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 길성 吉星
1979년 영지요 창설(경주)
1983년 대구 명화랑 초대전
1984년 일본 東都畵廊 합작전
1985년 프랑스 MICHLCAMOESSOS 美術館 招待展
1986년 뉴욕 현대갤러리 합작전
1988년 제 18회 경북공예품경진대회 금상 / 제 18회 전국공예품경진대회 상공부장관상
1989년 길성도예원 창설 (경기도 곤지암)
1990년 日本 富士久 特設美術館 초대전, 日本 沼津窯 설립, 경남마산매일신문사 초대전
1992년 길성도예광업소 설립 및 도예작업장 설립(충북 단양 방곡),
日本 制3回 沼津 招待展 한국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
1993년 讀賣.每日新聞 公同 招待展
1998년 단양군 방곡 길성도예로 이주
2002년 길성도예전시관 개관
2002년 찻사발초대전 (통도사박물관, 부산), 불교TV초대 ‘찻사발전’ (갤러리 코리아, 서울)
흙을 따라 하동까지 흘러간 원당 길성 선생의 작품세계는 활달하고 대담한 작품이 많은가 하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실험적 작품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꾸밈없는 단백한 찻그릇으로 일관하고 있다.
많은 시간을 찻사발에 할애했고 흙에 집착했으며 흙을 따라 다녔다.
그는 예술적 재능이 많아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일간지 미술기자도 지냈다.
도자기는 1976년부터 공부했고, 직장을 접고 79년 경주에 “영지요”를 열면서
본격적인 분청작업을 시작했다.
1988년에는 청, 백자를 위해 작업장을 경기도 광주로 옮겨 “길성요(吉星窯)를 설립했고,
민요백자 재현을 위해 충북 단양에 가마를 열기도 했으며, 2002년5월에는 정호다완의 꿈을
안고 경남 하동에 다시 가마를 열었다.
30년 가까운 작도기간 중 웅천사발이라고도 하는 정호다완에 가장 많은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는 지금 막내딸 기정씨와 함께 끊임없는 실험과 노력으로 정호다완의 풀지 못한
비밀을 풀어내고 있다.
정호다완은 우리 것이지만 모진 가난과 선조들의 미의식 부족으로 보존하지 못해 우리 곁에는
이렇다할 실물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이러한 다완을 재현하려는 선생의 신념은 대단하다.
다완은 무엇보다 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차는 하나이지만 그 품종에 따라 맛과 향이 틀리듯이 찻사발도 흙으로 만들지만 흙의 질에 따라
도자기 분위기는 천차만별을 보이게 된다.
물론 좋은 흙이 있다고 해도 숙련된 사기장이 없다면 그릇다운 찻사발은 나올 수가 없다.
참된 그릇은 흙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작가의 숙련된 미감(美感)으로 볼거리를 만들어
주어야 하며 불과 바람의 조화를 타야 한다. 하동 흙으로 만든 이 사발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정호다완에 가장 근접한 그릇이다.
태토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비파색과 엷은 황색바탕에 흰빛을 띈 찻사발은 지금까지
누구도 근접하지 못한 부분이다.
여기 전시되고 있는 찻사발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절제되고 시원스런 죽절굽과 유약이 터지고 말린 매화피, 손맛이나는 자연스런 물레선,
고임터에서 회돌이쳐 올라오는 내면의 넉넉함, 그리고 당당한 몸통은 진정한
찻사발의 왕좌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
작품보기
길기정
'한국도예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강효 李康孝 Lee Kang Hyo - 호죽도방 (0) | 2019.09.08 |
---|---|
권오훈(權五勳) - 단국대학교 도예과 명예교수 (0) | 2019.09.08 |
김미경金美卿 이화여대 도예과 교수 (0) | 2019.09.08 |
해강 海剛 유근형 柳根瀅 (0) | 2019.09.07 |
이천 以泉 김복만 金福萬 - 관음요 (0) | 2019.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