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현의 ‘인물로 보는 차 이야기’] (10) 자사호 역사에 남은 인물들-진만생이 ‘각’·양팽년이 만든 호 24억원
중국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자사호’라는 작은 찻주전자를 즐겨 쓴다.
자사호는 중국 장쑤성 이싱에서 나는 특별한 흙으로 만든다.
자사호는 송나라 때 처음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송나라 때 자사호는 실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자사호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명나라 때부터다.
연대가 밝혀진 자사호 중 제작 연도가 가장 빠른 것은 현재 난징박물원에 전시돼 있는 오경의 주전자다.
오경은 환관이었다. 환관이 득세했던 명나라에서도 오경은 지위가 꽤 높은 편이었다.
그의 무덤에서 여러 유물이 나왔다. 그 유물 중에 자사로 만든 주전자도 있었다.
주전자는 높이가 17.7㎝고 동그란 배에 고정된 손잡이가 달려 있다. 배 중간 부분에 이어 붙인 흔적이 있다.
요즘의 아기자기하고 조형미가 뛰어난 자사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➊ 시대빈의 자사호. 시대빈은 처음에는 공춘처럼 큰 주전자를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문인들 요청대로 작은
크기의 주전자를 만들었다.
➋ 양팽년이 만들고 진만생이 각을 한 자사호로 2017년 경매에서 1449만위안(약 24억원)에 낙찰됐다.
➌ 진만생과 양팽년의 또 다른 합작 자사호. 노란색 자사흙으로 만들었다. ➍ 왕인춘이 틀을 이용해 만든 자사호.
명나라 때 화가 왕문이 그린 그림에 이 주전자와 똑같이 생긴 주전자가 나온다.
‘자차도’라는 차 끓이는 그림이다.
그림 속 남자는 단정하게 앉아 부지깽이를 들고 화로 속 숯을 뒤적이고 있다.
화로는 대나무를 쪼개서 만든 네모난 상자 안에 들어 있다.
달아오른 화로에 실수로 손이 닿아 화상을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보호 도구다.
그 위에 큼직한 주전자가 놓여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왕문과 오경은 동시대 사람이었다.
이 시대에는 이런 모양의 주전자가 유행이었거나 아니면 그림 속 주전자가 바로 오경의 주전자였을 수도 있다.
다음은 ‘자사호의 비조(어떤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라 알려진 공춘이 만든 주전자다.
손으로 조물조물해서 주전자 몸통을 만들고 꼬챙이로 나무껍질 모양을 표현한 공춘의 호는 문인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자사호’라는 이름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주전자는 무엇보다 이 시대에 대유행한 잎차를
마시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
주원장이 찻잎을 갈아 말차처럼 마시는 것을 금지한 후 중국 사람들은 잎차를 어떻게 마시면 좋을지 궁리했다.
처음에는 대접 같은 그릇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우러난 물을 마셨다.
그러다 찾은 방법이 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우러나오는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편하기도 하고 맛도 좋고 멋도 있었다. 당연히 주전자 수요가 급증했다.
공춘 다음에 등장한 사람은 시대빈이다.
시대빈이 만든 자사호는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예전에는 공춘이 만든 호가, 지금은 시대빈이 만든 호가 인기’라는 당시의 글이 남아 있다.
그런 만큼 시대빈의 호는 가격이 매우 비쌌다.
그의 자사호는 특히 무덤에서 많이 나왔다.
당시 수도였던 난징 부근은 물론 저 멀리 떨어진 쓰촨 지역 무덤에서도 발견됐다. 이런 이들을 생각해본다.
차를 좋아하는 이가 어렵게 시대빈이 만든 자사호를 구했다.
시대빈의 호는 가격이 비싸기도 했지만 돈이 있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구하는 데 힘을 들인 만큼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다.
그의 호는 언뜻 덜 정교해 보이지만 질박하고 소탈하고 남성적인 매력이 넘쳤다.
시대빈도 처음에는 공춘처럼 큼지막하게 자사호를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소비자 요구를 반영해서
자그맣게 만들었다.
그의 고객들은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에는 따뜻한 찻물이 담긴 자사호를 들고 마당에 내려가 한가로이
거닐며 책을 읽다
가끔씩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빨아 마셨다. (지금도 중국 남쪽에 가면 자사호 주둥이에 입을 대고 차를
빨아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고 자꾸 쓰고 손으로 쓰다듬으면 처음에는 거칠고
흐린 색이던 자사호가 반들반들하게 광이 나고 색이 고와지는데 그 또한 애간장을 녹일 정도로 사랑스럽다.
오죽하면 죽어서 무덤까지 가져갈 생각을 했을까.
“예전에는 공춘이 만든 호, 지금은 시대빈이 만든 호”
처음에 작가에게 이렇게 저렇게 호를 만들어달라 조언하던 문인들은 나중에는 아예 직접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청나라 때 진만생이 대표적이다. 관료였던 진만생은 어느 날 이싱으로 발령을 받았다.
차를 좋아했던 그는 자사호의 고장인 이싱에 가는 것을 잔뜩 기대했다.
평소 자사호에 대해 생각해둔 것이 많았는데 이번 기회에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평생 붓만 잡고 살던 진만생의 손은 머릿속 구상을 실물로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모든 그릇이 만들기 쉽지 않지만 특히 자사호는 혼자 기술을 습득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진만생은 자기가 직접 만든다는 생각을 깨끗이 포기하고 대신 파트너를 찾았다. 그가 기술자 양팽년이다.
진만생은 호를 디자인하고 양팽년은 그것을 실물로 만들어냈다. 굽기 전 진만생은 주전자에 글자를 새겼다.
문인이 디자인한 주전자답게 소박하고 우아한 호에 기상이 담긴 글씨, 여기에 당대 최고 기술자 양팽년의 솜씨가
곁들여져 완벽한 균형미와 정제미까지 갖춘 호가 만들어졌다. 2017년 경매에 이 둘의 합작품이 등장했다.
둥근 몸통과 직선으로 뻗은 주둥이가 너무나 조화를 잘 이룬 이 독특한 주전자는 무려 24억원에 낙찰됐다.
중국 역사에 자사호 작가가 수없이 많지만, 한 명만 더 이야기를 해보자.
그의 이름은 왕인춘. 청나라 말에 태어나 1977년까지 살았다.
이싱에서 태어난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도 소년이 되자마자 아버지 손에 끌려 자사호 공방 도제로 들어갔다.
한 달 후 작가가 왕인춘의 아버지를 불렀다.
“당신 아이는 손이 느리고 둔해서 도저히 자사호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없으니 그만 데려가라”고 했다.
놀란 왕인춘의 아버지는 작가 바지를 붙잡고 애원했다.
하도 애절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작가는 왕인춘을 조금 더 데리고 있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인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에서 화분 3000개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온 것.
이때 왕인춘이 화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공으로 만들지 말고 틀을 만들어 반수공으로 찍어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전에는 전부 손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왕인춘 말대로 틀로 찍어내자 3000개나 되는 화분을 아주 짧은 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화분에 사용되던 이 방법이 나중에는 주전자 만드는 데로 옮겨갔다.
지금 작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자사호를 만들기도 하고 공정의 일정 부분을 틀을 이용해
완성하기도 한다.
물론 전체를 수공으로 하면(전 수공) 가격이 더 비싸고 일부를 수공으로 하면(반수공)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신정현 죽로재 대표]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3호 (2021.04.07~2021.04.13일자) 기사입니다]
https://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21&no=336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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