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례와 다도
다도와 다례를 이야기 하기에 앞서 「다도는 일본 고유의 것이며 한국에는 다도라는 것이 없고 다례이며 중국은
다법이다.」라고 하고,「한국의 다서에는 다례라는 말은 있어도 다도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으며 중국의
다서에도 다법이라는 말은 있어도 다도라는 말은 없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고유문화를 존중하고 전통을 살리는 다운동이 우리 다론에도 발견할 수 없는 다도라는 말을 쓰는 것은
전통계승과 배반되는 행위이며 일본의 것에 추종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우리는 하루 속히 일본 고유명사인
다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과연 다도라는 말은 어떤 중국 다서에도 없는 말이며 또, 어떤 한국 다서에도 없는 말인가.
이러한 점을 살펴보기 위해 「다신전」에 보면 차의 보관부분 이후의 구절만 봐도 다도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차의 보관부분을 조면 차를 만드는 데에는 정성을 다하고 보관할 때에는 건조한 곳에 두어야 하며 탕을
끓일 때에는 청결하게 하여야 한다.
정성을 다하고 건조하게 보관하면 청결하게 끓이게 되면 다도를 극진히 했다고 할 수 있다.
(造時精 藏時燥 泡時潔 精燥潔 茶道盡矣) 그리고 동다송 29송 포법 부분에 보면 다음과 같이
다도란 말이 나오고 있다.
평해서 말하면 차를 달일 때에는 오묘함을 다하고 차를 만들 때에는 그 정기를 간직하며 물은 참된 물을 얻고
포법에는 중화를 얻으며 체와 신이 즉, 차와 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웅건함과 신령스러움을 갖추니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다도를 극진히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신전」끝부분에서도 다음과 같이 다도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 불가에도 혹은 조주의 풍이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다도를 완전하게 알 수 없기에 써 보지만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처럼 다도라는 용어는 일본 고유의 말이 아니고 우리 조상들도 옛부터 다도라는 말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다도와 다례는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정상구의 『한국다문화학』에 의하면 다도와 다례는 얼핏 같은 것 같지만 그 질, 양면에 있어서
다른 것이라고 하겠다. 즉, 그의 연구대상의 양면에 있어서 볼 때 다도는 그 폭이 광범위하며 그 질면에 있어
구도적인 측면이 깊다 하겠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다도란 다와 더불어 심신을 수련하여 다도의 멋속에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는 다에 관한
전반적인 수련의 길인데 반하여, 다례란 다를 마시는 데 있어 이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예절과 심신수련을
말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도학을 연구하는데 있어서는 다도정신, 다도문화사, 다의 역사를 비롯하여
다의 산지, 기후, 다와 타학문과의 관계 등 광범위한 연구와 더불어 다례가 또한 핵심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례는 그 양면에 있어서 다도의 핵심적인 한 부분에 속하는 것이다.
이를 불교에 비유하면 마치 불교의 선과 같은 것이다. 선은 불교의 핵심이지만 선 자체가 불교의 전부는 아니다.
다음 다례와 다도의 질적인 면에 있어서 차이는 무엇인가 ?
넓은 의미의 다례에는 실용다법도 있어 이는 다를 마시는데 있어 간단한 예법과 더불어 누구라도
손쉽게 마시는 다사이다.
이는 다 애호가들이 마시는 가장 간략한 다법이다. 여기에는 구도적인 자세란 물론 있을 수 없다.
도까지를 추구하지 않으나 불교, 유교, 궁중 예법 등과 더불어 행하는 다례는 이를 의식다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과거 우리 조상들이 해 온 다례는 궁중다례, 불교식 다례, 유교식 다례 등이 있었으나 이 다례에선
의식중심의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구도적인 경향은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구도적인 자세가 깊었던 다법은 불교의 것이라 하겠다.
때문에 다례는 다도의 핵심적인 부분이지 다도 즉 도의 경지에 이르기에는 미흡했다.
다만 다도가 다례에 그치지 않고 심오한 도의 경지에 가기 위해서는 참선 또는 다시 등의 연구과 더불어 다정신을
체득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야만 했다.
이런 경지는 불교에서 있었다 하여 草衣는 茶道라고 했다.
도란 유(有)와 무(無)가 같은 근본에서 나와 이름만을 달리하는 동일한 것이라고 노자는 그의 도덕경에서
말했지마는, 그와 같은 어려운 철학적인 풀이는 유교에서는 하늘의 길이라 하였으며 이것은 곧 참된 사람의
길이기도 하다. 중용에 보면 「참은 하늘의 길이요, 참을 행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
(誠者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고 했는데 하늘의 길이란 참을 행하는 사람의 길이 된다.
때문에 다도란 다와 더불어 참된 사람의 길을 걷자는 천리(天理)를 행한 구심적인 행위를 말하는데 비하여
茶禮는 다를 마시는 것을 중점으로 하는 예의범절 즉 예(禮)나 몸가짐 그리고 茶와의 조화를 중심한 분위기와
지식 등을 일컫는다. 김명배의 『茶道學』에서는 사람(人). 귀신(神). 부처님(佛)에게 차탕을 바치는 예의를
다례 (Tea Ceremony)라고 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다례의 종류로서 역대 왕조의 조정다례, 유불도교의 종교적인 다례, 여염집에서의 손님맞이 다례가 있다.
신라. 고려. 조선왕조의 조정에서는 이웃나라의 사신을 영송하는 다례와 왕실의 궁중다례가 거행되었다.
종교적인 다례로서 유교의 다례. 불교의 다례. 도교의 다례가 있다.
신라시대 유교적인 다례에 대해서는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전재된 김양감의 「가락국기」에 적혀 있다.
그리고 송나라의 주희가 「주자가례」에 제정해 놓은 관혼상제의 다례는 고려 말기에 정몽주와 이숭인의 상주에
의해 채택되었다. 신라시대에는 미륵하생신앙에 의하여 미륵세존에게 차를 공양하였고 , 화엄사상에 의하여
문수보살에게 차를 공양하였다. 그리고 신라의 도의선사는 당나라에 유학하는 동안 홍주 백장산의
대지수성선사에 있는 백장회해선사를 만나고 돌아 왔으니 「백장청규」에 의한 다례법을 전파하였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지켜진 「백장청규」에는 특정한 인물을 위한 다례인 특위차를 비롯한 불전헌다법이 적혀 있다.
대개 음력 5월 5일의 단오명절이면 민간에서는 창포주를 마시어 백병과 백충을 물리친다지만 선사에서는
새벽에 창포차를 달이는 것이다.
또 음력 9월 9일의 중양절이면 민간에서는 수유주를 마시고 술에 국화를 띄워서 장수를 빌지만 절에서는
수유차로 대신한다.
도교에서는 절에 있는 칠성각,도교의 관사, 복원궁, 소격서에서 옥황상제,보화천존, 사해용왕 등의 여러 신에게
단잔으로 다례를 받들었다.
손님맞이 다례는 여염집에 문득 찾아 오거나 초청한 손님에게 차를 접대하는 것인데 『난파선생 시권』의
「후서」에 손님맞이 다례의 좋은 예가 보인다. 거인 청주 이상국은 내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한 어른이시다.
난파는 그 호요, 수부는 그 자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이상한 풍속을 즐기고 숭상하였다.
손님이 오면 반드시 향을 사르고 차를 달이고 노래를 읊으며 잔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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