이었던 것이지요.
차를 마시는 일은 도를 추구하는 마음을 지니고 행하는 수행이므로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다도를 행합니다.
이것은 석가모니의 깨달음과 일맥상통하는 길이라고 믿었지요. 그 믿음을 짧은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다도를 통한 깨달음을 노래한 대표적인 와카는 센노리큐가 늘 가까이 두고 차를 마실 때마다
향을 피우곤 했던 고요노(此世) 향로를 주제로 한 노래입니다.
고요노 향로에 헌정된 이 와카는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가 있다’는
인연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와카를 차도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은 센노리큐 대에 와서 자리잡게 된 새로운 흐름이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흐름 또한 조선 차인들이 차를 주제로 하여 수없이 써서 남긴 차시에 근원을
두고 있는 듯 싶습니다.
선승(禪僧)들의 차시들이 지니고 있는 심오한 자연관은 그대로 깨달음의 노래인 오도송(悟道頌)이지요.
센노리큐가 완성한 일본 초암차의 차실 구조는 조선의 암자, 서민의 초가, 선비들의 초당 구조를
기원으로 삼아 일본 특유의 미학적 감성으로 응용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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