덖음과 증제차로 구분해 품평 - 제다이론과 현장경험 품평한 품평위원 필요 -
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최성민 :2019.09.21l :차와문화
대한민국차품질평가기준안 전국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하동 보성 제주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지난 18일 하동녹차연구소에서 개최된 공청회에 발표를 한 최성민 남도정통제다 다도보존연구소
소장의 발표문을 싣는다.
1. 한국차 품평기준 설정의 전제, 한국차 정체성 규명과 제다의 지침 역할 해야
한국차 품평기준 설정은 한국차가 과연 무엇인가? 한국 차를 왜 마셔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
즉 한국 차의 정체성 규명 도출에 일차적 목적을 두어야 한다.
한국차의 정체성 규명은 곧 그러한 정체성의 차를 만들어내야 하는 한국차 제다의 문제로 귀결된다.
예컨대 한국 녹차 품평의 경우, 한국 녹차의 색, 향, 미味는 어떤 목적과 이유에서 어떠해야 하며, 그런 녹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화후 조절이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답을 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 덖음 녹차의 질을 망가뜨리는 ‘구증구포’와 같은 무지한 적폐적 선동이 청산돼 한국차의
정체성과 제다법의 혼란이 정리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차의 정체성이란 차 일반에 해당되는 보편적 정체성이 있겠고, 한국의 풍토에 따른 한국 차나무의
생태 및 한국의 정서와 문화적 환경에 따른 특유의 인문·문화적 정체성이 있을 수 있다.
한국차는 녹차의 경우 차 일반의 정체성(심신건강음료) 및 한국차 특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갖는다.
한국차 특유의 문화적 정체성은 온대 소엽종 찻잎으로 만든 덖음 녹차 특유의 테아닌 성분이 카페인과 함께
발휘하는 다도 수양 기능이다. 따라서 한국차의 정체성은 이 둘을 융합한 ‘심신건강수양음료’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차의 효용을 ‘기호음료’와 ‘건강음료’로 구분하기도 한다.
기호음료란 차의 향과 맛이 주는 감각적 호감을 일컫는 말이며, 건강음료란 차의 성분이 인체의 건강 유지에
발휘하는 효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차의 향과 맛 역시 차의 성분이 결정짓는 것이고, 차향과 차맛이 좋다는 것은 차의 성분이 유효 적절히
발휘되는 상태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호음료’ 기능은 ‘건강음료’ 기능에 포함된다.
차를 기호음료라고 하면 단순히 ‘구미를 채워주는 음료’ 정도로 인식케 하여 차의 월등한 건강기능 효능을
폄훼함으로써 차를 수많은 기호음료들의 반열에 추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차가 커피 등 일반 기호음료의 홍수 속에서 사양화의 길을 헤매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한국차를
기호음료의 반열에서 구출해내어 한국차의 정체성을 기호음료성을 포함한 심신건강성 및 초의와 한재 이목
선생 등이 추구한 ‘정신 수양’의 기능을 더하여 ‘심신건강수양음료’라고 해야 한다.
차의 정신 수양 기능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은 차의 역사와 더불어 동반돼 오며 선현들의 검증을 통해 다른
식음료가 갖추지 못한 탁월한 차별성이자 차문화의 핵심요소로 판명되었다.
이는 최근에 차의 성분인 테아닌과 카페인에 의한 기능임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특히 한국차(녹차) 특유의 정신수양 기능은 한국차가 테아닌 성분이 풍부한 온대 소엽종 차나무를 적절히 열을
가해(카페인 성분 보전) 덖음(또는 증제) 제다한 녹차인 때문으로 밝혀지고 있다.
2. 한국 덖음(증제) 녹차의 품평 기준에 대하여
차 일반의 정체성이 ‘심신건강음료’라는 점과 여기에 ‘정신 수양’ 기능이 더해진 것이 한국차의 정체성
(심신건강수양음료)이라고 할 때, 한국 덖음(증제) 녹차야 말로 그런 기능을 발휘하는 성분을 가장 적절히
지닌 차이다. 한재 이목과 초의 선사의 예에서 보듯이 선현 차인들이 차로써 수양다도를 수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차의 정체성에는 차의 일반적 통합 정체성인 ‘심신건강음료’에 다도(정신수양)라는 문화·
철학성이 가미된 ‘심신건강수양음료’라는 융복합성 이름이 적절하다.
이런 맥락에서 품다에 있어서는 완제된 차에 이러한 효능을 발휘하는 차의 성분 보전이 얼마나 잘돼있느냐를
제대로 검증해 내야 한다.
이를 위한 차 품평은 성분 분석 평가가 적절하나, 이를 관능평가만으로 식별해 낼 때는 차의 향, 탕색, 맛을
중심으로 구별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차를 얼마나 잘 제다했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므로, 제다에 있어서는 제다의 과정인
탄방-위조-살청-유념-건조에서 얼마나 정밀하게 정성을 기울였느냐가 중요하다.
이 제다 과정에서 차의 기능성 성분인 카테킨, 테아닌, 카페인의 보전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살청에서 화후 조절이 중요하고 그것은 관능평가에서 외관, 차향, 탕색, 맛, 우린 잎 등
다섯 요소를 통해 판별된다.
거꾸로 말하면 한국 차의 정체성과 관련한 관능평가의 다섯 과목은 각각 개별적으로 평가되는 게 아니라,
다섯 요소를 일관하여 제다 과정인 ‘탄방-위조-살청-유념-건조’에서 차의 핵심 세 성분인 카테킨, 테아닌,
카페인이 적절히 보전되었는가를 가늠하는 종합 잣대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차를 중국의 경우처럼 단순히 기호식품만으로 취급하여 중국식 관능평가 기준을 들이대면 한국차의
정체성과 우월한 차별성을 가려 한국차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이다. 예컨대 차의 맛으로서 감칠맛만을
강조한다거나 차의 향으로서 고소한 향(roast향)만을 강조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한국차품질평가위원회가 2018년 3월 농림식품부에 제출한 한국차 품질평가 기준설정(안)은
점수 배분이 아래와 같이 조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녹차 품평 점수 배당표>
구분 외형 차탕색 향기 맛 우린 잎 계
녹차(초, 증제로 구분)20→10 15→25 25 30→25 10→15 100
점수배당 조정 이유는, 차탕색, 향기, 맛은 제다의 질을 직접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항목으로서 등가로 중요하고,
외형과 우린 잎은 제다의 질을 간접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항목으로서 중요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차탕색 점수 비주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차탕색에 화후조절 수준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외형과 우린 잎의 관계에 있어서도 외형에 비해 우린 잎은 제다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더 상세히 포착하게
해주므로 점수비중을 높여야 한다.
또한 炒製와 증제蒸製는 가장 중요한 살청에 있어서 현저히 차이가 나는 제다법이고 그 차이가 품질에
나타나므로, 품질 평가에서 炒·蒸製의 항목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3 한국 발효차류 품평 기준에 대하여
오늘날 한국차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녹차의 실종과 발효차류의 득세이다.
대부분의 차행사장에서 녹차는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고 정체 불명의 갈색 차류가 진을 치고 있다.
한국차의 원형이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녹차의 실종 배후에는 보이차를 비롯한 중국산 발효차류
따라하기가 포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산 갈색차류는 상당 부분 그 향과 색깔로 볼 때 발효차류의 제다이론
(산화인가 미생물 발효인가)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찻잎을 짓누르고 몸살시켜
만든 것들로 보인다. 애초에 한국차와 같은 온대 소엽종 찻잎은 중국산 아열대 대엽종에 비해 찻잎의 발효와
발효차의 향 색 맛을 가름하는 폴리페놀 성분이 적어서 발효차 제다에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굳이 한국산 찻잎으로 발효차류를 제다할 경우 한국산 찻잎의 그런 단점 및 특성에 적절히 대응하는
미세한 제다법 개발이 필요하다.
녹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직 한국 발효차 제다의 신뢰할만한 기준이 마련된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구난방식의 한국 발효차류가 녹차를 대신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한국적 기준의 품평을
통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산 발효차 품평 기준을 마련한다면 한국 발효차의 새로운 탄생을
견인하는 지표 역할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
발효차는 발효 정도와 방법, 장소, 환경에 따라 향, 색, 맛이 천차만별이 된다.
특히 아열대 대엽종의 경우 풍부한 폴리페놀 함유와 엽질의 유연성 때문에 비교적 발효가 민감,신속,균질하지만,
한국차와 같은 온대 소엽종은 폴리페놀 함유량이 적고 엽질이 질긴 편이어서 발효가 느리고 균일하지 못하다.
이런 원인으로 한국산 발효차는 발효정도와 향, 색, 맛의 편차가 심하게 된다.
특히 제다 과정상의 억지 발효가 향에 그대로 걍팍한 향이나 시큼털털한 맛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제다상의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한국 발효차 품평 기준은 발효의 방법 및 발효의 정도별로 품목을 구분하고,
발효차류가 ‘기호성’이 강함을 반영하여 향의 순연함(자연스러움)에 점수를 많이 배당하여야 한다.
발효의 방법별 구분은 살청 후 민황 과정을 거치는 황차와 생엽 발효를 선행하는 그 밖의 발효차류(반발효차,
홍차, 흑차)로 심사 품목을 구분하는 것이고, 발효정도에 따른 구분은 반발효차의 경우 발효 정도(경, 중, 강)에
따른 구분 및 반발효차류와 홍차를 분리하여 품평하는 것이다.
<황차 품평 점수 배당표>
구분 외형 탕색 향 맛 우린 잎 계
황차 5 25 30 25 15 100
황차를 포함한 발효차류는 기호성이 강하므로 우선 차향의 점수 비중을 높이고, 황차는 녹차 제다 과정에서
민황을 거친 것이어서 녹차의 신선한 향과 민황의 감미로운 향을 적절히 겸했는지에 평가의 중점을 둬야 한다.
민황을 거치며 변형된 외형 보다는 민황 과정의 적절 여부가 반영된 우린 잎의 모양에 점수 비중을 높여야 한다.
(발효차류 품평 점수 배당표>
구분 외형 탕색 향 맛 우린 잎 계
발효차(경,중,강발효로 분류) 5 25 30 25 15 100
이하 홍차와 후발효차 품평의 점수 배당도 위의 표에 준함.
4. 한국차 품평위원 구성에 대하여
차의 품질 평가는 그러한 품질의 차를 생산해 내는 제다의 문제로 귀결된다.
차 품평의 5 요소(외관, 탕색, 차향, 맛, 우린 잎)는 다름 아닌 제다의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차 품평의 자격은 제다에 관한 충분한 경험과 지식 겸비를 전제로 해야 한다.
『동다송』 제22송에 표현된 ‘茶有九難四香(玄妙用)’에서 구난의 제1이 제다이고(一曰造), 4향의 관건이
제다에서의 화후조절이며, “(이것들을 운영함에 있어서) 현묘하게 해야 한다.”고 했음을 감안하면, 제다가
얼마나 섬세하게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최초의 한국 대중판매차인 백운옥판차 제다법을 배웠다는 불갑사 수산 스님은 “찻잎을 딸 때와 차를 완성했을
때의 향이 같은 차가 ‘차 다운 차’”라고 말하고 차와 다도의 관계를 강조했다.
생 찻잎의 진향(眞香)이 완제된 차에 잘 보전돼야 하고 그런 차여야 원만한 다도 수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역시 한국적 제다의 특성과 문화적 요소의 중요성을 깨우쳐주는 말이다.
따라서 한국차 품평위원의 자격 조건으로 요구되는 ‘제다에 대한 충분한 경험과 지식 겸비’는 차의 성분과
효능 및 제다와 한국적 다도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지식 뿐만 아니라, 다년간 제다를 하며 제다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해답을 축적하고, 차의 성분, 효능, 다도와의 관계를 제다 현장
경험으로써 체득하고 있음을 말한다.
현장 경험이 없거나 일천한 제다 경험, 현장과 격리된 이론은 제다와 차향 발현의 현묘한 속성에 비추어 한국차
품평에 있어서 자칫 탁상공론에 그칠 우려가 있다.
특히 한국 차 제다 이론의 경우 중국차 제다 이론을 복사한 부분이 많고 한국차 고유의 생태와 성분에 맞는
제다 이론이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차 품평에 있어서 제다 현장 경험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이런 점에서 ‘차품질평가위원’은 절대 다수를 제다의 이론과 현장 경험을 충분히 겸비한 자격자로 충원해야 하며,
따라서 현재 한국차중앙협의회 한국차품질평가기준설정위원회가 2018년 4월 농림식품부에 제출한
‘차품질평가위원’ 명단을 전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5 품평기준 마련에 있어서 관계 당국간 협업과 조율의 필요성
한국차 품평기준 마련을 정부의 어느 당국과의 관계하에 진행하느냐가 한국차 정체성 규명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현재 ‘한국차 품평기준 설정(안)’을 농림식품부에 제출한 것으로 보아 농식품부의 관심 속에 이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은 한국차의 정체성을 농산품으로 규정하는 경향으로 기울게 되어(현재도 한국차는 농산품으로만
분류되고 있어서 농식품부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가?) 한국차의 사양화를 더욱 부채질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차 품평기준 설정’ 작업이 과연 현재 한국차가 처한 위기 상황을 제대로 진단한 것인지를 묻게 한다.
차의 품질은 제다에서 결정되고 문화재청은 2016년 제다를 국가문화재 제130호로 지정했다.
그리고 제다는 차문화의 핵심인 다도의 원만한 수행의 관건이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차의 품질을 제다 문제와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다.
중국차가 육우가 『다경』을 지은 唐代부터 제다와 다도의 중요성 부각이라는 문화적 요소와 더불어 발전했고,
일본 녹차가 ‘일본 다도’라는 문화적 기반에 힘입어 국내 소비층을 확대하고 글로벌 브랜드가 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면 안된다.
한국차가 오늘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차를 한갓 농산품 또는 식품으로 하대하여 차의 월등한 차별성인 차 특유의
문화적 특성을 무시하고 초의와 한재 등 선현들이 계발해낸 다도의 문화적 스토리텔링을 사장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한국차 품평기준 설정’ 작업은 농식품부 뿐만 아니라 문화재청과의
긴밀한 협조와 조율을 거쳐야 공적인 설득력을 강화하고 문화적 공인성을 추가로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또한 한국차를 단순한 농산품 또는 식품으로 격하시켜 현재의 위기 상황을 가속화하는
자학自虐의 우愚를 범하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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