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막사발 터 홍보는 '역사왜곡'이다
본내용은 2006년 12월 12일 진주신문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기사의 대부분은 사천시 열린시장실에 민원으로 올린것을 다시 정리하여 진주신문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 곤명요 김영태
2006년 3월30일 오후 3시~6시20분까지 ‘사천조선 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 간담회’에서 ‘조선막사발 도요지
2006년 3월 30일로 보류 또는 차후사업명칭이 합당한 도요지가 발굴되면 문화재 차원으로 시행하기로 하고,
현재는 관광차원의 ‘조선 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 은 사실상 포기한다고 결론 지어졌다.
간담회 참석대상자는 박동선, 한완수, 정동주, 이재용, 김남진, 김영태, 박영현, 김홍배, 송선상, 정충옥,
창산요 윤창기, 총무국장,문화관광과장, 문화관광계장 참석자는 한완수, 김홍배, 송선상, 이재용,
김남진 대리인 (화전토취개발직원 1명),김영태(처. 이은주), 문화관광계장, 문화관광과장,
지방행정주사보 등이었다.
회의의 두 번째 결론은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을 포기하고 문화관광부와 협의하여 관광사업 도예촌,
도예 센터로 전환하여 사업을 추진하고 사업지는 사남면과 곤명면 성방리 가마터 발견지역
논란을 피하여 제 3의 장소로 한다.
지역예술가와 도예가의 협의체를 만들어 의견을 수립하고 사천시는 협의체의 의견을 참고한다.
세 번째는 성방리에서 발견된 도요지는 1999년부터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에 선정됐지만 현재까지
조사가 없어서 사남면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지금이라도 500만원을 확보해 문화공보실(문화재 차원)의
주관으로 지표조사를 하고, 시굴조사 등의 조사를 한다.
네 번째는 사남면 우천리 도요지를 사천시장과 사천시는 이도다완 가마터와 아가노 도자기의 고향으로 인정과,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
다섯 번째는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과 관련해 이를 홍보하여 세운 ‘한.일 영원한 우호의 비 철거’에
대해서는 사천시 문화관광과 소관이 아니다.
‘이도다완 가마터, 아가노 도자기 가마터, 하기야끼 고향 가마터’라고 홍보하고 있는 사천시 사남면
가야비파구룡요 운영자 김남진씨의 사남면 우천리 구룡저수지 가마터는 웃지못할 왜곡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사천 사남면 우천리 도요지를 일본 아가노야끼 도자기 원류로 홍보하고 아직도 이도다완을 만들었다는 녹유계통
사발가마터라고 언론을 통해 홍보하고 있지만 이는 이를 증명할 도자기 터를
발견하지 못해 사업자체가 포기 또는 무산됐다.
이 도자기 터를 10여년 동안 일본 국보급 도자기 ‘이도다완과 아가노 도자기 가마터’라고 언론을 앞세워 왜곡,
선전하면서 일본 후손들을 부르고, 비를 건립했지만, 발굴조사에서 관계없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런 진실을 무시하고, 또다시 역사왜곡을 일삼다가 이 모든 것이 거짓으로 밝혀지자
또 다르게 역사를 만들고 있다.
우선 모 언론에 보도된 ‘11세기에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건너간 녹유계통의 사발(이라보다완)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그 가마터를 찾아내고 … ’란 11월12일자 기사와 ‘일본 하기야끼 원조 찻사발 400년전
사천 가마서 탄생 확신(11월19일)’ 등의 기사는 심각한 역사왜곡이다.
왜냐하면 사천시 사남면 구룡저수지 가마터를 고려시대 1100여 년 전 것으로 인정하면서
임진왜란(1592-1598)때 끌려가 일본 아가노 도자기를 만든 존계 고향 가마터로 500여년간 시기를 부풀려
홍보하고 있는 저의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사천시 사남면 가야비파구룡요 운영자 김남진씨가 아가노 도자기 고향과 존계를 폐기처분하고, 이제는 이도다완
고향으로만 다시 선전하는 것을 볼 때 사천시는 이제라도 아가노 도자기 고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사천시 사남면 화전리에 세운 아가노 도자기 고향 ‘한·일 영원한 우호의 비’를 완전 파쇄, 철거 하던지,
아니면 수정할 곳과 현재의 지명을 지우고 현재의 자리에서 철거하여 사천시의 신청사에 세워 아가노 도자기
고향이 사천시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타당하리라본다.
김남진 씨는 1996년 조질백자의 백자다완, 이도다완의 가마터로 알리다가 1999년부터 흑갈색 아가노 도자기
고향으로 알리더니, 구룡가마터가 이도다완과 아가노 도자기와는 관련이 없음이 밝혀져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이 무산 되자, 이제는 아가노 도자기 고향과 존계는 사라지고, 다시 구룡저수지 일대
‘옹기가마터’를 하기야끼라는 가마터로 만들면서 아가노 도자기와는 관계없는 일본 ‘하기야끼 원조 찻사발
400년전 사천 가마서 탄생 확신’ 등 고향으로 만들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고 있다.
진주시에서 일어난 지난해 5월 10일 ‘친일잔재청산을 위한 진주시민운동본부’에서
논개 영정(친일화가 김은호. 미인도) 강제 폐출사건과 같은 충청남도 공주시의 ‘이삼평 도공 왜곡된 비문
바로잡아’라는 중앙일보 비문사례를 접하고서야 친일적 역사왜곡을 밝히고자 하는 단체나 개인적인 노력이
없으면 시간이 많이 흘러도 스스로는 바로 잡아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간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역사왜곡이 드러난 시점에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행정업무에 있어서 법률’
이라는 것이 오히려 진실을 바로잡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본 도자기의 시조로 추앙받는 조선 도공 이삼평 기념비의 ‘왜곡된’ 비문내용을 바로잡는 새 기념비가 천안에
26일 건립됐다.
‘이삼평도공 비문 정정추진위원회(위원장 이풍용· 62)는 충남 천안시 북면 매송리에 공주 이삼평 기념비 비문중
<일본에 건너가>를 <잡힌 몸으로 일본에 건너가>로 정정한 홍익명경비를 세웠다.’ -
중앙일보 2000년 9월27일 25면(40판).
천안의 이삼평 비문은 ‘잡힌 몸으로 일본에 건너가라는 한 문구만 수정하면 되는 비였지만, 사천시 사남면
화전리에 세운비는 이보다 더 많은 치욕의 역사왜곡의 비문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때 하루빨리
철거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사남면 우천리 가마터 복원은 88억원 규모의 남해안 관광벨트 사업의 일환으로 국책사업으로 추진됐고
이 가마터는 2006년 3월30일 이후로 1996년부터 이도다완가마터와 아가노도자기 고향이라고 역사왜곡된
진실이 밝혀졌다.
때문에 ‘조선 막사발 도요지 복원 사업’을 포기하고 다른 명칭으로 전환하고자 하지만 거짓으로 선전 홍보된
가마터에 대해 세운 ‘한일 영원한 우호의 비’는 철거하지 않고 사천시도 이를 인정도 거론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분란의 불씨를 남겨두는 것이다.
거짓으로 만든 가마터 때문에 ‘조선막사발 도요지 복원사업’이 무산된 것으로 볼 때 비 철거 등의 응분의
조치가 있어야 하며,
언론을 이용하여 홍보되고 선전해 많은 이들이 왜곡된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에 사천시는 언론매체를 통하여
공고 및 보도문으로 알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김영태 사천시 곤명면 성방리 곤명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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