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리 백자
금사리는 경기도 광주군 금사리(金沙里)의 이름이다. 이곳에 있던 백자 가마에서 구워진
도자기를 금사리 백자라고 한다.
경기도 광주일대에 설치된 사옹원의 지방 분원은 대개 10년 단위로 광주 일대의
이곳저곳을 이동했다.
그리고 1751년이 되면 이 분원(分院)은 광주군 분원리에 정착하게 되는데 금사리는 바로
분원리로 정착하기 직전에 자리 잡았던 가마터이다.
최근의 연구를 보면 금사리 가마는 1726년에서 1752년(분원리 정착)까지 운영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사리 가마터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운영되었지만 후대에 오랫동안 기억될 명품 도자기를
다수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것으로 순백으로 둥글게 항아리를 빗은 달 항아리이다. 또 청화 안료로 들풀 문양을
간략하게 넣은 추초(秋草) 문양도 이곳만의 특징이다.
금사리 가마에서 구워진 백자는 약간 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유백색을 띠는데 이 역시
여느 백자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백토 산지
백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질 좋은 백토가 필수적이다.
좋은 백토란 화도가 높고 점성이 높은 흙을 가리킨다.
화도가 높다는 것은 불에 견디는 세기를 가리키는데 화도가 낮은 흙으로 빗은 도자기를 높은
온도로 구우면 가마 속에서 주저 않아 버린다.
또 점성이 높다는 것은 높은 온도에 견디면서도 서로를 끌어당겨 형태를 잘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질 좋은 백토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 기울였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최상급 백토가 나온 곳으로 황해도 봉산, 평안도 선천, 강원도 양구
3곳이 꼽혔다.
그리고 그 다음 수준의 곳으로 경기도 광주, 하동, 서산, 진양, 경주가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백성들이 농사일을 제쳐두고 백토 채굴에 나서야만 하기 때문에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내용이 여러 곳에 실려 있다.
대개 백토는 산 정상에 바위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이를 캐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조선후기 분원에 백토를 대주었던 강원도 양구의 경우, 보다 못한 현감이 백성들 편에 서서
백토채굴 명령을 중단해줄 것을 상소한 글을 여러 번 올렸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