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호 白磁壺 높이 37cm : 2006년4월26 서울옥션 제101회 미술품경매(No.120)
추정가 1억8천만-2억5천만원
부드러운 백색이 눈길을 사로잡는 항아리입니다.
조선시대 흰 백자라고 해도 실은 좀 더 엄격하게 보면 색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어딘가 눈처럼 희게 보이는 백색이 있는가 하면 조금 노르스름한 빛이 도는 듯이 보이는 백색도 있습니다.
그 외에 회백색, 청백색을 꼽기도 합니다.
특히 눈처럼 보이는 것이나 젖의 색처럼 약간 노르스름하게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설(雪)백색
그리고 유(乳)백색이라고 합니다.
설백색이나 유백색이란 모두 백토에 섞인 철분 등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색입니다.
그 위에 유약의 투명도와도 관련됩니다.
그래서 색에 따라 산지를 구별하거나 시대를 나누기도 합니다.
흔히 유백색의 백자에 대해서는 분원 정착 이전의 시기라고 말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그리고 설백색은 그 시대를 올려 잡기도 합니다.
이는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지 반드시 획일적으로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부드러운 색감을 보이는 이 항아리의 실물은 약간 노른 기미가 보이는 쪽입니다.
그래서 분원설치 이전으로 보는데 그 위에 어깨의 선이 재차 시대 판단의 자료를 제공해줍니다.
앞서 소개한 백자항아리(119회 No.20)에 비해 어깨가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는 것이 확연합니다.
그래서인지 몸통에서 굽으로 흐르는 곡선이 앞쪽은 날렵해 보이는 반면 이쪽은 보다 순순합니다.
그 위에 굽의 접지면도 밖으로 살짝 벌어지는 이른바 외반(外反)과는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아래로
수렴(收斂)됐습니다.
이렇게 밖에서 보이지 않는 굽의 경우는 안쪽 속을 파내 민바닥을 피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는 대체로 18세기 이전의 제작된 도자기에 보이는 특징입니다.
또 구연부가 낮아 보이는 것 역시 더 이른 시대에 보이는 현상입니다.
이 선생은 이를 통해 이 항아리에 대해 17세기 후반의 제작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시대적 요소와는 별개로 이 항아리의 안정감은 발군입니다.
중앙보다 약간 위에 놓인 어깨의 위치, 구연부 아래에서 어깨에 이르는 넉넉한 선 그리고 어깨를 지나 굽으로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말려들어간 선은 항아리 전체의 인상을 느긋하고 안온(安穩)한 분위기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이 항아리는 그 외 눈여겨볼만한 것으로 소장 이력이 있습니다.
소위 일본의 인간국보 제1호로 불리는 도예가 하마다 쇼지(浜田庄司 1894-1978)의 구장품이란 점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약4년에 걸쳐 선배 도예가와 함께 교토시립도예시험장에서 2만여 건에 이르는 유약시험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때 그는 도자기를 포함해 조선 공예에 깊이 매료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을 만나 단숨에
그의 민예운동에 참가했습니다.
그후 이 민예운동에 동참하고 있던 영국인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 1887-1979)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가마를 만들어 활동하며 런던에서 개인전을 열어 큰 호평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귀국 후 그의 성공의 발판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와 한때 함께 활동한 버나드 리치도 근사한 백자항아리 하나를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영국에서의 활동을 접고 다시 일본에 와 1년여를 머무르며 일본 민예관을 설립을 도왔습니다.
이때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면서 조선에 들러 백자항아리를 구해 가지고 간 것입니다.
그가 손에 넣은 것은 둥글게 생긴 전형적인 금사리 백자항아리로서 오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운치 있는 항아리입니다.
이 항아리는 그 후 그에게 민예적 도예를 지도 받은 오스트리아 도예가 루시 리(Lucie Rie 1902-1995)에
전해졌다가 1999년에 런던의 영국박물관에 기증됐습니다.
이로 보면 민예운동에 나란히 몸담았던 영국과 일본의 두 도예가가 조선의 백자항아리 하나씩을 간직하면서
자신들의 작업에 있어 어느 한 때 양식(糧食)내지는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았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마다 쇼지는 야나기 무네요시가 죽은 뒤 조선민예관의 제2대 관장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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