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다완 명칭의 배경과 실체
일본 차인들의 지극한 존경을 받아온 이도차완을 막사발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한국의 도자기
관련자들 중 몇 사람의 과오로 인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생활잡기들의 미학을 다룬 야나기 무네요시가 창간한 잡지 \'민예\']
물론 여기에는 일본의 저명한 도자기 및 한국 고미술품에 관한 전문비평가들의 결코 전문적이지 못한 경솔한
기록과 발언이 배경으로 깔려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야나기 무네요시인데, 그는 이도차완을 16세기 조선 서민들의 생활잡기,
그것도 하층민의 밥사발이라고 단언했지요.
뒤이어 하야시야 세이죠도 이 견해를 지지하면서 잡기류 중에서도 제기(祭器)의 한 종류로 추정하고 있지요.
하지만 조선 16세기 하층민은 도자기로 만든 밥그릇을 사용하지도 못했거니와 그런 그릇이
존재할 수도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오지그릇이나 박바가지였을 뿐이라는 16세기 조선 민중사 특히 생활사를 전혀 몰랐으면서도
그렇게 단언해버린데는, 한국인과 한국 역사에 대한 우려할 만한 폄훼의식과 인간의 마음을 도외시하는
극단적 탐미주의에 함몰되었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 잡기들에 대하여 탁월한 미학적 분석을 내놓아 칭송받아온 야나기 무네요시지만,
정작 한국인의 마음이 진하게 묻어있는 명품들을 그의 개인 소장품으로 가져가버린 행위는 그의 속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읽어낼 수 있는 명백한 증거지요.
그의 후학이라 볼 수 있는 이른바 한국의 고미술품과 도자기에 대한 감식과 비평으로 한국의 관련 학자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여전히 한국 고고미술사를 얕잡아 보거나 한국 연구자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분통 터지는 결과는 먼저 한국 학자들의 무지와 무소신, 비굴한 굽신거림, 일본 문헌에의 지나친
의존도 등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특히 이도차완에 관해서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한국 차인들의 일본 다도에의 지나친 함몰이 가져온 당연한 능욕이자 주체성
상실일지도 모릅니다.
‘다도(茶道)’는 엄연한 일본인의 생활 종교나 진배없는 철저한 일본의 역사 문화임에도 한국 차인들은 다도의
정서와 실제를 배우는데 많은 시간과 경제력을 들이고 있습니다.
한국 차인들에게도 이제 이도차완의 존재는 다른 차완 종류와는 다른 품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17세기 이후 일본 차인들이 수량이 희소한 이도차완을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흉내낸 그릇을 조선에서
주문하여 가져 갔듯이, 오늘날 한국 차인들도 이도차완을 흉내낸 이른바 막사발을 비교적 비싼 가격에
구입하여 사용하지요.
이도차완에 대한 한국 차인들의 뒤늦은 선호는 90년대 들어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이런 경향은 전통 차법의 맥이 문란해져 300여개의 차법(茶法)과 유파가 난립하면서 더욱 심해졌지요.
여기에 그릇의 제작보다는 판매를 위한 상술과 조직적 거래에 더 치중하는 도자업자와 거래상의 농간이
보태어져서 그야말로 막나가는 저질 그릇인 막사발을 이도차완의 역사에 끼워서 팔게 되었지요.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일본인 장사들도 가세하여 막사발은 이제 추태라는 인상까지 줍니다.
속고 속이는 차그릇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다름 아닌 ‘막사발 문화’ 입니다.
최근에는 일본인 학자들까지 한국에 초청되어 함부로 말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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