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다인 특별한 취향 담아서 노란색 매력 뿜어내 - 경남매일 - 2025.04.02
누른창기찻사발(黃伊羅保茶碗) 여랑화(마타리꽃) - 양산찻사발 맥 ②
늦여름~가을 피어나는 노란 꽃 여랑화 색깔 연상시켜
빚음흙 드러나 갈색화… 은은한 광택, 고유 빛깔·정감 보유
법기리 외 다른 가마서 못 보던 받침눈 사용 '독특한 아취' 평가
쓸쓸함·메마름·서걱거림·과일 냄새 등 시각·촉각·후각적 재미
고려찻사발(高麗茶碗)의 유명세에 다인(茶人)들은 물론 도자사가들도
찻사발의 생산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고려찻사발 생산지에 관련해 여러 학설이 분분하지만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의 찻사발
생산지는 정확하게 학술적으로 증명되거나 확인된 사실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임란 이후의 생산지에 관련해서는 1611년에 김해에 찻사발을 주문한 기록과 만들어진
찻사발은 남아있으나 찻사발이 만들어졌던 가마터는 발견하지 못했다.
1639년부터 견본을 보내와 찻사발을 번조(燔造)해 갔던 부산요(釜山窯)의 두모포(豆毛浦)
가마는 위치조차 알 수 없고 초량(草梁) 가마는 가마터가 이미 도시화되면서 훼손돼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지만 양산(梁山)의 법기리(法基里) 가마는 기록의 사료는 없으나 남아있는 가마터에서
찻사발의 파편이나 자료들이 발견되거나 출토돼 일찍이 일본의 도자사가들에게 지대한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됐다.
우선 법기리 창기(昌基)마을에 여러 기의 가마터가 있지만 가마가 언제부터 시작됐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반도에 산재돼 있었던 고도요지를 조사했던 도자사학자
노모리 켄(野守 建) 씨의 보고에 의하면 이라보다완
(伊羅保茶碗: 이하 명칭을 창기찻사발로 부르겠다.)이 동래 근처의 양산 법기리의 창기(昌基)마을
가마터에서 확인됐고 귀얄문찻사발(刷毛目茶碗) 파편과 나눔창기찻사발(片身替茶碗)도 파편을
발견해 이런 찻사발이 창기마을에서 구웠음을 확인했다.
해방 후에는 창기마을을 방문한 저명한 도자사학자 하야시야 세이죠(林屋晴三: 1928-2017)는
몇 개의 창기찻사발의 굽다리(高台) 파편을 수습했다고 했으며 그의 논조(論調)에서는 전세의
작품이나 도요지 출토 도편의 양으로 미뤄 가장 많이 소성한 것은 깎음선창기찻사발
(釘彫伊羅保茶碗)이었다는 점을 확실시했으며, 그러한 깎음선창기찻사발을 기조로 하면서
특별 주문품으로 귀얄나눔창기찻사발(內刷毛目片身替茶碗)나
누런창기찻사발(黃伊羅保茶碗)이 번조했을 것이라고 했다.
창기찻사발(伊羅保茶碗)의 최초 문헌의 기록으로는 대마도(對馬島) 종가문서(宗家文書)의
번정기록(藩政記錄)인 '국표매일기(國表每日記)'에 의하면 1634년 12월에 대마도번에서
에도성(江戶城)의 다탕방주(茶湯坊主)인 龍慶에게 고려황다완(高麗荒茶碗)
두 개를 전달한 기록이 있다.
여기서 황(荒)다완은 거친누른사발로 창기찻사발(伊羅保茶碗)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동년 정월의 '日日記'에서 실마리를 볼 수 있으며 내용에
'어다완지형(御茶碗之形)' 한 개를 부산으로 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부산요(釜山窯)가
운영되기 전이므로 당시의 정황으로 비춰봐서 법기리 가마에서 주문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찻사발을 보관하는 상자의 상서(箱書) 기록으로는 깎음선창기찻사발(釘彫伊羅保茶碗)
명(名)으로 '궁도(宮嶋)' '이라보(伊羅保)'라고 찻사발 상자 뚜껑 안쪽에 묵서(墨書)로
'寬永二十一年 領之也'라는 상서가 있어 1644년 이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 1647년(正保4년)에 깎음선창기(釘彫伊羅保)찻사발에 코보리 엔슈(小堀遠州: 1579-1647)의
글씨로 추정되는 상서에 '고려박다완(高麗薄茶碗)'이라고 묵서한 것이 있다.
이러한 것은 초기에 명칭이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고 뒤섞여 사용한 시기였을 것이다.
그 외 상서의 연대 기록은 없으나 엔슈 필의 나눔창기찻사발(片身替茶碗) 명(名)
'相坂'이 유명하고 동시대 다인(茶人)이었던 카네모리 무네와(金森宗和: 1584~1656)가
상서한 명(名) 'いら本 虹' 찻사발이 있으며 그 시기에 활동했던 유명 다인들로
그 시기에 상서했을 것이다.
창기찻사발(伊羅保茶碗)의 밀수 기록으로는 1660년(庚子年)의 종가문서
'국표매일기(國表每日記)'의 3월 29일 조 기록에 의하면 袖岡 三郞이
횡목역(橫木役: 수검 직위)으로 수검소인 악포(鰐浦)에서 가지고 온 이라보 다완 두 점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대마인이 귀국할 때 숨겨서 가지고 가다가 적발된 사례이다.
창기찻사발에 관련해 일기(日記)의 기록으로는 교토 금각사(金閣寺)의
주지 봉림 승장(風林 承章)의 일기로 '격명기(隔蓂記)'에 1660년 11월 21일 자 기록에
'茶碗イラ坊也(다완이라보)'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격명기'에는 이보다 7개월 전인 4월 17일의 기록에
'栗田口 之高麗茶碗之似物イラ坊之手之茶碗'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따라서 이라보 찻사발은
일본 교토의 '쿠리타구치 가마'에서도 구웠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창기찻사발은 교토 인근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 열거한 기록들은 창기찻사발이 다회기에 최초에 기록된 1659년 9월에 열린 강잠다회기
(江岑茶會記)보다 빠르거나 비슷한 연대의 기록으로 여러 유명한 다인들이 상서한 것으로
봐서 다회기에 출현하기 이전에 이미 널리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여랑화라는 누른창기찻사발(黃伊羅保茶碗)은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활약했던 일본의 유명한
대명다인(大名茶人)으로 마쓰다이라 후마이(松平 不昧: 1751~1818)가 소장했으며
누른창기찻사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랑화는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로 마타리꽃이라 부르며 늦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가지
끝에 여러 개의 노란 꽃을 피우므로 그 아른거리는 노란 빛깔을 연상해 여랑화라고 불린 듯하다.
이 찻사발을 애장했던 마쓰다이라 후마이는 찻사발 상자 뚜껑 안쪽에 묵서(墨書)로
'女 花今朝はすがたもまさるかな露の結べる玉かずらして(여랑화 오늘 아침 모습이 멋있구나
이슬 맺힌 구슬 머리 장식하고…)'라는 구절(句節)을 상서(箱書)한 것은 마타리꽃이 좁쌀
모양의 여러 개체의 꽃송이가 모여 역삼각형을 이루면서 핀 모습이 노란 구슬의 머리 장식을
연상했을 것으로 느껴진다.
현재 일본에서 세전(世傳)하는 누른창기찻사발(黃伊羅保茶碗) 중에서 같은 이름의
여랑화 찻사발은 두 점이 있으며 한 점은 니시오(西尾)의 적취암(積翠庵)에 소장돼 있고
다른 한 점은 마쓰다이라가 소장했던 찻사발이다.
마쓰다이라의 여랑화 찻사발은 가장 표준적인 법기리(法基里) 가마의 창기형(昌基形)
찻사발로 기벽이 얇고 구연(口緣)부가 바깥으로 약간 휘어 외반한 발형(鉢形)으로
굽다리(高台)가 낮고 굽언거리를 깊게 판 대마디굽(竹節高台)으로 표면이 거치며 엷은
적갈색을 띤 황색의 찻사발이다.
찻사발의 빚음흙(胎土)은 수비하지 않아서 철분과 잔모래 알갱이 잡석(雜石)이 섞여 있고
내화도가 높은 백토계 도석을 사용했다.
누른창기찻사발 빚음흙은 깎음선창기사발이나 옛창기사발보다 철분 함유량이 적으며
실제로 법기리 가마터에서 수습한 누른창기찻사발 도편(陶片)을 보면 의외로 철분 함유량이
적은 백자계 빚음흙을 사용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유약은 약간의 철분을 함유한 함철 토회유(土灰釉)로 얇게 시유했고 특히 구연부와
그 내면 언저리에는 유약이 얇아서 빚음흙이 드러나 갈색화됐으며 찻사발 사용흔과
어우러진 변화가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고르게 약산화(弱酸化)불로 소성했으며 유면은 붉은 갈색빛을 띤 황색의 유약으로
은은한 광택이 나며 누른창기찻사발의 고유한 빛깔과 정감을 느끼게 한다.
구연부는 찻사발을 짓기 위해 물레 위에서 빚음흙을 뽑아 올릴 때 중심으로부터 고르게
분배하지 않아서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은 세 군데의 함몰이 있다.
구연이 바르게 정형화되지 않았으나 입술테 두께를 모아 잡아 도톰하게 했고 그리해서 입술
아래에 가는 물레선이 생겨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기법은 창기찻사발의 약속으로 다도계에서는 본수(本手)라 하며 높게 평가하나
그렇지 않은 찻사발도 많지만 이런 기법들의 찻사발에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
이 찻사발의 구연부는 일정하게 씌워지지 않은 유약의 농담과 변화있는 입술테와 그 아래로
얇은 유약 속에 드러난 갈색 빚음흙의 비침들이 여랑화 찻사발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품격으로 인정하고 있다.
찻사발 내면에는 기면에 따라 물레선 흔적이 없이 조용하게 내려앉아 있고 차고임 자리는
따로 만들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알갱이 돌이 박혀 폭석(爆石)이 일어나 미세 균열과 함께
볼거리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그 언저리로 네 군데의 희미한 받침눈의 흔적이 보이며 이것은 찻사발을 포개어 굽기 위해
찻사발 사이에 괸 흔적으로 법기리 가마에서는 다른 가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받침눈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여러 가마에서는 고화도 백토를 사용하거나 빚음흙으로 받침눈을 만들어 괴지만 법기리
가마에서는 백토를 수비하고 남은 찌꺼기 잔모래를 약간의 점토를 첨가해 받침눈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방법은 백토를 사용해 받침눈을 하면 포개지는 찻사발의 유약면에 붙어 버린 흔적이
크게 남지만 잔모래를 이용하면 모래 알갱이 입자가 크기 때문에 찻사발 유면과 밀착 정도가
공간이 생겨 작아진다.
이런 불규칙한 흔적이 부분으로 남아있어 다도(茶道)계에서는 법기리 가마의 독특한
아취(雅趣)로 높이 평가한다.
그렇지만 법기리 가마에서 일반 민수용 사발은 전부 백토고임받침을 했지만 찻사발의
고임만큼은 잔사고임받침을 해 확실하게 구별해 구웠다.
바깥면은 입술 아래 구연(口緣)잡이 물레선이 가늘게 몇 개가 서 있고 푸른깊은사발
(靑井戶茶碗)의 모양을 띠고 있으나 몸통에는 물레선이 없이 빚었으며 빚음흙 속에 박혀있던
잔모래들이 물레의 회전에 따라 일어나면서 재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질감을 형성하고
그에 더해 노랗게 물든 유약의 짙고 엷음에 따라 누른창기찻사발만이 가지고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찻사발 허리에 걸린 손자국은 사기장이 유약을 씌울 때 흔적으로 손가락에 묻은 유약의 양에
따라 두꺼움과 손가락에 가리어 묻지 않은 부분들이 소박하고 무작위스러움이 묻어나면서
자연스런 변화를 드러낸다.
이러한 유씌움은 법기요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주변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이러한 작위(作爲)를 표현 기법으로 사용한 찻사발로는 같은 법기리 가마에서 구운
단풍탕기찻사발(紅葉吳器茶碗)이 유명하다.
여랑화찻사발의 허리 아래의 굽 언저리 깎음은 살풋 작고 약하게 깎아서 전체 면의 볼거리를
확장시켜서 인위적인 느낌을 절제했고 자연스럽게 스민 유약의 변화들이 찻사발의
화려함은 없지만 단아하고 고아한 품위를 느끼게 한다.
굽다리(高台)는 낮은 굽으로 바깥 굽 언저리를 사푼히 엷게 깎았으나 굽다리 안쪽으로는 깊게
패이도록 했고 굽바닥으로 들임깎이를 해 뚜렷하게 대마디굽(竹節高台)을 만들었다.
굽 안 깎음은 둥근 대나무 칼로 얕고 둥글게 깎았고 깔끔하게 굽바닥과 각을 이뤄 깎았으며
굽안자리는 돋음깎음을 해 창기찻사발의 특유한 형식을 갖췄고 굽의 전체에 시유가 돼 있다.
누른창기찻사발(黃伊羅保茶碗)은 일본의 다인(茶人)들의 특별한 취향으로 거칠면서 황량한
노란색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찻사발의 노란색 선호는 일찍이 주광청자(珠光靑磁) 찻사발의
산화된 부분의 익은 매실(梅實)색과 깊은찻사발(井戶茶碗)의 비파(枇杷)색 등은 노란색 계열의
전래된 많은 수의 찻사발에서 빠질 수 없이 존재하고 변화해 왔다.
그러나 누른창기찻사발에 나타나는 감성은 시각적으로 광야처럼 쓸쓸하고 황량함이 있고
촉각으로는 손바닥에 와 닿는 거칠고 메마름이 있으며 청각적으로는 격불할 때 서걱거리며
손끝으로 전하는 소리가 들리고 후각적으로는 노랗게 농익어 말라가는 과일의 삭은
냄새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찻사발 속에 날아갈 듯 거품이 일은 말차의 미묘한 맛은
오감(五感)을 스스로 갖추게 한다. - 글쓴이 조국영 도예가
日 다인 특별한 취향 담아서 노란색 매력 뿜어내 - 경남매일 (gnmaeil.com)
日 다인 특별한 취향 담아서 노란색 매력 뿜어내 - 경남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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