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42, 대황인, 소녹인, 홍대청병 - 70년대 이후 보이차 명칭의 유래 : 차와문화 : 2019.12.17
70년대부터는 칠자병차 시기이다.
포장지 디자인에서 운남칠자병차로 인쇄되어 칠자병차라고 한다.
칠자병차는 1972년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운남성차엽분공사가 생겨난 이후 보이차의
고유 이름을 숫자로 표기하였다.
차의 명칭을 숫자로 표기하였지만 유통과정에서는 차의 상태, 포장지의
특징을 따서 부르기도 한다.
7432, 7532, 7542, 7572, 7582, 8552 등은 생산 차창에서 명명된 이름이다.
대황인大黃印, 수람인水藍印, 대람인大藍印, 소녹인小祿印, 대구중大口中,
홍대청병紅帶靑餠, 설인雪印, 상검8582(商檢8582), 88청병( 88淸餠),93년대칠(93大七),
94년업청병(94業淸餠), 97년수람인(97水藍印) 등은 유통과정에서 명명된 이름이다.
70년 대황인. 70년대 보이차의 특징은 무게를 달리 긴압하였다.
표준적인 무게가 340g 전후라면 무겁게 긴압한 것은 380g 전후,
가볍게 긴압한 것은 330g 전후다.
그래서 크기, 즉 무게에 따라 무거운 것은 大자 이름을 가벼운 것은 小자 이름을 넣어서 불렀다.
중앙에 茶자 색상에 따라 람색은 람인, 황색은 황인으로 구분하며,
병면의 크기에 따라 큰것은 대람인, 대황인, 병면이 작고 무게가 가벼운
차는 소녹인, 소황인이라 불렀다.
70년대 보이차의 특징은 무게를 달리 긴압하였다. 표준적인 무게가 340g 전후라면 무겁게
긴압한 것은 380g 전후, 가볍게 긴압한 것은 330g 전후다.
그래서 크기, 즉 무게에 따라 무거운 것은 大자 이름을 가벼운 것은 小자 이름을 넣어서 불렀다.
중앙에 茶자 색상에 따라 람색은 람인, 황색은 황인으로 구분하며, 병면의 크기에 따라
큰것은 대람인, 대황인, 병면이 작고 무게가 가벼운 차는 소녹인, 소황인이라 불렀다.
70년대 소녹인 대구중. 병면이 원테두리에 걸쳐져 있다.
대구중은 포장지 하단에 문자중 中의 입구(口)자가 크기 때문에 대구중이라고 하였다.
대구중은 포장지 하단에 문자중 中의 입구(口)자가 크기 때문에 대구중이라고 하였다.
수람인은 중앙에 茶자 색상이 연녹색으로 물 빠진 녹색이기 때문에 수람인이라 하였으며,
홍대청병은 빨간색 끈이 병면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홍대청병이라고 하였다.
설인은 중앙에 약간 뿌옇게 된 茶자가 눈이 내린 것처럼 되어있어
설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설인을 이름 지은 대만의 황슬금씨의 말에 의하면 당시 대만 TV 광고에서 유행하던
일본 우유 브랜드 <설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70년대 수람인.수람인은 중앙에 茶 색상이 연녹색으로 물 빠진 녹색이기 때문에 수람인이라 했다.
70년대 홍대청병.홍대청병은 빨간색 끈이 병면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홍대청병이라고 하였다.
상검8582는 보이차 통 죽피위에 상품검사를 완료하였다는 녹색의 스티커가 붙어있어
상검8252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상검 스티커는 8582외에도 80년대 중반에 생산된 다른 차에도 붙어있다.
90년대 생산된 차에서도 상검 스티커가 붙어있는 종류가 있다.
상검8582는 보이차 통 죽피위에 상품검사를 완료하였다는 녹색의 스티커가 붙어있어
상검8252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상검 스티커는 8582외에도 80년대 중반에 생산된 다른 차에도 붙어있다.
88청병은 89~92년 사이에 생산된 7542이다.
홍콩의 다예낙원 진국의씨가 구입하여 보관한 차를 유통시키면서 다예낙원이 오픈한
1988년을 기념으로 보이차에 88청병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93년대칠은 포장지 상단의 글씨 云南七子餠茶에서 칠자가 옆으로 길게
쓴 것을 대칠이라고 한다.
또 칠자가 작은 것은 소칠이라고 한다.
93년대칠은 포장지 상단의 글씨 云南七子餠茶에서 칠자가 옆으로 길게 쓴 것을 대칠이라고 한다.
94년업청병은 포장지 하단의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 운남성차엽분공사에서 차엽을
차업으로 인쇄하여 94嶪청병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94년업청병은 포장지 하단의 중국토산축산진출구공사 운남성차엽분공사에서 차엽을 차업으로
인쇄하여 94嶪청병이라는 이름이 생겨나며,97년 수람인은 70년대 수람인 처럼茶자의
색상이 연녹색이다.
보이차의 이름은 가장 먼저 생산된 원조 차의 이름을 빌려와 후에 생산된 차에도
동일하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원조차와 이름이 같다고 해서 맛과 향이 동일하거나
제다법이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느 한 가지라도 고증에 의해 원조 차와 동일한 제다법으로 생산된 차가 없기에 이름만
동일할 뿐 전혀 다른 별개의 차이다.
예로 70년대 생산된 동경호를 마시면서 연대를 언급 안한다면 마치 40년대 생모차로 긴압한
차를 마신듯 오해를 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70년대 생산된 동경호는 발효된 숙모차로 긴압한 차이다.
이러한 상황은 여러 종류의 차에서도 볼 수 있다. http://www.teacultur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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