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호 白磁壺 18세기 높이37cm : 2007년9월15일 서울옥션 제108회 미술품경매, 추정가 5억-7억원
대작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당당하게 큰 백자 달 항아리입니다.
흔히 순백의 달 항아리라고 표현하지만 남아있는 달 항아리가 순전한 순백의 경우는 없습니다.
만들어져 사용된 지 2백년 가까운 물건이 가마 속에서 나온 그대로인 채로 뽀얗게 남을 수는 없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남고 때가 묻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흰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에서는 이 세월의 흔적을 빼는데 한동안 고심했습니다.
세제를 푼 물에 넣고 북북 씻은 것은 물론 과산화수소 같은 것을 섞은 물에 담궈 뽀얀 색으로 보이도록 했습니다.
이런 약품 물에 넣는 것은 유약을 한 거풀 벗겨내는 것과 같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거죽을 벗기는 것과 같은 끔찍한 일입니다.
이는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다가 되찾아오거나 되사온 도자기들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일본인 소장의 도자기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아있는게 보통입니다.
그런 현실 중에서 얼룩이 근사하게 남아 있는 유명한 항아리가 국보 309호의 백자호(白磁壺)입니다.
참고로 달 항아리의 국보나 보물 지정명칭은 백자호(白磁壺) 또는 백자대호(白磁大壺)입니다.
그러고 보면 달 항아리는 공식적인 이름이나 명칭이 아니라 민간에서 부른 애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달 항아리에도 얼룩이 져 있습니다. 장물 자국은 아니고 기름이 쉽게 배어나는 생선이나 육류를
넣었던 흔적으로 보입니다.
대개의 백자에서 안쪽에도 유약을 묻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도자기 안쪽에 관해서 재미있는 골동 야화(野話) 하나가 업계에 전설처럼 전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의 이 선생께서 골동에 입문하기도 이전 이야기이니 가히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일이라 할 만합니다.
달 항아리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인기가 높았습니다. 수가 적은 때문입니다.
금사리에서도 달 항아리는 한 시절 만들고 말았습니다.
1972년쯤의 이야기입니다. 당시는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막 시작되던 시절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일각에서는 농한기가 되면 나쁜 옛 버릇을 못 버리고 끼리끼리 모여 노름을 하곤 했습니다.
골동 거간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도 씁니다만 당시 이들은 나카마(仲間)라고 불렸습니다.
나카마의 원 뜻은 동료인데 와전돼 중간 상인을 가리키는 말이 됐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여러 지방을 돌면서 물건을 구하는 가게가 있는 상인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 역시 겨울철에는 일거리가 없었습니다. 여름처럼 문을 열어놓고 있는 집들이 거의 없어 활동하기
힘든 것이지요.
그래서 여관방이나 동료의 집 하나에 모여 도박하는 것이 일거리 아닌 일거리였습니다.
노름이란 따는 사람 하나에 잃는 사람 열이라고 겨울이 끝나고 봄에 들어서면 열 가운데서 아홉은
노름빚을 지게 됩니다.
그래서 밑천을 다 잃고 장사도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된 위에 빚 갚을 날짜가 다가오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딱한 처지가 되고 맙니다.
이때 거간들 사이에 흥정거리로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건 정보입니다.
어느 집에 무엇이 있다는 사실은 최중요 사업 정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궁한 나머지 이 정보를 내놓고 일이 잘 성사되면 얼마를 받겠다고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1972년의 일이란 어느 수완가가 노름빚이 쫓긴 한 나까마에게 어느 곳의 어느 집에 근사한 달 항아리가
있다는 정보를 산 데서 시작합니다.
이 정보를 넘겨준 나카마에 의하면 자신은 수완가로부터 큰돈을 건네받아 노름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수완가는 정보대로 소장자 집을 찾아가면서 빳빳한 백 원짜리 지폐로 20만원을 마련해 보자기에
싸 가지고 갔습니다. 당시는 80kg들이 쌀 한 가마니 값이 1만780원하던 때였습니다.
(통계청 자료) 그는 주인을 찾아가 환심을 사기 위해 처음부터 돈을 풀어 보이며 항아리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도 만만치 않아 “50만 원짜리를 겨우 20만원 가져와 보여 달라니 말이 되느냐”며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수완가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값이 얼마인지는 물건을 봐야 알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끈질기게 보여 달라고 하자 주인은 조금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수완가는 틈을 놓치지 않고 “어르신의 항아리가 좋은 물건이라면 항아리 안에 반드시 글씨가 써 있을 테인데,
그러면 말씀대로 50만원은 족히 나가는 물건일 겁니다”라고 말하면서 한번 보자고 했습니다.
주인은 처음 듣는 말이라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한번 보고 얘기하자’는 말에 호기심이 일어 광에 가서
항아리를 가져왔습니다. 항아리 속에는 밀가루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밀가루를 퍼내고 안을 들여다보던 주인은 실망한 듯 “글씨가 안 보이네”하자 수완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
그거 보세요. 글씨도 없는 걸 그렇게 좋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하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주인은 지금까지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가 실명하는 것을 보고 수완가가 운을 띄웠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갈 수 없지 않느냐.
얼마에 파시겠느냐”하고 묻자 주인은 “‘그래도 20만 원짜리는 되는 것 아니냐”며 20만원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수완가는 “15만원 드리면 손해라고 생각하실 테니 다음에 오면 좋은 물건 찾아놔 달라”고
하면서 가려하자 주인은 그의 팔을 붙잡고 ‘그럽시다’는 말을 하고 말아 거래가 성사됐습니다.
그렇게 수완가가 안쪽에 글씨가 없는 달 항아리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 300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았고
정보를 준 사람에게도 상당한 정보값을 주었다고 합니다.
‘안쪽에 글씨 없는 항아리가 큰돈이 된다’는 얘기는 지금도 나이든 거간꾼들 사이의 술자리에서 우스개
안주거리로 등장하곤 한답니다. -스마트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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