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초암차실 - 작은 문

썬필이 2020. 3. 6. 16:18

초암차실  - 작은 문

흙벽이 지닌 훌륭한 통기성(通氣性)은 초가만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서민들은 대개 자식을 많이 두었지요.

그런데도 오막살이의 방은 작게 만들었습니다. 비좁은 방안에서 식구들은 맨살을 맞대고 비비며 살지요.
목욕시설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빨래도 쉽지 않아서 비좁게 사는 방안에는 악취를 풍깁니다.

겨울철엔 식사도 방안에서 하기 때문에 협소한 공간은 온갖 냄새로 꽉 찰 수 밖에 없지요.

거기에다 어른들은 담뱃대에다 담배를 많이 피워서 담배 연기도 대단하지요.
그런데도 방안에는 그다지 악취가 심하게 나지는 않습니다. 흙벽이 악취를 흡수해버리기 때문이지요.

장마철에도 흙벽이 습기를 조절하기 때문에 방안은 항상 쾌적합니다.

흙벽이 지닌 이같은 특성을 차실에서 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차실을 지으면서 소나무를 주요 재료로 사용한 점도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일본 건축의 주요 목재는 곧게 자란 노송나무와 삼나무입니다.
차실 안 땅화로가 있는 구석과 꽃병을 얹어 두는 자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천장을 떠받치며 세워져 있는

구불구불하게 휜 소나무 기둥은 단연 이채롭습니다.

인위적 가공없이 생긴 그대로의 곡선을 살려서 사용하고 있는 점은 조선 서민들의 오막살이 집 기둥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조선 서민들이 초가를 지을 때 쓰는 소나무의 곡선은 곧 조선사람의 여유와 멋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자연 그대로의 꾸밈없는 여유, 꾸미지 않고서도 무언가 더 크고 심오한 것을 담을 수 있는

사고방식이기도 하지요.
조선솔이 지닌 곡선의 힘과 꾸미지 않은 소박미를 차실 안으로 끌어들여서 와비차의 세계를

심화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차실 지붕을 짚이나 갈대로 인것도 일본의 전통적인 건축법과는 다릅니다.

특히 눈여겨 봐야할 것은 차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달린 좁고 작은 문입니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몸을 잔뜩 구부려서 손으로 문턱을 짚어야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의 형태도 일본 건축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두칸 짜리 조선 오막살이나 궁핍한 절의 귀틀집 또는 토굴 암자의 방문과 매우 닮았습니다.
이렇게 방문을 작게 한 이유는 추운 겨울철의 난방을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낮고 작은 방문을 드나들어보면 이마를 자주 문틀에 부딪히기도 하지요.
몹시 불편한 구조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형태의 문을 초암차실의 출입문으로 응용한 것은 초암차 특유의

미학 세계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센노리큐가 완성한 초암차 정신은 차 마시는 일을 통하여 이상적인 정신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 차를 내는 쪽은 차를 마시는 손님이 편안하도록 마음을 써야하고, 손님은 가벼운 마음으로

차에 담긴 정신을 느껴야 합니다.
센노리큐는 이 낮고 비좁은 문을 ‘린구’라 이름 붙였는데, 이 출입구를 기준으로 세속의 세계와 세속을 떠난

초암차실 와비의 세계로 나누는 절묘한 착안을 해냈습니다.

이는 마치 사찰의 일주문(一株門)이 지닌 종교적 의미와도 유사한 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