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암차실 - 독참방
센노리큐는 히데요시가 지휘하는 야마자끼(山崎) 전투, 큐슈(九州) 정벌, 오다하라(小田原) 전투 등 전쟁터까지
따라 다니면서 차도를 말하고 차회를 열어 사무라이들의 거칠어진 마음을 차로 다스렸습니다.
‘주옥의 소우주’라는 찬사를 들어온 다이얀(待庵)은 야마자키 전투가 한창일 때 히데요시의 휴식 장소로서
센노리큐가 세운 것입니다.
방이 좁으면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아서 격렬한 전투 중일때라도 잠시 이곳에 와 앉아서 차를 마시면 마음이
고요해지기 때문에 전투를 효과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좁고 단순한 초암차실의 위력이 현실로 입증된 셈이지요.
실제로 센노리큐는 히데요시로부터 차도를 가르쳐 달라는 소식을 듣고나서 보낸 편지에 쓰기를 “초옥(草屋)의
작은 차실이 아니라면 진실한 와비차의 마음은 지닐 수가 없습니다. 아침 저녁을 가리지 말고 귀하가 몸소
연구하여 터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국보(國寶)로 지정되어 일명 국보차실(國寶茶室)로도 부르는 다이얀(待庵)의 그 2첩의
좁은 방 구조는 일본 건축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것입니다.
낮은 천장, 사방이 흙벽으로 둘러쳐진 폐쇄적인 이 차실은 분명 고온다습한 일본 기후와는 맞지 않은
구조인데도 히데요시는 중요한 전투의 승리를 위해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작전을 구상했습니다.
이 작은 차실에 앉아 명상에 잠기면 신선한 영감이 떠오르면서 정신력이 커지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센노리큐가 어떻게 이같은 작은 차실을 구상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초암과 초암차의 기원을 조선시대 사찰과 서민들의 살림집, 선비들의 초당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면,
다이얀의 2첩 차실은 조선시대 사찰에 있던 ‘독참방(獨參房)’과 매우 닮은 구조입니다.
독참(獨參)이란 화두(話頭) 수행자가 어떤 깨달음의 경지나 수행중에 생긴 의심을 묻기 위해 방장과 조실
둘이서만 만나 선문답(禪問答)을 벌이는 것입니다.
그때 두 사람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 쳐지고 오직 출입문 하나만 달려 있는 독참방으로 들어가서 목숨을 건
선문답을 주고 받습니다.
작고 어두운 방 안에는 죽비, 몽둥이 등이 갖추어져 있는데 생사를 걸고 질문을 던지면 집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소리로 답을 하고, 또 묻고 답하는 마치 사생결단 결투를 벌이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오래 끌기도 하고 간단하게 끝날 때도 있지요.
다이얀의 2첩 방과 조선 사찰의 독참방은 여러 가지로 많이 닮았습니다.
차실 안벽에 바른 흙, 흙에 짚을 썰어 넣어 벽이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는 점, 집의 뼈대 부분이 드러나
보이도록 흙벽을 처리한 것, 낮은 천장 등은 조선 서민의 초가집이나 초당, 초암을 짓는 방법과 동일합니다.
조선의 초가집, 초당, 초암의 주요 건축 재료가 목재 중에서도 소나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실이나 짚을
썰어 넣어서 짓이긴 흙, 짚지붕, 창문이 거의 없는 폐쇄적인 벽, 낮고 좁은 방문을 달게 된 것은 기후
조건과의 조화 때문이었지요.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을 보이는 온대 기후 조건 아래서 겨울철의 난방 효과를 높이고 여름철 무더위와
습기를 막기 위해 나무와 흙을 주요 건축 재료로 사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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