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1955년에 무형문화재 제도가 시행된 이후로 8개의 전통예술 부문에 시상자를 배출했다.
목공예,금속공예,섬유공예,죽공예,도자기공예,종이공예,옻칠공예,인형공예 등이다.
그 중에서 섬유와 도자기 부문이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의 모든 그림이나 도자기의 그림을 보면 사람들이 입은 옷이 도포나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옷감을 만드는 기술과 도자기 공예가 같이 발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수상자를 냈다는 생각이다.
도자기 무형문화재를 수상한 사람은 2015년 현재 개인이 36명이고 단체가 2그룹이다.
그 중에서 사망자가 27명이고 현재 살아서 활동중인 명인이 9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명인들 중에서 가장 오래 가업을 이어온 카키에몬 사카이다 14대손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카이다 카키에몬 (酒井田柿右衛門 14代)
카키에몬야끼는 17세기 중반부터 사가현의 아리타 지역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에나멜로 유약을 바른 카키에몬의 뛰어난 품질의 도자기는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유럽의 주요 유명 도자기공장에서 모방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1년에는 이 카키에몬 도자기스타일을 일본정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했고, 카키에몬야끼를 굽는
계단식 가마는 역사유적지로 지정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도자기 스타일은 아미리야끼, 아리따의 청백자, 후쿠가와 야끼, 쿠다니,
반코토기와 사쓰마 야끼등이다.
카키에몬 스타일은 중국의 'Famille Verte' 와 많은 점을 공유한다.
같은 종류의 색상을 그룹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일본 도예가 사카이다 카키에몬(1596-1666)은 일본최초로 '아카에'라고 불리는 자기위에 에나멜을 바르는
비법을 발견했다.
그리고 '카키에몬' 이름은 그의 군주가 사카이다 이름 위에 하사한 것이다.
그의 가업은 놀랍게도 현재의 14대까지 전수되어 처음 생산하던 방식으로 똑같이 만들어
카키에몬을 만들고 있다.
현재 난가와라 가마에서 나오는 카키에몬 도자기는 흰색과 파란색으로 그림을 그린 것과
청자등도 포함하고 있다.
카키에몬은 장식을 일반적으로 매우 고급스럽게 하고 섬세하며 비대칭 모양을 한다.
최고급 품질의 도자기에는 뒷 배경을 강조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흰색의 자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카키에몬의 그림은 새, 날으는 다람쥐, 매추리, 겨울의 3가지 친구들(소나무,매화,대나무), 꽃 특히 일본의
국화인 국화, mum등이 주로 등장한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순백자(nigoshide)의 생산이 중단된 관계로 카키에몬의 생산도
제대로 되지못했다.
그러다가 카키에몬 12대, 13대손이 1953년에 순백자의 생산에 성공하면서 카키에몬을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메이센과 프랑스의 샨틸레에서는 공식적으로 'faux-kakiemon'을 생산하며 많은 양을 유럽에
판매하였고, 일본 카키에몬의 디자인과 제작기법을 따라했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품질이 유지되었다.
사카이다 카키에몬은 아리타현에서 1934년에 태어나서 일본 타마대학의 회화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1984년에는 일본도예협회의 전통계승을 위한 상을 수상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는 큐우슈우 산업예술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도자기산업과 전통의 계승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16세기 말 가케이몬이 처음 만들어질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 항아리이다.
가케이몬은 이마리야끼의 그림과는 달리 흰색 바탕이 비교적 많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고,
제한된 색상을 이용한다.
가케이몬 도자기 병으로 1735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인 카케이몬 스타일로 흰색바탕에 제한된 색상으로 그림이 꽃그림이 그려져있다.
그림이 없는 공간이 비교적 많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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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케이몬이 뜻하는 바는 여러가지가 있다는 생각이다.
가업을 14대를 이어가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고, 또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니 중간에 기술적인 문제로 가업이
끊기는 일이 발생했지만 두 세대가 힘을 합쳐서 성공적으로 원형을 복원했다는 것이다.
전통을 계승하면서 재정적인 것 만을 추구하지 않기에 기술이 제대로 전수되고, 본래의 모양을 유지하면서
제대로 전수되고 있다.
그래서 한 가문이 만든 스타일을 나라에서 전통문화로 인정하는 첫 사례가 되었다.
이러한 기술로 대량생산 방법까지 고안해서 전체국민들에게 좋은 도자기를 싼값에 공급한 것이 일본의 장인들이다.
======================= Sakaida Kakiemon XIV 의 작품 ================================
18세기에 들어와서 일반의 관심이 없어지면서 제작이 100년이상 중단되자
기술전수마저 끊어졌지만 성공적으로 복원됐다.
바탕을 노고쉬데로 칠하는 특이한 채색법은 직접 눈으로 봐야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있다.
=============== Kakiemon의 가마와 제작공정 =======================
가키에몽 14대가 일본의 무형문화재로 선정되기에는 아버지 13대의 공헌이 컷다고 하겠다.
단절된 기술을 할아버지부터 시작해서 부자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한 끝에 성공적으로 복원한 것이다.
카키에몽은 대량생산한다고 말을 하지만, studio pottery에 비해서 대량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모두 손으로 만드는 것을 공장식 대량생산이라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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