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채 이용 추상적 표현… 외형, 회화성 뛰어나 - 경남매일 - 2025.02.05
김해찻사발 맥 6
철화문신해년찻사발(黑御所丸茶碗)
'석양'과 쌍벽·미쓰이 기념미술관 소장
구연부 일그러뜨린 낮은 반통형
물레로 지을 때 의도적으로 왜곡
어지러운 선·유약 대별된 메마름
큰 붓으로 묵직하게 연속된 채색
산화불 의한 연황색·벽돌색 눈길
대체로 일본에서 오리베(織部)류 찻사발은 일본의 다인(茶人)들에게 초기에는 파격적으로
느껴졌지만 그 상황을 수용해 일본적 형식(和物)으로 받아들여 일본의 전통적인
도자기와 찻사발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시키고 계승돼왔다.
당시 조선 사람이 삐뚤어지고 왜곡된 오리베류 도자기를 비롯한 찻사발을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은 어떠했는지에 문화적 충격을 기록한 글이 있다.
조선에서 일본 국내의 동정과 피로인(被擄人)을 데려오기 위해 1624년에 회답 겸 쇄환사를
파견할 때 통신부사(通信副使)로 파견됐던 강홍중(姜弘重)의 일본 방문 당시 기행록인
'동사록'의 을축년(乙丑年, 1624) 3월 5일 조의 '문견총록(聞見叢錄)'의 내용 중 일부다.
사기(沙器)와 토기(土器) 종류는 모나고 반듯한 것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고 기울고 찌그러진
그릇을 얻으면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보배로 여겨, 비단보에 열 겹 싸서 다퉈 자랑했으니,
그 풍속의 괴이함이 이러했다.
위의 기록으로 보아 유교 사회에서 살아온 선비 강홍중이 방문한 1624년의 일본에서는
오리베류의 도자기가 빠르게 퍼져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고 그가 문화적인 이질감으로
괴이함을 느꼈던 것이 나타난다.
이러한 찻사발들이 견본(見本)으로 건너와 김해사기장(沙器匠)에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에 건너가 찻자리에 사용됐던 고김해(古金海) 찻사발이
있었고, 이것은 구연의 왜곡(歪曲)과 찻사발의 허리 아래 모깎기, 굽다리의 변형 등
옛 김해사기장들이 가지고 있었던 미의식을 일본 다인들이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리해서 일본이 신해년(辛亥年; 1611)에 찻사발을 주문할 때 동래부사에게 특별히 부탁해
김해사기장으로 하여금 만들게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김해 철화문찻사발은 전해 오는 수량이 많지 않으나 그중에서 '석양(夕陽)' 찻사발과 쌍벽을
이루는 찻사발로 미쓰이(三井) 기념미술관 소장의 철화신해년찻사발(鐵畵辛亥年茶碗)이 있다.
비록 찻사발의 고유 이름은 없으나 조형성과 회화성이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찻사발의 조형적 특징은 낮은 반통형(半筒形)으로 구연부를 일그러뜨려 왜곡했으므로
일본에서는 답형(沓形)이라 부르며 이러한 형태는 이 찻사발을 비롯한 김해의 주문찻사발에
거의 적용돼 만들어졌다. 또한 이때는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인해 조선찻사발의 공급이
끊어지면서 시노다완(志野茶碗)과 라쿠다완(樂茶碗) 등 일본풍(和物)의
반통형 찻사발도 유행했다.
빚음흙(胎土)은 신해년찻사발(御所丸茶碗)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고화도의 백자계 흙으로
약간의 철분을 함유하고 수비(水飛)를 하지 않은 고운 흙을 사용했으며 유약은 유탁(釉濁)이
있는 백유로 부분부분 산화불에 의한 난색(卵色)을 띠고 모잽이한 깎은 면은 핀홀에 의한
유면에 기포가 있다.
찻사발 내면은 일그러진 타원의 구연 아래로 물레로 모양을 지을 때 중심으로부터 일부분을
이탈시켜 의도적으로 왜곡되게 만들었으며 그 아래는 한 단을 만들고 차고임 자리는 뚜렷한
물레자국 가운데로 살짝 내려앉은 듯이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바닥 면의 철채(鐵彩) 사이로 유약 속에 비쳐 나오는 옅은 붉은 산화흔이 아름다움을 더한다.
찻사발 바깥면의 구연부는 변형된 띠 모양이고 그 아래로 한 번 죄어 단차를 뒀으며 거기서부터
비정형으로 돌출시킨 몸통을 두 부분으로 치개를 사용해 구획했다.
허리 아래로 듬성듬성 칼로 모잽이 한 위에 유약이 걸치듯이 아무렇게 부분적으로 씌워져
빚음흙(胎土)이 노출돼 있으며 드러난 부위와 굽의 비짐흙이 불 속에서 산화돼 붉게 벽돌색으로
변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유약을 씌울 때 흘러내린 유약 방울과 손자국이 어지럽게 남아있어 흔히 이야기하는
공예 예술에 있어서 완성도와 거리가 먼, 행위에 대한 관조(觀照)만 찻사발에 남아 있다.
굽다리(高台)는 다른 찻사발에 비해 큰 편으로 물레 위에서 굽을 깎은 후 굽깎이 칼로 대충
바깥으로 비스듬히 되는대로 면을 쳐서 깎음굽을 만들었다.
굽안자리 바닥은 기물에 비해 얕게 깎았고 굽꼭지는 조금 솟아있으며 주변으로 어지럽게 생긴
깎은 선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둬 붉게 노출된 빚음흙과 함께 유약을 씌운 부분과
대별되면서 이 찻사발만의 메마름과 쓸쓸함이 있다.
미쓰이(三井) 기념미술관 소장의 철화문찻사발은 찻사발 전면에 철채를 이용해 추상적으로
그렸으며 회화성이 대단히 높게 평가되고 있다.
찻사발 내면에 메마르고 거친 갈필(渴筆)로 속도감이 있게 그렸으며 붓이 가지고 있는 기능성과
채료의 절대성의 표현이 잘 나타나 있다.
작자의 본능적인 감각과 행위가 속도감 있는 시간성과 배치의 공간성으로 회화적 완성도가
높게 녹아 있다.
일본의 도자사가들과 다인들은 이 찻사발의 표현 기법을 구로하케메(黑刷毛目; 검은 귀얄문)로
부르며 귀얄문으로 보았다.
그러나 귀얄문은 분청사기(粉靑沙器)의 장식 기법으로 어두운 빚음흙을 가리기 위한 디자인적
용도로 사용했고 채료(彩料)가 아니므로 회화성은 거의 없는 것에 비해
철화문신해년찻사발(鐵畵辛亥年茶碗)은 철화를 그리기 위해 사용했던 채료가 철채(鐵彩)이므로
무한한 표현이 가능하며 회화성도 분명하다고 하겠다.
구연부 내외와 바깥면에 걸쳐 큰 붓으로 묵직하게 채색한 연속된 표현과, 그 공간 속으로 작은
붓으로 그려진 붓의 터치와 울림은 하나의 붓으로 장식하는 귀얄문과는 방터과 양식에서
분명하게 회화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으며 예술적 가치가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철화의 우연적이면서도 공간의 긴장감은 20세기에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1910~1962), 로버트 머더웰(Robert Motherwell, 1915~1991) 등의
추상표현주의 대가들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늘날에도 많은 작가들의 표현
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철화의 발색은 소성 온도와 유약의 종류와 불꽃의 분위기에 따라 어두운 흑갈색에서
밝은 갈색으로 발색하며 주성분인 철(鐵)의 결정화에 따라 피움 상태와 크기가 달라진다.
유약의 유동성이 좋을수록 발색 상태가 좋아지고 산화불에는 검은 갈색을 띠나 환원불로
바뀔수록 철결정이 피면서 밝은 갈색으로 발색한다.
김해 철화찻사발의 경우 외관상으로 볼 때 유탁성이 있는 백유 계열로 유동성이 없고
구연부와 내면 일부를 제외한 부분적으로 산화불에 의한 계란색으로 보아 철화가
발색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그러나 유약이 녹기 전에 충분한 환원불을 지펴서 분위기를 초기 녹는 점까지 이끌어 철의
결정화가 시작될 시점부터 중성불과 산화불로 바뀌게 소성해 찻사발에 그린 철채 속의 철이
결정화만 하고 어두운 갈색으로 남아 있으므로 회화의 이미지는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
따라서 찻사발 바깥면도 똑같은 과정의 분위기로 산화불에 의해 빚음흙이 군데군데 산화돼
유약 아래로 배이듯이 연황색이 비쳐 나와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유약이 없는
굽언저리와 바닥은 강한 산화작용으로 벽돌색이 됐다.
1611년(辛亥年)에 일본으로부터 주문이 와서 만들어줬던 김해찻사발은 조형성과 제작기법을
다른 찻사발과 비교하면 남아 있는 수량이 적고 또한 독특한 양식으로 만들기가 까다로워
후세에 일본에서 재현에 노력했으나 깊은 맛과 특징을 살려내지 못했다.
김해 주문찻사발을 분류하면 크게 두 종류로 나눠지며 백자찻사발 계열의
복숭아찻사발(桃形茶碗), 너울형찻사발(州浜形茶碗), 긁음찻사발(猫搔茶碗),
나눔찻사발(小判茶碗) 등이 있고 신해년찻사발 계열의 흰신해년찻사발(白御所丸茶碗),
검은신해년찻사발(黑御所丸茶碗)로 나눠지며 두 부류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지만
다른 작위도 볼 수 있다.
김해 주문찻사발 특징
첫째, 찻사발의 모양을 인위적으로 왜곡했다. 이러한 찻사발의 주문은 고김해(古金海)
나눔굽찻사발(割高台茶碗)의 구연부를 찌그러뜨린 조형성과 김해의 지역적 연고성을 참고해
당시 일본 내에서 유행했던 왜곡된 형태의 화물다완(和物茶碗)이 견본으로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는 임진왜란 이전의 고려찻사발(高麗茶碗)들은 귀하게 여겨 이미 희소성과
그 가치가 높아 견본으로 보낼 수 없는 상황이고, 임진왜란 시 피납된 조선사기장들은
일본 내에서 활동 상황이 뚜렷하게 없었던 관계로 새로운 찻사발을 견본으로 보내지 못하고
오리베류를 비롯한 화물다완이 견본으로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찻사발 형태가 전부 반통형(半筒形)을 기본형으로 했다. 김해주문찻사발의 백자 계열은
전래의 전통적인 구연으로 선입술(直口)을 왜곡시키거나 변형했고 신해년찻사발은
소위 답형(沓形)으로 구연이 말린 입술(玉緣)을 기본으로 만들었다.
셋째, 빚음흙(胎土)은 철분이 소량 함유된 백자 계열의 내화도(耐火度)가 높은 빚음흙을
사용했으며 신해년 계열은 철분 함유량이 약간 높다.
유약은 엷게 백색이 도는 백자유(白磁釉) 계열의 유약과 유탁(釉濁)이 있는 반투명 백유로
두 종류를 사용했으며 백자 계열은 백자유를 씌웠고 신해년 계열은 반투명 백유를 씌웠다.
넷째, 굽 부위와 주변은 공통적으로 유약을 씌우지 않았으며 신해년 계열은 모잽이를 했다.
굽 언저리의 빚음흙 노출(露台)은 다도의 정신세계에서 원초적이고 탈속적인 면을 찻사발에서
은유하고 즐기는 감상안으로 김해주문찻사발의 무작위적인 세계에 대해 다인들은
대단히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신해년 계열은 전부 모잽이 깎음을 했으며 그 시작은 고김해(古金海)
나눔굽찻사발(割高台茶碗)에서 발견할 수 있고 그 양식의 계승으로 봐야 하겠다.
다섯째, 굽을 깎고 만드는 조형성이 자유롭다.
백자 계열의 복숭아찻사발(桃形茶碗)은 옛김해의 나눔굽(割高台) 형식이고
긁음찻사발(猫搔茶碗)은 옛 김해의 자름굽(切高台) 양식이다.
신해년 계열은 깎아서 만든 깎은굽과 굽의 바깥을 사면으로 아무렇게나
친 모잽이굽으로 만들었다.
여섯째, 찻사발을 포개어 소성하는 가마쟁임이 없었다.
보편적으로 가마쟁임은 많은 수량의 그릇을 굽기 위해 포개어 굽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개어 쌓은 그릇 사이에 고임눈이 필요하며 소성 후 그 흔적(目跡)이 남는다.
김해의 주문찻사발에서는 고임눈의 흔적이 전혀 없으므로 가마 바닥에 그릇을 깔아서 구웠다.
따라서 찻사발 전부가 굽과 그 언저리에 가마 바닥에서 올라오는 강한 불의 산화작용으로
산화됐으며 공통적으로 찻사발 저변이 온도 차이가 발생해 완전히 녹지 않거나 매트화 돼 있다.
이러한 소성 방법은 김해찻사발만이 가지는 특유한 아취와 독보적인 세계를 이룬다.
그러한 상황을 보아 김해주문찻사발은 많은 수량을 주문하지 않았거나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일곱째, 김해주문찻사발만의 특유의 소성 분위기가 있다.
그 불의 지핌은 가마의 예열을 충분히 하고 유약이 녹기 전에 완전한 환원불을 지펴서
분위기를 초기 녹는 점까지 이끌어 찻사발의 구연부와 몸체가 녹는 시점부터는 중성불과
산화불로 바뀌게 소성해 마감불을 서서히 끌어줘 구웠다고 추정한다.
이 방법은 가마 바닥으로부터 강한 산화작용이 일어나며 김해찻사발 특유의 구연부와 내면
일부가 환원의 유색이 나타나고 굽의 주변과 아랫부분은 산화되거나
요변(窯變) 현상을 볼 수 있다.
여덟째, 일회성 주문이었다. 기록으로 봐서 추가 주문의 흔적이 없고 당시 조선은 여진족의
후금(後金)과 대일 외교 관계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상황으로 1609년의
기유약조(己酉約條)를 계기로 일본 막부와 관계 개선이 필요해 호혜성으로
일회성 요구를 들어줬다고 추정된다.
위에서 열거했던 사항들을 종합해 보면 한 가마에서 제작됐으며 여러 번의 제작과
소성 흔적을 발견하기 힘들다.
아홉째, 예술성이 뛰어난 찻사발이다. 김해찻사발은 다도에서 요구하는 내밀한 조건을
제외하더라도 도자기로서의 예술성은 대단히 높다.
특히 철화신해년찻사발의 경우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갖고 있으며 현대미술의
공간 의식과 조형성에서도 공감성을 느낄 수 있다. - 글쓴이 조국영 도예가
철채 이용 추상적 표현… 외형, 회화성 뛰어나 - 경남매일 (gn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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