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티 테이스팅(Tea Tasting)

썬필이 2017. 9. 30. 21:16

차를 품평(品評)한다는 것은 차의 품(品), 즉 등급이나 성질을 평가한다는 말이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가 차를 마실 때 잠시 차에 대한 느낌을 갖는 것이 일종의 품평이다.

혼자서 느껴보고 판단하는 것과, 차를 즐기는 사람끼리 모여서 각자의 판단을 교환하는 것, 그리고 전문적으로

차를 평가하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크게 다를 바 없다.

공식적인 품평에서는 이런 단계들을 좀더 수량화, 객관화한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단계들을 익혀놓으면 혼자서 마실 때도 유용하므로 한번 살펴보자.

차를 평가할 때는 일반적으로 다섯 단계의 과정을 밟는다.

차의 외형을 본다.

즉 우리기 전 찻잎의 외형은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최종적으로 우렸을 때의 차 품질에 관하여 어느 정도

예측을 가능케 한다.

찻잎이 서로 비슷하며 일관성이 있어야 좋다. 모양도 비슷하고 크기도 비슷해야 한다.

잔 부스러기가 많으면 좋지 않다. 골든 팁의 존재도 품질의 한 표지가 된다. 색상 역시 어느 정도 광택이 있어

보이는 것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마른 찻잎의 향도 신선한 향이 나는 것이 좋다.

우린 뒤에는 수색을 본다.  

일반적으로 우려졌을 때 나타나는 그 차만의 고유한 기본 색상이 있다.

퍼스트 플러시 다르질링의 연한 호박색이나 아삼의 적색 계열의 짙은 갈색이 그 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기본 색상의 범위를 많이 벗어난다면 가공이나 우리는 과정에서 뭔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인 색상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찻물이 맑고 깔끔한지, 탁하고 흐린지를 평가하면 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눈으로 봐서 기분 좋은 차는 대체로 맛도 좋다.

우린 잎의 향을 맡는다.  

우리는 보통 우려진 찻물의 향을 맡지만 전문가들은 찻물이 아니라 우려진 찻잎의 향을 맡는다.

찻물을 부어내고 뜨거운 티포트의 뚜껑을 열어 뜨거운 열기가 잠시 나가게 한 뒤 코를 갖다대면 찻잎에서

다양한 향을 잡아낼 수 있다.

열기가 남아 있을 때 맡는 열후, 조금 식었을 때 맡는 온후, 완전히 식었을 때 맡는 냉후를 비교해보라.

잘 만든 차일수록 냉후에 꽃향기 같은 것이 진하게 남으면서 더 향기롭고 오래간다.

우린 차를 맛본다.

이제 차를 맛보자. 여기에도 약간의 테크닉이 필요한데, 그냥 마시지 말고 뜨거운 물을 마실 때 입술 끝에서

‘스웁’ 하고 들이키듯이 맛보는 것이 좋다.

즉 조금의 차를 공기와 함께 힘차게 빨리 들이켜 입안에 확 뿌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입속의 미각과 후각 기관에 동시에 접촉해 맛과 향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이 제대로 된 맛을 보는 방법이다.

시음이나 평가할 때 요란하게 들이키는 것은 예의 없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맛보는 방법이므로

한번 따라해보는 것도 좋다.

차를 마시면서 향을 맡는 방법도 있는데, 일단 차를 입에 머금었다가 삼키면서 코를 통해 숨을 내쉰다.

이 방법이 코로 직접 맡을 때보다 더 선명하게 향을 인지하게 해준다는 주장도 있다.

차를 맛볼 때 주요한 요소가 찻물의 바디감이다.

‘바디감이 있다’는 건 꿀물을 마실 때처럼 액체이지만 뭔가 씹을 수 있을 것 같은, 입안을 코팅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바디감이 없다’면 그냥 혀에서 물처럼 힘없이 흘러내리는 느낌이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에일류의 맥주는 바디감이 있고 라거류의 맥주는 바디감이 없는 것과 같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바디감은 좋은 차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다.

좋은 옷감은 얇더라도 힘이 있듯이 좋은 차는 두텁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인 바디감을 갖고 있다.

이제 차의 향과 바디감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면 맛 자체를 찾아보자. 차에서 어떤 맛이 나는가?

무슨 차에 무슨 맛이 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좋은 차는 입안에서 맛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차가 식어가면서도 맛이 변한다.

좋은 싱글 이스테이트 홍차는 식으면 오히려 더 깔끔한 맛을 낸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나 다른 블렌딩 제품은 식어버리면 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건 바디감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인데, 뭔가 텁텁해지는, 이렇게 식어버린 차를 마시고 나면 입을 다시

물로 헹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좋은 차의 또 하나의 특징은 뒷맛이다.

즉 차를 다 마시고 난 뒤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입안에 그 맛이 남아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을 후미가 좋다, 회감이 좋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고 난 뒤의 찻잎을 보는 것이다.

이 순서는 홍차 위주의 서양과 녹차 위주의 중국이 중요시하는 정도가 다르다.

홍차는 보통 강한 유념 과정을 거쳐 찻잎이 부서지기에 우린 잎에 대한 판단에 큰 의의를 두지는 않는다.

반면 잘 만들어진 녹차는 우린 잎이 처음 채엽되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우린 잎의 상태를

중요하게 여긴다.

공통적으로는 눈으로도 보고 만져도 보면서 찻잎의 여린 정도, 크기의 균일성, 색상 등을 관찰해 어떤 찻잎으로

얼마나 정성스럽게 가공되었는지를 평가한다.

이 다섯 단계는 필요에 따라 대략적으로 혹은 철저하게 개량화할 수도 있다.

공식적인 품평은 조건의 통일성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이 규격화되고 어떤 차인가에 따라 찻잎 및 물의

양과 비율이, 그리고 우리는 시간 등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도 하다.

필자가 함께 차를 즐기는 사람들과 품평할 때는 유리 티포트를 선호한다.

찻잎이 우러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잔은 가능하면 흰색 자기 잔이 좋다.

차의 색상과 탁도 등을 잘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차를 즐기면서 맛있게 먹을 때와 차를 비교하면서 평가할 때는 차의 강도를 조금

다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맛있게 먹을 목적이라면 필자는 400밀리리터의 물에 보통 2~3그램 사이를, 시작은 최하 한계선인

2그램을 추천한다.

이렇게 우리면 대체로 부드럽고 향기롭게 차를 즐길 수 있지만, 두 가지 이상의 차를 비교할 때는

차의 특성이 확실히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비교를 위한 시음에서는 400밀리리터당 3~4그램의 찻잎을 사용하여 좀더 강하게 우려야

특성이 정확히 나타난다.

전문가들이 차를 품평할 때는 150밀리리터에 3그램 정도를 넣는다. 차를 품평할 때의 분위기와

마음 상태도 중요하다.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 편안한 장소에서 해야 하며, 본인의 마음도 편안해야 한다.

이 말은 내 평가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할까를 의식하는 분위기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서로가 편안한 분위기여야 차에서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말할 수 있다.

맛이라는 것은 극히 주관적인 경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딱히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서양의 테이스터들 사이에서는 “10명의 테이스터에게서 11가지 의견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유치원생들처럼 마냥 편안하게 말을 해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를

의식하면 불편해져서 품평의 효과가 반감한다.

똑같은 절차에 따라 똑같은 차를 우려도 매번 그 맛이 동일하지는 않다. 50퍼센트 정도만 같다고 느낀다.

나머지 50퍼센트는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 배가 부른가 고픈가, 갈증이 있는 상태인가 아닌가,

그날 처음 마시는 차인가 아닌가,

피곤한가 그렇지 않은가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러니 내가 느낀 맛을 스스럼없이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교해가면서 차에 대한 감각을

훈련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다보면, 처음에는 꽃향이 난다고 표현하다가 나중에는 장미향이나, 치자꽃 향,

더운 여름날 마당에 물을 뿌렸을 때 확 올라오는

흙냄새와 비슷하다라는 표현이 나오고, 이런 표현에 서로 공감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내가 즐기는 것이다. 즐기자고 마시는 차인데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종류를 많이 마셔보는 것이다.

- 홍차수업 저자문기영 | cp명글항아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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